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사‧투자자 책임 종합적 고려 분쟁조정 기준 제시 금감원 조정기준안 따라 내달부터 분조위 개최판매사-투자자 갈등 본격화…장기화 가능성당국, 불완전판매 제재‧제도개선 작업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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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당국이 홍콩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손실사태와 관련해 일괄 배상없이 사례별로 0~100%까지 차등 배상하는 분쟁조정기준(안)을 제시했다.

    판매원칙 위반이 드러난 은행의 경우 그 정도에 따라 20~40%를 기본배상비율로 정하고, 투자자 특성이나 투자 경험에 따라 배상비율을 가감하는 식이다. 

    다만 배상규모나 대상 등에 대한 불확실성은 기준안이 공개되기 전과 다를 바 없어 판매사와 투자자 간 갈등을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온다.

    ◇ 배상비율= 판매자 요인±투자자 요소±기타

    금융감독원은 홍콩 H지수 ELS 상품의 대규모 손실발생과 관련해 지난 1월 8일부터 11개 주요 판매사에 대한 현장검사를 실시한 결과 다양한 불완전판매가 확인됐다며 이 같은 내용의 분쟁조정기준(안)을 11일 발표했다.

    기준안에 따르면 배상비율은 검사 결과 확인된 판매사 책임이 반영된 ‘판매자 요인’에 투자자별 특성을 고려한 ‘투자자 요소’를 더하거나 빼 결정되는 구조다.

    우선 판매자 요인은 사례별 불완전판매 여부에 따라 ‘기본배상비율’을 정하고 내부통제 미흡을 반영한 판매사 ‘공통 가중’비율이 더해진다.

    기본배상비율은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위반 등 불완전판매 여부에 따라 20~40%를 적용한다. 판매사 공통가중은 불완전판매를 유발‧확대한 내부통제 부실 책임을 고려해 은행은 10%p, 증권사는 5%p를 가중한다.

    두 항목을 합해 판매자 요인에 의한 배상비율은 사례에 따라 23~50%다.

    여기에 투자자 요소(±45%)와 기타 조정요인(±10%p)을 반영한 최종 배상비율은 0~100%가 된다.

    투자자 요소는 고령자 등 금융취약계층, 예적금 가입 희망 고객 등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경우 가산되는 반면, ELS 투자경험이 많거나 금융지식 수준이 높은 고객 등에 대한 판매는 배상비율이 차감되는 방식이다.

    여기에 가산‧차감항목에서 고려되지 않은 사안이나 일반화하기 곤란한 내용이 있는 경우에는 기타 조정요인(±10%p)으로 반영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조정기준안을 토대로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 책임 요인을 종합 고려해 배상비율이 결정될 예정”이라며 “판매자나 투자자 일방의 책임만 인정되는 경우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100% 배상 혹은 전혀 배상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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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ELS 사태 2막…본격 분쟁조정 돌입

    당국의 조정기준안 발표에도 홍콩ELS 배상 규모와 시기, 대상 등은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남았다.

    개별 투자자 배상비율은 이번 기준안을 토대로 사례별로 산정될 예정으로 현 시점에서 배상비율의 범위나 분포를 예측하기 어렵다. 금융회사별 배상액 역시 일률적 가늠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따라 당국의 배상안 공개를 기다리며 관망하던 금융회사와 투자자 간 기싸움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금감원은 조기 사태수습을 위해 이번 기준안에 따라 대표사례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분쟁조정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예정이다. 

    대표사례 분조위는 이르면 다음 달부터 개시될 예정으로 통상 2~3개월이 소요된다. 조정안에 다툼이 있는 소비자는 소송 절차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 사례별 장기화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당국은 분쟁조정 절차와 더불어 각 판매사가 조정기준안에 따라 자율배상(사적화해)을 실시할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억울하게 손실을 본 투자자가 합당한 보상을 받으면서도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심사숙고해 이번 분쟁조정기준안을 마련했다”면서 “앞으로 기준안에 따라 배상이 원활히 이뤄져 법적 다툼 등 사회경제적 비용이 최소화되도록 판매사와 투자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 ‘정책‧시스템‧현장’…불완전판매 총체적 난국

    금감원의 판매사 현장검사 결과에서는 본점의 판매 정책 및 시스템부터 일선 판매현장까지 다양한 불완전판매 사례 등 위법·부당사항이 다수 확인됐다.

    우선, 판매사들은 H지수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시기에 오히려 영업목표를 상향하고, 영업점에서 ELS 판매를 확대하도록 성과지표를 설계해 전사적으로 판매를 독려하면서도 소비자보호를 위한 비예금상품위원회 운영 등에는 소홀해 불완전판매 환경을 조성했다.

    또한 판매 시스템 차원에서 위험상품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고객에게 상품판매가 가능하도록 상품판매 기준을 임의조정한 사례도 확인됐다. 일부 판매사들은 투자자 성향분석 시 필수 확인항목을 누락해 고난도 장기위험상품에 부적합한 투자자에게 판매가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ELS 상품 판매 시 설명해야 하는 손실위험 시나리오, 투자위험등급 유의사항 등을 누락하거나 왜곡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부실한 판매정책‧시스템 속에 개별 판매과정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불완전판매가 발생했다. 청력이 약한 고령투자자에게 상품내용을 ‘이해했다’라고 답하도록 요청하고, 영업점 방문이 어렵다는 투자자를 대신해 투자성향진단설문지, 상품가입신청서 등을 대리 작성‧서명하는 사례들도 발견됐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결과 확인된 위법부당행위에 대해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엄중 조치할 예정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해당 판매사의 고객피해 배상, 검사 지적사항 시정 등 사후 수습 노력을 참작해 판매사들의 자율배상을 유도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금감원은 금융위와 함께 검사 결과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ELS 등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제도를 종합적으로 진단해 재발방지에 초첨을 둔 제도개선도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