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레 어원은 '門'..인간을 위한 길"

    ※편집자주 = 제주도의 해안과 산간 곳곳을 잇는 작고 아기자기한 길들이 개척돼 '올레'라는 이름으로 여행자들에게 소개되기 시작한 지 3년이 넘었다. 올레는 그동안 걷기 열풍을 일으켜 이제는 도보여행길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자리 잡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또한, 제주올레는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인들이 찾는 트레일 명소로 부상하려는 꿈을 구체화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모두 4회에 걸쳐 올레열풍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들을 살펴보고 올레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본다.

    제주 올레꾼 폭발...3년만에 59만명으로

    제주올레는 가히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제주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2007년 개장 첫해에 넉 달간 3천명에 불과했던 올레꾼(올레길을 걷는 사람)은 2008년에 3만명으로 증가한 데 이어 작년에는 25만1천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10월말 현재 59만4천명으로 지난해의 2.4배 수준에 이르고 있다.

    제주도 올레길의 성공에 자극받아 지리산 둘레길과 서울 성곽길, 정선 아라리 옛길, 무등산 무돌길 등 비슷한 성격의 도보체험길들이 전국 곳곳에 생겼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올레길을 비롯한 도보체험관광을 '10대 히트상품'으로 선정했고, 한 신발제조업체는 아예 비포장도로를 걷는 데 착용하도록 '올레길 워킹화'를 내놓기도 했다.

    ◇올레 어원은 '문'..대문밖 골목 = '올레'는 원래 '집 대문에서 마을 입구(또는 큰길)까지 이어지는 아주 좁은 골목'을 뜻하는 제주어다. 재미있는 것은 집과 마을을,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길인 '올레'의 어원이 '문'이라는 점이다.

    제주대학교 국어문화원 강영봉 원장은 "훈몽자회(訓蒙字會)의 門(문) 항목 설명을 보면, 밖에 있는 문을 우리말에서는 오래문이라 했다"며 "올레는 문을 뜻하는 순 우리말인 오래 또는 오래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 원장은 "실제로 제주도는 대문이 없어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올레가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문의 기능을 했다"며 "제주도와 함께 중세국어의 흔적이 남아있는 함경도에도 '오래'라는 말이 있다"고 덧붙였다.

    제주도의 주거환경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김석윤 건축사는 올레에 대해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걷는 인간의 모습에 알맞게 디자인된 길"이라고 정의했다. 현대의 도로는 자동차 즉 기계를 위한 길이지만 올레는 인간을 위한 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씨는 올레의 원시종교적인 성격에도 주목했다. 그는 "지금은 길을 내고 집을 짓지만, 예전엔 반대로 기가 흐르는 땅을 먼저 골랐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성스럽고 거룩한 땅인 신전, 성소까지 다가가는 길이 올레"라며 "이 길을 걷는 동안 자연스럽게 마음가짐을 다잡고 자신을 정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올레 15코스가 고내봉을 지나 끝날 즈음 마주치는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에는 올레의 정형이 잘 보존돼 있다. 이곳에서는 올레와 어우러진 제주 전통 초가와 텃밭(우영), 안채(안거리), 바깥채(밖거리)의 멋을 느낄 수 있다. 검은 현무암으로 쌓은 올렛담은 높이가 나지막해 주변 풍광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돌담길의 미학을 보여준다.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정착 = 올레길에서 만난 많은 이들은 이미 여러 번 제주를 와 봤지만, 걷기를 통해 제주의 진면목을 재발견했다고 입을 모은다. 제주가 올레길을 통해 여행자들에게 새로운 모습과 형태로 다가가는 것이다.

    올레 2코스에서 만난 이종숙(46.여.서울시), 박금숙(58.〃)씨는 "제주올레를 통해 걷는 것의 매력과 재미를 알게 됐다"며 "시외 노선버스를 타고 다니면 지역주민들과 더욱 친근감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올레가 개장되고 나서 여행문화가 바뀌었다"고 밝혔다. 단기관광에서 장기체류여행으로, 단체관광에서 개별여행으로, 렌터카에서 대중교통 이용으로, 관광지 관광에서 마을 및 재래시장 탐방으로, 일회성 관광에서 지속적인 관광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제주올레를 통해 기존의 소비지향적이고 단순관람형이던 여행 트렌드가 자연과 어우러지는 생태관광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셈이다.

    실제로 올레길에서는 혼자 걸으려고 온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온 김태원(25)씨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 혼자 걸으며 마음을 다잡기 위해 휴가를 내고 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게스트 하우스 등에서 장기간 머물며,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려고 올레길을 걷고 있다.

    ◇서민경제 도움 주는 '착한여행' = 제주올레가 가져온 성과 중 하나는 서민경제에 활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레길은 제주도를 '점 관광지'에서 '선(도보) 관광지'로 바꿔놓으며 지역경제에도 막대한 파급 효과를 주고 있다.

    올레길이 지나는 마을에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인 '할망민박'에는 손자 손녀뻘 올레꾼들이 찾아오면서 온기를 띠기 시작했고, 운영난을 겪던 민박과 펜션 등은 올레꾼의 숙소로 거듭나면서 활로를 찾았다.

    버스·택시 등 대중교통 역시 올레꾼들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제주올레의 분석에 따르면 올레길 개장과 함께 택시 이용객이 3배 이상 증가했고, 버스 이용객도 4배 가까이 늘어났다.

    고용창출 효과도 컸다. 올레길 길동무, 올레길 옮김이, 게스트 하우스 픽업 전문기사, 매니저 등의 직종이 새로 생겨났다. 이에 발맞춰 서귀포매일시장은 지난 5월 '서귀포매일올레시장'으로 이름을 바꿨고, 서귀포의 한 택시회사는 '올레 택시'로 상호를 변경했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에서 10년 넘게 과일을 팔아왔다는 김영배(57)씨는 "올레길을 걷다가 시장에 와서 쇼핑도 하고 먹을거리를 사가는 덕분에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졌다"며 "관광객들은 전통 시장을 외면하지만 올레꾼들은 하루에 두 번씩 시장에 들른다"고 말했다.

    특히 올레꾼들이 쓰는 돈 대부분이 지역사회에 환원된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작년에 올레꾼들이 지출한 190억원(서귀포시 추산) 가운데 상당 금액이 길가에서 귤을 파는 농민이나 집의 방 한 칸을 숙소로 내준 할머니, 올레꾼을 실어나른 택시기사 등에게 돌아갔다는 게 ㈔제주올레 측 설명이다. 바야흐로 올레길은 여행자와 마을이 서로 만족하면서 윈윈하는 '착한여행', '공정여행'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올레는 사색ㆍ명상과 소통의 길

    여성 올레꾼 많고 외국인 늘어

    11월 1일부터 10여일간 제주 올레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혼자서 또는 친한 친구, 가족끼리 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은 올레길을 걸으며 사색과 명상을 즐기거나 서로 대화로 더욱 깊은 정을 쌓고 느끼는 모습이었다.

    ◇혼자 걸으면 사색ㆍ명상의 길 = 올레 14코스 협재해수욕장에서 만난 이정희(40.여.서울시)씨는 "오전에는 배를 타고 비양도에 다녀왔는데, 혼자 생각하며 호젓하게 걷는 여행이라 좋았다"고 회상했다. 전날 올레 6코스를 걸으며 기당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 등을 다녀왔다는 이씨는 "다음에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몇개 코스를 차례로 가고 싶다"고 바랐다.

    올레 7코스를 걷던 김태원(25.경기도 화성시)씨 역시 힘든 개인사를 극복하고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려고 휴가를 내 제주에 왔다. '할망민박'에서 묵었다는 김씨는 "할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인정 많은 숙소를 기대했는데, 일부 상업적인 모습에는 실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들과 같은 나홀로 여행객들이 요즘 가장 선호하는 숙소는 '게스트 하우스'다. 서너명이 한방을 쓰는 불편함은 있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하룻밤 묵을 수 있는데다, 일부는 무료 픽업서비스를 제공해 인기를 얻고 있다.

    온종일 올레길에 발도장을 찍고 다니다 밤이면 숙소에 모여 생면부지의 길동무와 소회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여관에서 게스트 하우스로 탈바꿈한 곳이 지난해 말 기준 12개소에 이르는 등 제주도 전역에 게스트 하우스가 속속 들어서는 것도 올레열풍이 가져온 새로운 풍경이다.

    ◇여자들이 걷기 좋은 길 = 올레길을 걷는 사람 중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특이할 만한 점이다. 역시 여성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은 "걷기는 좋아했지만, 높이 올라가는 일에는 여전히 서툴고 힘들었다. 등산이 아닌 걷기에서야말로 진정한 휴식과 명상, 자기 돌아보기가 가능했다"고 말한다.

    올레 6코스를 걷던 20년 지기 유소희(30.여.서울시), 김소리(〃.〃)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쉬는 기간을 이용해 제주에 왔다. 이들은 "제주도하면 수학여행이나 신혼여행만 떠올렸지 이렇게 아름다운 섬인 줄 몰랐다. 갯깍 주상절리 등 숨겨진 명소를 많이 건졌다"며 "다만 렌터카나 스쿠터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 버스를 타고 싶어도 정보가 거의 없는 점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친한 언니 동생 사이인 이종숙(46.여.서울시), 박금숙(58.〃)씨는 올레 2코스를 걸으며 감귤이 노랗게 익어가는 제주의 가을 정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난해 올레길을 걸은 기억이 너무나 좋아 다시 제주를 찾았다는 이들은 내년 봄까지 올레길 전 코스를 돌아보는 것이 목표다.

    이씨는 "올레길은 여자끼리 단둘이 걷는 게 제일 좋다"며 "남자들은 등산처럼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여자들은 아기자기하게 걷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코스는 여유롭고 한가한 매력이 있지만, 화장실이 없어 불편했다"며 "중간 중간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더불어 걸으면 소통ㆍ만남의 길 = 올레는 가족단위 여행객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자 사랑을 확인하는 명소로도 각광 받고 있다. 천천히 느리게 함께 길을 걷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레 1코스 시작점인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에서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걷던 김진동(44.대구시)씨는 2박3일 일정으로 제주에 왔다. 첫날은 올레를 걷고, 둘째 날엔 한라산에 오를 계획이라는 김씨는 "요즘은 부모동행 체험학습이라고 하면 결석 처리를 하지 않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기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다. 김씨의 아들 우현(11)군은 "다른 곳과는 돌 모양도 다르고, 못 보던 식물들도 많은데다 걷기 운동도 할 수 있어 좋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남편은 서울에서 아내는 강원도 홍천에서 일하는 주말부부인 권순삼(40), 민경희(40.여)씨는 올레길을 걸으며 사춘기 아들과 서로 마음을 확인할 기회를 얻었다. 민씨는 "해안 길을 걷다 낚시를 하면서 아이들의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다는 것도 느꼈다"며 "이번에 찍은 사진으로 위미리의 초가집 갤러리에서 가족사진전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계인이 함께 걷는 올레 = 올레 1코스에서 만난 한 무리의 외국인들은 제주올레 걷기축제에서 프로젝트 <길>을 선보이려고 미리 공연장소를 답사하던 COMP(CROSSING OF MOVEMENTS PROJECT 2010)였다. <길>은 미국, 프랑스, 스페인, 브라질, 말레이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모인 13명의 예술가가 무용, 사진, 비주얼 아트 등을 접목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다장르 종합 퍼포먼스다.

    이 중 스페인 출신 하비에르 아파리시오(Javier Aparicio)씨는 2년 전 걸었던 스페인 산티아고와 올레길을 비교하며 "바람이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공통점"이라며 "제주에는 산티아고에는 없는 바다가 있어 매력적이고, 길과 길이 서로 만난다는 점이 인상 깊다"고 말했다.

    올레길의 정형이 잘 보존된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에서 만난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 하야세 히로미(64.여.오사카)씨는 "한국에서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일본에도 제주올레가 알려지기 시작했다"며 "제주도에는 몇 번 왔지만 올레를 걷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의 초청으로 팸투어 하는 그는 "어제는 우도를, 오늘은 해안도로와 오름을 걸었는데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웠다"며 "외국인들은 위한 안내표지판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걷기코스 개발붐...'추사의 길'ㆍ용천수 '生水' 코스도

    문화예술 콘텐츠 탄생..새소득 창출

    제주 올레길이 널리 사랑을 받으면서 기존 코스 안에서 또 다른 길이 나는가 하면 각계각층의 주민들이 다양한 주제의 걷기코스를 만들어 발표해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제주올레의 마스코트인 '간세인형' 등 주민들이 지역의 자원과 특성을 살려 새로운 소득과 고용을 창출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다양하게 분화하는 올레길 = 제주올레 7코스의 종점이자 8코스가 시작되는 곳인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인근 월평마을의 이야기길은 지역주민들이 올레길 속에 또 다른 길을 만들어 마을을 홍보한 대표적인 경우다.

    이 마을은 매주 토요일 오후 올레꾼이 5명 이상 모이면 해설사인 마을 어르신들이 나서 1시간30분가량 동행하며 이것저것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걷기코스는 월평살롱에서부터 전통초가∼아왜낭목∼송이갤러리∼본향당∼행기수∼월평의 특산물인 한라봉을 재배하는 감귤원과 수출 효자 품목인 백합재배 하우스 등으로 이어진다.

    월평살롱은 주민과 탐방객들의 휴식을 위해 부녀회 사무실 일부를 리모델링한 곳이며, 송이갤러리는 '송이슈퍼'에 꾸며놓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갤러리다. 마을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로 기존 시설들을 활용, 스토리텔링을 입혀 특색있는 관광상품으로 거듭난 것이다.

    마을회장을 지낸 강남석(52)씨는 "마을에 특별한 자랑거리는 없지만, 초가도 한두 채 있고 돼지우리도 지금까지 보존돼 있고 우물, 통물이라고 해서 암반수도 있어 다른 마을과는 다른 점이 한두 가지는 있지 않을까 고민하다 이야기길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제 고장의 아름다움을 알리려고 길을 내는 데는 초등학생의 고사리손도 한몫하고 있다. 제주시 농어촌지역인 애월읍 곽금초등학교 학생들은 곽지와 금성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 여덟 곳을 뽑아 연결해 '곽금 8경'이란 올레코스를 개장했다.

    이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과오름, 곽지해수욕장 등 곽지마을을 둘러볼 수 있는 5.1㎞ 구간의 곽지코스와 금성 뒷동산, 정자천 등을 경유하는 5.8㎞ 구간의 금성코스를 만들고, 자신들의 모습을 단순화한 마스코트 '곽금이'를 표시했다.

    이 학교 김석홍 교장은 "옛 문헌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곽금 8경을 수년 전부터 교육자료로 활용해 왔다"며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을 올레꾼들과 나누고 싶어 코스를 개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제주대 스토리텔링연구개발센터는 조선시대 제주 유배기간에 자신만의 서체를 완성한 '귀양다리'(유배인을 뜻하는 제주어) 추사 김정희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추사의 길' 3개 코스를 만들어 최근 발표했다.

    제주발전연구원은 삼양, 건입, 도두, 내도 등 제주시 해안에 산재한 90여개소의 용천수를 찾아가는 총연장 66.5㎞의 '산물(生水) 여행'이라는 걷기코스를 개발했다. 이 코스는 제주인의 삶의 애환과 전설이 깃든 용천수를 체험할 수 있어 도보여행자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새로운 소득ㆍ고용 창출 = 제주 올레길이 자리잡히면서 길 위에서 각종 문화예술 콘텐츠가 자생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 해녀공연과 같은 마을의 '아트 올레(Art Olle)'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더불어 지역민들은 물론 지구인들과 상생할 수 있는 '커뮤니티 비즈니스 모델'도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최근 큰 인기를 끄는 제주올레 기념품인 '간세인형'은 '게으름'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에서 이름을 딴 조랑말 모양의 마스코트다.

    의류회사에서 버려지는 자투리 천과 헌 옷 등을 재활용해 만들어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고, '간세인형 공방조합'에서 지역 여성들이 일일이 꿰매어 인형을 만드는 만큼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은 올레길을 개척하고 보수하는 데 쓰인다. 앞으론 공방에서 인형제작기술을 가르치고 다문화 가정 여성에게도 일자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서귀포시 성산읍의 올레 1코스 시작점에 있는 안내소에서 '간세인형'을 고르던 박준호(37.서울시)씨는 "올레에 올 때마다 사는데, 이번엔 선물용으로 5개 정도 샀다"고 말햇다. 그는 "제주올레를 후원하는 의미도 있고, 앞으로 이주 여성 정착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고 있다"며 "똑같은 제품이 없는 만큼 수집하는 재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기획특별전 '제주올레, 박물관에서 걷다'가 열리는 국립제주박물관의 공방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간세인형을 만드는 데 한창이다. 일정 체험비를 내면 직접 인형을 만들고 가져갈 수 있어 참가자들의 호응이 높다.

    올레 13코스의 중간지점인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 아홉굿마을에서는 지역특산물인 '보리'를 이용한 추억의 도시락을 맛볼 수 있다.

    도시락은 보리밥에 계란부침, 오이ㆍ파프리카 장아찌, 김치, 멸치볶음 등을 양은 도시락에 넣은 것으로, 올레꾼들에게 오래전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또 보리 버거와 아이스크림, 라떼, 미숫가루 등 간식도 판매하고 있다. 모두 마을에서 재배한 보리로 주민들이 직접 만든 제품들이다.

    이 마을은 몇년 전만 해도 마을에서 외지인을 보기 어려운 제주의 변방 중 변방이었다. 그러나 4층짜리 의자와 해바라기 의자, 요강 의자 등 별난 의자 1천개를 설치, '의자 마을'로 유명해진데다 올레 코스까지 이어지면서 하루에도 수백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올레길 훼손 막아야..."제주의 독특한 문화ㆍ환경이 경쟁력"

    ㈔제주올레는 걷기축제와 '2010 월드 트레일 콘퍼런스' 등을 통해 영국의 코츠월드 웨이(Cotswold Way, National Trails), 캐나다의 브루스 트레일(The Bruce Trail) 등 세계 유수의 트레일과 교류하며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인이 찾는 트레일 명소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생태전문가 등 올레길을 아끼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뤄지도록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올레길 훼손ㆍ변형 막아야 = "끊어진 길을 잇고, 잊혀진 길을 찾고, 사라진 길을 불러낸다."

    ㈔제주올레는 처음 길을 낼 당시부터 나름의 원칙을 고집했다. 되도록 아스팔트 길을 피하고, 사라진 옛길을 찾되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할 때는 반드시 친환경적인 방법을 쓴다는 것이다.

    올레길 각 코스에 설치된 이정표인 '간세사인' 역시 옥수수를 원료로 제조된 특수소재를 사용했다.

    ㈔제주올레의 안은주 기획실장은 "새 길을 만들 때는 굴착기 같은 기계의 힘에 기대지 않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해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너비로만 길을 낸다"며 인위적인 요소는 최대한 배격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올레길이 훼손되거나 변형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안 실장은 지난 4일 열린 한 심포지엄에서 "올레 1코스의 알오름 등 흙길로 이뤄진 트레일은 한두 사람이 지나가기에 적합한 형태로 디자인돼 한꺼번에 여러 명이 지나가면 길이 망가지기 쉽다"며 올레길을 무리지어 단체로 다니지 말 것을 당부한 바 있다.

    서명숙 대표 역시 "지금까지는 길을 내는데 역점을 뒀지만, 앞으로는 기존에 만들어진 길에 손길이 더 필요할 것"이라며 오름처럼 휴식년제를 도입해 올레길을 보호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올레길 정비엔 '시각차' = 올레 10코스 중간지점인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해안은 최근 바닷가 공원을 조성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해안을 걷던 박춘연(52.여.경기도 부천시)씨는 "올레는 자연 그대로가 느껴져야 하는데, 여긴 인공적인 느낌이라 편하지 않다"며 "바닷바람이 해안에 들어왔다가 돌아나가지 못하고 커다란 바윗돌에 부딪히면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제주도의 사업을 두고 '자연 그대로의 해안 등을 정비하는 사업이 꼭 필요한지에 의문이다'는 부정적 의견과, '답압(踏壓.밟아서 생긴 압력)으로 인해 폭우 때 길이 유실되고 생태계 파괴 등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는 만큼 흙길 그대로 놔두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는 긍정적 의견이 맞서 있다.

    이처럼 올레꾼과 행정기관 사이에 시각차가 여전히 큰데다 행정 부서끼리도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때가 있어 이를 총괄해 관리하며 갈등을 조율할 수 있는 전담 부서가 설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7일 월드 트레일 콘퍼런스에 참가했던 '도시와 자연연구소'의 제종길 소장은 트레일을 지나는 도보여행자에 대한 현황 파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는 길이기 때문에 몇 명이 다녀갔는지 파악해야 한다"며 "이러한 정보가 없이는 지속가능한 생태관광이 어렵고, 생태를 강조하며 출발한 트레일이 오히려 생태계에 악영향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생태관광협회 창립자인 다카야마 마사루씨 역시 올레길에 대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올 때 어떤 상태가 될지 최악의 시나리오를 짜봐야 할 필요 있다"며 "장기적 목적을 가지고 예산을 써야 하고 지자체, 지역민 등과 공동으로 코스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기다림의 지혜도 필요 = ㈔제주올레의 김종현(37.㈜NSC 사업기획본부장) 이사는 "제주올레는 지금 수준 높고 품격 있는 도보여행길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과도기에 있다"고 진단했다.

    김 이사는 "올레길이 점차 더 많은 주목을 받고 기대치가 커지면서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불만이 쏟아져 상주 직원이 9명에 불과한 ㈔제주올레 사무국이 감당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며 "길을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이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올레길 주변에 생기는 카페 등이 지역주민이 아닌 외지인의 문화로 채워지고 있어 안타깝다"며 "지역민들의 삶의 질이 나아지려면 능동적 참여와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좋은 사례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주올레의 홍보ㆍ마케팅을 담당한 서귀포시 슬로관광팀 송창조(31)씨는 "아직도 일부 지역에서는 올레길 옆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것만 보더라도 주민들의 인식변화가 단시간 내에 이뤄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자체적으로 준비한 먹을거리와 공연 등 아이템으로 손님들을 맞았던 며칠전 '걷기 축제'를 통해 제주인들의 독특한 삶의 방식이 곧 경쟁력이자 수익창출 방안이라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며 "올레길은 민간의 아이디어로 시작해 여기까지 발전한 만큼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행정의 도움이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게 최종목표"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