부정수급 113억 적발… 조사대상 883건 중 486건(55%)文정부 도입 '추정의 원칙', '산재 환자 의료계획서 검증 폐지' 부정수급 키워
  •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1월부터 두달 간 실시한 산업재해보상보험 부정수급 특별감사 결과 부정수급 적발액이 113억 원을 넘었다. '산재 카르텔' 정황도 포착됐다. 노동부는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실시한 '추정의 원칙' 등을 손보는 등 산재보험 제도에 대한 개선 의지를 밝혔다.

    노동부는 20일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감사는 지난해 10월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산재보험 카르텔' 문제가 제기되자 노동부가 다음 달 '산재보험 부정수급 특별감사'를 진행한게 시초가 됐다.

    애초 11월 한달간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각종 부정수급 사례와 제도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면서 12월 말까지 연장했다. 당시 조사대상 320건 중 178건을 조사완료 했는데 그 중 117건이 부정수급 사례였다. 부정수급 적발액은 약 60억3100만 원에 달했다.

    이번 감사에선 조사대상, 부정수급, 적발액 모두 증가했다. 먼저 노동부가 자체 인지하거나 각종 신고시스템 등을 통해 접수된 883건의 조사대상 중 486건(55%)이 부정수급이었다. 적발액은 113억2500만 원으로 나타났다. 부정수급 '의심' 건수는 4900건으로 노동부는 근로복지공단이 자체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이번 감사에서 밝혀진 사항들에 대하여는 수사기관과 적극 협조하여 산재 카르텔과 같은 부조리가 다시는 발붙일 수 없도록 엄정히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재 부정수급 문제는 부정수급 건수와 액수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실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의 부정수급자수는 1680명, 부정수급액은 153억1600만 원에 달한다. 부정수급 징수액은 '산재보험법 제84조 1,3항'에 따라 수령자가 받은 금액(부정수급액)의 2배를 징수하는데 같은 기간 미환수액이 267억7700만 원으로 전체 징수액 중 약 90%가 미환수액이다.
  • ▲ ⓒ서성진 기자
    ▲ ⓒ서성진 기자
    노동부는 부정수급 증가 원인 중 하나로 '질병 추정의 원칙에 대한 법적 근거 미비'를 꼽았다. '질병 추정의 원칙'은 문재인 정부가 2017년 9월 도입한 제도다. 

    이 제도는 근로자가 산재를 신청할 때 업무와 질병상 인과관계를 입증해야하는 근로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으로, 일정 근무기간과 위험요소 노출량 등이 충족되면 반증이 없는 한 현장조사를 생략하고 근로자의 질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그러나 노동부는 "추정의 원칙은 법적 위임의 정도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운영되어 그 적용에 있어 현장의 혼란이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4조'를 보면 실제로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이 모호하다. 관련 시행령을 보면 '노출된 경력이 있을 것(제34조 1항 1호)', '업무 환경 등에 비추어 볼 때 근로자의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인정될 것(제34조 1항 2호)' 등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김수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지난해 8월 '산재예방 촉진을 위한 직업병 인정기준 개선방향(추정의 원칙을 중심으로)'에서 "추정의 원칙 때문에 잘못된 선입견에 입각한 산재판정이 반복되고, 산업현장에서는 '쉽게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돼 무분별한 산재 신청 경향도 감지된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추정의 원칙 때문에 산재 적용이 비교적 수월해진 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적기 치료 후 직장복귀라는 산재보험 목적과 달리 장기환자를 양산하고 있는 요양 절차상의 문제점이 있다"고도 지적했다. 장기요양환자 유발 원인으로는 △상병별 표준요양기간의 부재 △요양 연장 위한 의료기관 변경 승인 요건 기준 미비 등을 꼽았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3월 근로복지공단 직영병원 의사의 산재 환자에 대한 진료계획서를 검증하는 절차를 폐지했다. 이후 산재 환자 주치의가 요양 연장 여부를 결정하거나, 환자가 요양기간 연장을 위해 의료기관 변경을 무분별하게 요청해도 승인 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실제로 이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업무상 질병자수가 7000명이었던 2017년과 달리 2021년에는 2만 명이 늘었다. 

    노동부도 "사실상 주치의 판단에 따라 요양 연장 여부가 결정되고 있어 장기간 요양으로 이어지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목통증인 경추염좌의 경우건강보험 대비 치료 기간이 2.5배 더 길고, 진료비는 3.7배 더 지급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한 재해자는 2019년 6월부터 현재까지 의료기관을 64회 변경해 4년 이상 요양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환자가 공단 직영병원에서 산재 처리를 받아 요양 치료를 받기까지 노무법인이 개입해 과도한 수임료를 받는 문제도 나타났다. 특정 노무법인은 산재 환자의 소음성 난청 승인 건으로 특정 병원을 소개해 진단 비용 등 편의 제공 후, 산재환자가 받은 수급액의 30%(1500만 원)를 받기도 했다. 다른 노무법인은 산재 관련 업무를 변호사나 노무사가 하지 않고 권한이 없는 사무장이 사무실 이름만 빌려 수행했다.

    이 장관은 "근로복지공단 임직원과 노무사들께서는 산업현장 최일선에서 재해를 당한 근로자를 위해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다"면서도 "제도의 허점 등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므로 그대로 내버려두면 기금의 재정 건전성 악화 등으로 이어져 미래세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노동자들이 한 푼 한 푼 모은 산재보험기금을 빼먹으려는 일부 양심 불량자들이 가장 큰 문제"라며 "병원의 진료 기간 산정이나 근로복지공단의 느슨한 관리가 부정수급을 초래하고 있는 건 아닌지 면밀한 진단과 처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