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통첩 디데이에도 의료현장서 큰 변화 없어 9000명 이탈 인원 중 절반은 들어와야 3월 의료마비 우려… 주요 병원장들 "돌아오라"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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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성진 기자
    전공의 복귀 '디데이' 날에도 대대적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1만명이 사직서를 내고 9000명이 병원을 이탈한 상황에서 수백 명 수준의 복귀 행렬은 의료공백을 막기 어렵다. 주말 내 수천 명의 복귀가 필요한데 전공의들은 맘은 굳힌 모양새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가 제시한 전공의 복귀 시한이 넘었지만 빅5병원 등 주요 병원에서 큰 변화는 관측되지 않았다. 일부 병원에서 소폭 복귀 움직임이 포착되긴 했으나 대대적 복귀는 없었다는 전언이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28일 오전 기준 전국 주요 수련병원 100곳에서 전공의 294명이 복귀했다. 수도권 소재 A병원은 24명, 서울 소재 B병원은 37명이 복귀했으며, 호남권 C병원에서도 66명이 돌아왔다.
     
    당초 29일이었던 데드라인은 주말까지 허용될 여지가 있다. 오는 4일부터 현장점검이 이뤄져 본격적 사법 절차를 거칠 예정이므로 복귀 시한은 남아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수치로는 의료공백을 막기 어렵다는 전문가 의견이 다수를 이룬다.

    서울소재 상급종합병원 소속 교수는 "최소 5000명은 복귀해야만 그나마 정상적 의료체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것도 효율적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한다고 가정했을 때 가능한 얘기"라고 했다. 

    특히 이탈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는다면 인턴, 레지던트, 전임의 신규 계약도 줄줄이 무산될 여지가 있다. 이는 의료 마비의 시대로 전환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요지부동이다. 이는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이 막판 카드로 제안했던 '전공의와의 대화'가 별 소득 없이 끝났다는 점에서 이러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앞서 박 차관은 전공의들에게 문자를 발송해 장소와 시간을 정해 대화를 하자고 했지만 참석한 전공의는 한 자릿수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간부이거나 각 수련병원을 대표하는 전공의도 없었다. 

    대전협 측은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2000명 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 △과학적 의사 수급 추계 위한 기구 설치 △수련 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책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부당한 명령 전면 철회 및 전공의에 대한 사과 △강제 노동 금지 조항을 준수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일련의 정책을 원점 재검토하라는 요구이기에 정부 역시 수용 불가능하다. 앞서 정부는 '2000명 의대증원'을 바뀔 수 없는 수치로 규정했고 이를 전제로 대화를 하자는 입장이다. 

    류옥하다 前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 대표는 "이미 정부는 2020년 9·4 의정 합의 1항 '의대 정원 통보를 일방적으로 강행하지 않는다'는 조정을 헌신짝처럼 내버렸다"며 "대화의 기본은 신뢰인데 이미 정부는 전공의에게 신용을 잃었다"고 했다.

    대전협 역대 회장 15명은 공동성명을 통해 "전공의들의 사직은 과도한 근무 조건과 이를 보상해주지 못하는 임금, 민형사상 위험성, 더는 가질 수 없는 미래의 희망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는 전공의들이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 삼권을 보장받을 수 없고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 선택의 자유조차 없다고 한다"며 "생명을 되살리는 일은 고귀하지만, 그 일을 개인의 자유의사를 넘어 강요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병원장들 호소 "전공의들이여 돌아오라" 

    대다수 전공의들은 루비콘강을 건넌 것으로 분석된다. 강대강 대치 국면 속 '면허 정지를 받고 1년 쉬다 온다', '의업을 포기한다' 등 전공의 분위기가 관측되고 있다. 

    특히 의대증원과 관련 중재 또는 타협할 공간이 없기에 복귀를 요청하는 각계의 입장을 얼마나 절실하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 수련병원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병원장들은 소속 전공의들에게 이메일과 문자를 발송하며 복귀를 호소했다. 

    하종원 세브란스병원장과 송영구 강남세브란스병원장, 김은경 용인세브란스병원장은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와 환자의 생명을 위한 여러분의 오랜 노력과 헌신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며 "전공의 여러분, 이제 병원으로 돌아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승우 삼성서울병원장은 "선생님들이 보여준 의지와 진심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여러분들에게 병원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함께 고민하고 의지하며 지혜롭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김영태 서울대병원장과 송정한 분당서울대학교병원장, 이재협 서울시보라매병원장도 "여러분의 진심은 충분히 전달됐다"며 "중증 응급 환자와 희귀 난치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많은 환자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돌아와 달라"고 당부했다.

    ◆ 환자들은 울분 "환자 지켜달라"

    병원장들의 호소에 이어 환자들도 전공의 복귀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생과 사의 영역에서 의료대란이 장기화하는 것은 무엇보다 큰 공포이기 때문이다. 

    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 7개 단체 연합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사들의 단체행동을 즉각 중단해달라고 했다. 

    김태현 한국루게릭연맹회장은 "최고의 기득권을 가지고도 의사 집단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희귀난치병 중증질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잡고 의료대란을 일으켰다"며 "의사 집단이 국민 목숨을 담보로 겁박하는데 머리를 사용한다면 시정잡배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분노했다.

    이어 "조직폭력배와 다단계 조직보다 더한 집단"이라며 "지금도 호스피스 병동과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은 산소호흡기로 목숨을 유지하며 발버둥 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암환자권익협의회장 겸직)은 "의사가 환자들을 버린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고 조율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의 생명만은 어느 순간에도 정치적으로도, 어느 잘난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도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9개 환자단체가 참여한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역시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공의는 사직 방식의 집단행동을 이제는 멈추고, 응급·중증환자에게 돌아와 이들이 겪는 불편과 피해, 불안부터 멈추게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