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욱제 대표 "회장·부회장 직 사심 없다… 확실히 약속"유일한 손녀 유일링 "유일한 박사의 뜻과 이상, 정신이 회사가 나아가야 할 길"주주간 의견 엇갈렸지만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
  • ▲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이 정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유한양행
    ▲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이 정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유한양행
    유한양행 98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정관에 ‘회장·부회장’ 직이 신설됐다. 당초 우려가 제기된 것과 달리 주주들의 압도적 찬성을 받았다.

    15일 서울 동작구에 있는 유한양행빌딩에서 열린 유한양행 제101기 정기 주주총회가 열렸다.

    업계 안팎에서 이번 유한양행의 정기 주주총회에 큰 관심이 모아졌는데, 정관 33조의 변경 안건의 가결 여부 때문이다.

    대표이사 등의 선임과 관련한 규정인 33조 2항은 ‘이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서 이사 중에서 사장, 부사장, 전무이사, 상무이사, 약간인을 선임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를 ‘이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서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약간인을 선임할 수 있다’로 수정하려고 한 것으로 회장·부회장 직을 신설하고 이사가 아니어도 회장 등에 오를 수 있게 한 것이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은 표결에 앞서 정관변경 목적과 관련해 “글로벌 50대 제약사 도약을 위해서는 R&D 분야에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 그들을 모시려면 사장이나 부사장으로 영입해야 하고 이들을 대표이사로 올리려면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사내이사로 선임한 뒤 이사회 의결을 거쳐 대표이사로 올려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장 2명, 부사장 6명을 두는 것에 대해 상법에는 저촉되지는 않지만 정관을 수정하는 게 좋겠다는 법무법인의 조언도 있었다”면서 “회장과 부회장에 오른다는 사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확실히 약속하겠다”고 강조했다.

  • ▲ 고 유일한 박사를 기념하는 메모리얼 룸.ⓒ최영찬 기자
    ▲ 고 유일한 박사를 기념하는 메모리얼 룸.ⓒ최영찬 기자
    하지만 안건이 통과되기까지 녹록지 않았다. 회장·부회장 직 신설을 놓고 주주들 간 의견도 엇갈렸다.

    주주 A씨는 “회장·부회장 직을 신설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투자를 접어야 할지 고민할 정도로 불편하다”고 했다. 

    B씨는 “글로벌 50대 제약사 도약을 노리는 유한양행이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는 환경에서 조직이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조직 슬림화가 필요하지 않나 싶은데 더 관료적, 보수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느낌이어서 우려된다”고 쓴소리를 남겼다. 이어 “오래된 사람은 나가고 젊은 피를 수혈하는 게 좋지 않냐”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와 달리 회사 측을 지지한다는 주주도 많았다.

    유한양행에서 40년 동안 근무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주주 C씨는 “회장·부회장이 오더라도 회사가 사유화될 수는 없다”면서 “작은 꼬투리를 잡기보다 글로벌 50대 제약사 도약을 노리는 회사를 적극 지지하는 게 맞지 않냐”고 말했다.

    주주 D씨는 “회장을 누가 하느냐로 밥그릇 싸움 하는 거로 비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외국의 글로벌 인재가 와서 경영해 줄 수 있다면 주주로서 오히려 감사한 일일 것 같다”고도 했다.

    유한양행 OB 회장이라는 주주 E씨는 “다른 대기업에서 회장이나 고문의 인사 전횡, 장기집권등의 문제를 보면서 직원뿐만 아니라 주주들도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글로벌 유한이 되려면 회장·부회장 신설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갖추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있는 분이 오시면 좋겠고 회장 추천위원회 등의 객관적인 절차를 통해 선임하길 바란다”고 부연했다.

    황우수 유한양행 노조위원장도 “특정인에 의해 유한양행이 사유화될 수 없을 것이고 그렇데 되도록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면서 “지금은 격려와 응원이 필요할 때”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주주들의 발언 이후 진행된 투표에서 정관 변경 안건은 통과됐다. 이날 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는 전체의 68%인데 이 중 95%가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누가 회장직에 오를 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이밖에 이날 정기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라온 ▲조욱제 대표의 사내이사 재선임, 김열홍 사장의 사내이사 신규 선임, 이정희 이사회 의장의 기타비상무이사 재선임, 신영재 변호사의 사외이사 재선임 ▲김준철 사외이사 겸 감사(회계사) 재선임 ▲신영재 사외이사의 감사 재선임 안건도 모두 가결됐다.
  • ▲ 유한양행 창업주 고 유일한 박사를 기리는 기념관.ⓒ최영찬 기자
    ▲ 유한양행 창업주 고 유일한 박사를 기리는 기념관.ⓒ최영찬 기자
    한편, 이날 미국에 거주 중인 유일한 박사의 하나뿐인 직계 손녀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도 주주총회에 참석했다

    유 이사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단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다. 유일한 박사님의 뜻과 이상, 정신이야말로 회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얼마나 정직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로 평가받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유한양행 지분 9.67%를 보유한 국민연금공단은 이날 유한양행의 주총 안건에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3년 전인 2021년 유한양행 정기 주주총회 안건 중 이사 보수한도액 승인 건에 대해 ‘보수한도 수준이 보수금액에 비추어 과다하거나 보수한도 수준 및 보수금액이 경영성과 등에 비추어 과다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반대한 바 있다. 당시 국민연금관리공단의 반대에도 해당 안건은 통과한 바 있다.

    한편,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는 유한양행빌딩 앞에서 ▲회장·부회장직 신설안 철회 ▲사장 단임 ▲임기 후 퇴임 의장의 재단 이사직 퇴임 ▲채용비리 전수조사 및 연루자 엄단을 촉구하는 문구를 내건 트럭시위가 진행됐다. 유한양행 임직원 일부가 트럭시위에 필요한 비용을 모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 ▲ 유한양행 사옥 앞에서 정관변경 추진을 반대하는 트럭시위 모습.ⓒ최영찬 기자
    ▲ 유한양행 사옥 앞에서 정관변경 추진을 반대하는 트럭시위 모습.ⓒ최영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