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3000억 규모 블랙마켓...한해 1만건 적발 위조품 판매방지 제도 실효성 의문...‘공인인증제’ 시급
  • 20대 회사원 김 모씨는 친구에게 오픈마켓에서 밤 시간대에 명품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얘기를 듣고, 몇 달을 사려고 벼르던 고가의 명품백을 같은 사이트를 통해 구매했다. 하지만 얼마 후 가방이 손상돼 수선을 위해 백화점 매장을 방문한 김 씨는 매장 측으로부터 “정품이 아닌 가품이라 수선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난감할 따름이었다. 

    과거에는 명품 짝퉁 상품의 주요 유통채널은 동대문·이태원 시장 등 오프라인 시장이었지만, 최근엔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오픈마켓에서 짝퉁 판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행법상 오픈마켓에서는 자유로운 상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같은 맹점을 악용해 짝퉁상품을 팔고 잠적해 버리는 이른바 ‘먹튀’ 판매자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2008년 옥션과 G마켓, 11번가를 비롯한 대형 오픈마켓 4곳에서 적발된 위조품 판매건수는 1만505건, 액수로 따지면 85억 원이 넘는다. 이를 실제 명품가격으로 환산할 경우 적어도 500억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신고내용이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실상은 2,500억~3,000억 원대 규모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이처럼 한 해 1만 건이 넘는 위조 사건이 관계기관에 적발되지만 이미 구매한 소비자는 피해 사실을 모른 채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픈마켓 측은 책임이 없다.

    전자상거래 등과 관련해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제20조 제2항에 따르면 ‘통신판매중개업자는 통신판매업자에게 의뢰를 받아 통신판매 중개를 함에 있어서 의뢰자가 책임을 지는 것으로 약정해 소비자에게 고지한 부분에 대하여는 의뢰자가 책임을 진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오픈마켓에서 판매자가 짝퉁이나 불법 상품을 판매하더라도 오픈마켓 업체가 법적으로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픈마켓을 통한 불법판매자들의 명품 짝퉁 판매는 쉽사리 근절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30일 소비자시민모임이 서울 및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위조상품을 한번 이상 구입한 여성 5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위조상품 구입 장소는 인터넷 쇼핑몰이 33.2%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 따르면 오픈마켓에서 ‘짝퉁’ 제품 판매가 주로 판매되는 시간은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말의 심야시간.

    한 오픈마켓 관계자는 “판매자 관리가 소홀해지는 금·토요일 심야시간에 블랙셀러(불법판매업자)들이 짝퉁제품을 많이 판매하고, 다음날 오전이 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며 “주말 밤에는 오픈마켓서 명품구매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특히 오픈마켓에서 명품을 구입할 때는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을 미끼로 한 짝퉁의 유혹을 주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한국소비자원 안현숙 상품팀장은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명품을 구입할 때 가격이 시세에 비해 터무니없이 저렴한 상품은 가짜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 번 더 의심해야 한다”며 “전자상거래로 물품을 구입한 경우 7일 이내 청약철회가 가능하기 때문에 피해 방지를 위해 현금거래를 피하고 가급적 신용카드를 이용해 구매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 블랙셀러들 아이디 도용 급증..오픈마켓 대책 실효 없어

  • ▲ ⓒ 지난 2006년 10월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경찰들이 국내 인터넷 쇼핑몰에서 '오픈마켓' 형태로 입점한뒤 해외 유명 상표를 부착해 판매하던 '짝퉁' 명품 브랜드 제품들을 압수, 공개하고 있다.
    ▲ ⓒ 지난 2006년 10월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경찰들이 국내 인터넷 쇼핑몰에서 '오픈마켓' 형태로 입점한뒤 해외 유명 상표를 부착해 판매하던 '짝퉁' 명품 브랜드 제품들을 압수, 공개하고 있다.

    오픈마켓에서 유통되는 위조품의 심각성은 바로 개인정보 도용에 있다. 인터넷실명제로 인해 무분별하게 수집된 정보가 국내외 사이트에 돌아다니며 심지어 중국에서는 우리 국민들의 주민번호가 한 개당 1원씩 거래되는 실정이다. 지난 2008년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 등을 통해서도 개인정보를 모아 허위 아이디를 만든다. 심지어 블랙셀러들은 사망자 명단을 구해서 허위 아이디를 사용한 적도 있다.

    실제 2005년 국내 한 오픈마켓에 근무했던 관계자는 “하루에 허위로 도용한 아이디를 600개씩 삭제한 경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 유출된 개인정보는 현재 중국사이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블랙셀러들은 이 유출정보를 가지고 오픈마켓에서 허위 판매자로 등록, 위조품 거래와 직거래 사기를 벌이고 있는 것. 오픈마켓에서 위조품 거래로 적발된 피의자 대부분이 많게는 수십 개씩 보유하며 오픈마켓의 판매자로 등록,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위조품 판매자는 도용한 정보로 판매자 아이디를 개설 한 후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이용한다. 또 소득세도 누락돼 탈세도 가능하기 때문에 과세과정에서 도용 피해자가 세금을 추징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한 오픈마켓 관계자는 “오픈마켓은 중개자로서 법적 책임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피해자가 직접 경찰서에 신고해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각 오픈마켓들은 짝퉁명품 근절을 위한 대책을 실행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G마켓은 국내외 유명 브랜드사와 멤버십 형태로 제휴하고 상표권자가 신고하면 해당 상품의 판매를 중지할 수 있는 브랜드 프로텍션 프로그램(BPP: Brand Protection Program)을 운영 중이다. 옥션은 구매자가 위조품을 구입했다고 신고하면 조사 후 위조품이면 판매자활동을 정지시키는 상표권자 권리 침해방지 프로그램인 베로(Vero)를 운영하고 있다.

    인터파크는 직거래 방지 노력의 차원으로 지난 3월 ‘넷두루미’에 가입해 사기판매자 현황을 공유하고 있다. 또 상품등록단계에 있어 해외 유명상표를 등록할 경우 실제 수입면장번호의 진위여부를 실시간 체크하고 회신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상태다.

    11번가는 위조품이 발견될 경우 110% 보상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있다. 11번가 관계자는 “위조품 구매여부 판단과 구매시 구매가격 전액보상에 추가 적립금 제공 및 위조품 판매자를 형사고발하는 등의 강력한 제재를 하고 있어 위조품 근절에 실질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제도가 마련됐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소비자의 신고와 모니터링에만 의존하고 있어 짝퉁의 유통을 근본적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공통된 입장이다.

    한편 오픈마켓 업체가 형식적인 판매 방지 제도만 갖추고 있을 뿐,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적극적으로 나서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오픈마켓은 불법 판매자들의 짝퉁 거래를 통해서도 중개 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에 상품기획자(MD)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짝퉁 거래를 알면서도 방조하거나 형식적 모니터링을 하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한다는 것.

    실제로 지난 2009년 인터파크의 경우 직원이 입점 판매자가 수입 브랜드 상표를 위조해 옷을 만들어 판매한 사실을 알고도 묵인해 적발된 사건도 있었으며, 같은 해 전자랜드 계열사 직원 역시 오픈마켓에서 소매상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잠적한 사건도 발생했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매출 하락에 대한 우려 때문에 짝퉁 판매를 MD들이 묵인하는 경우도 있다”며 “업체들의 위조품 방지 시스템 도입으로 쉽게 근절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  특허청 단속 건수 올해 10배 급증...‘판매자공인인증제도’ 도입 의무화 법안 통과 시급

    실제 2008년부터 올해 8월까지 특허청이 오픈마켓의 짝퉁 상품을 단속한 실적을 보면 2008년에 526건, 2009년 160건에 이어 올해는 무려 1640건에 달했다. 2009년에는 2008년보다 366건이 줄어들었지만, 올해는 다시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또 특허청의 단속으로 적발돼도 해당 오픈마켓 사이트에 판매중지와 판매자 ID 삭제를 요청하는 것이 조치의 전부다. 때문에 적발된 사업자가 다른 오픈마켓 사이트에서 짝퉁상품을 판매하거나, 다른 사람의 아이디로 등록해서 판매를 하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김성회(한나라당) 의원은 단속에 적발돼도 조치사항이 판매중지 정도로 약하기 때문에 짝퉁상품 판매가 계속 재발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오픈마켓에 급증하는 짝퉁상품 문제에 대해 김 의원은 “올해 9월부터 특허청에 특별사법경찰권이 도입된 만큼 짝퉁상품 적발시 판매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짝퉁상품을 직접 압수하고 폐기하도록 처벌조치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온․오프라인 전담 사이버 수사팀 등 다양한 대책을 강구해 짝퉁상품 판매의 재발방지와 근절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피해 사례가 증가함에 따라 ‘판매자 공인 인증제’ 도입 의무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판매자공인인증제도’란 개인판매자에 대해 회원가입시 범용공인인증제 등록을 의무화해 신언을 명확히 검증, 타인의 개인정보를 도용한 불법 아이디 개설을 막아 불법적인 상거래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판매자 인증방법은 국가기관에서 인증된 인터넷 공인인증서와 휴대폰인증, 신용카드 인증이 있다. G마켓은 공인인증서 방식과 신용카드 방식을 혼용해 사용하지만 신규가입셀러에 한하며, 이전 셀러에게는 소급적용을 안하고 있어 ‘반쪽’짜리 공인인증제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옥션 또한 현재 휴대폰과 신용카드 인증 방식을 통해서만 실명 인증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오픈마켓 사업자 중에서는 100% 판매자 공인인증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곳은 11번가 정도로, 2008년 7월부터 모든 개인판매자를 대상으로 범용공인인증 시스템을 도입해 신분확인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역시 지속적으로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오픈마켓의 법적 책임을 의무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온라인쇼핑몰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이 수 건 제출돼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오픈마켓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개정안의 골자는 ‘통신판매중개자(오픈마켓)는 물품판매자의 신원정보를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하고, 잘못된 정보제공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연대책임을 묻는다’는 것. 이와 함께 지난해 4월 이종걸 국회의원(민주당)이 발의한 ‘인터넷 허위판매 행위 근절을 위한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공인인증이나 아이핀으로 본인확인된 판매자만 오픈마켓 등록을 허용하도록 오픈마켓 사업자 책임을 명문화하는 법안이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개정안은 법안소위에 넘어간 상태며, 정부안과 병합해 이번 정기회의 때 심사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블랙셀러들의 짝퉁 판매와 관련해 오픈마켓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돼 분쟁의 소지가 줄고,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돼 법 개정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관련 법안의 시급한 국회 통과와 더불어 오픈마켓들 스스로도 판매실태를 철저하게 조사해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제대로 위조품 판매 단속이 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