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없는 글로벌 인재는 ‘사상누각’대중외교 잘 하려면 대미외교부터 탄탄히 해야
  • “어느새 중국 없는 세계경제는 상상하기 힘들게 됐습니다. 따라서 13억 경제대국 중국에 대한 전문가를 길러 내는 게 중요합니다. 대중외교와 대미외교 사이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 한국의 장래에 매우 중요합니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지역적인 것과 정체성도 중요합니다. 한국에 대한 정체성과 글로벌 지식을 함께 쌓기 바랍니다.”

    지난 2월 8일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이경태 국제무역연구원장은 ‘중국은 아직 기회의 땅’이라고 강조했다. 준비해간 질문에 거침없이 답하는 그에게서 무역 전문가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1985 자전거로 가득 찼던 중국 vs. 2011 자동차로 가득 찬 중국

    선진화 홍보대사(이하 <선>) 최근 세계 교역계의 이슈는 G2가 아닐까 싶습니다. 원장님께서 처음 중국에 가셨을 때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의 조짐이 보였었습니까.

    이경태 국제무역연구원 원장(이하 <이>) 제가 처음 중국을 방문한 것은 1985년입니다. 당시 중국에 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중국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안기부에 허가를 받아야 했어요. 적성(適性)국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중국이 문호를 개방하기 전이라서 우리와는 통신도 안 될 정도로 고립된 나라였습니다. 도로는 옛날 한국 시골길과 같았고, 북경시내도 자전거물결이 넘칠 정도였지요. 모두 인민복을 입었고, 밤에는 도시 전체에 불도 안 들어 왔어요. 불과 30여년 만에 G2로 불릴 만큼 강국이 되고, 도시 전체가 자동차의 물결로 바뀐 중국의 성장을 볼 때마다 놀라울 뿐입니다.

    “아직은 기회의 땅. It’s never too late !”

    <선> 많은 사람들이 중국은 아직도 기회의 땅, 둘도 없는 시장이라고 일컫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시장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과연 지금도 중국이 기회의 땅이라고 보시는 지요.

    <이> 중국시장 진출 시기가 늦었다고 보느냐는 질문이라면 제 대답은 ‘아직 늦지 않았다(It’s never too late)’입니다. 기회가 많이 줄어 든 건 사실입니다. ‘Fortune 500대 기업’ 중 중국에 진출하지 않은 기업이 20개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중국에 진출하지 않고 글로벌 기업이 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지요. 중국의 총 GDP가 미국 다음인 2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현재 중국 GDP가 5조 달러인데 한해 5%씩 성장한다고 치면 4년마다 우리나라 GDP(약 1조 달러) 규모로 성장하는 셈입니다. 한마디로 어마어마하죠. 물론 중국 내부에는 리스크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계층 간 소득 격차, 정치적 불안정, 소수민족의 자치요구 등은 고민일 것입니다. 하지만 리스크는 어디를 가든 항상 있습니다. 기업들은 ‘위험’과 ‘기회’를 비교해서 진출 여부를 결정합니다.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1인당 GDP가 5000달러 정도니까 사실 못사는 나라에 속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발전 잠재력은 아주 크다는 얘기이지요. 앞으로 내수가 커지면 중국 시장에서의 기회도 함께 커질 것입니다. 결론은 기회의 땅이라는 거죠.

    “중국식 자본주의는 더욱 개방적이다”

    <선> 21세기는 한명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때문에 각국 정부는 인재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한국 인재들이 중국에 진출할 경우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이> 중국의 대졸자는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현재 상위 20%만 대학에 진학하고 있는 데 중국의 인적자원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선진국과의 지식 격차도 좁혀지고 있어요. 우리나라 학생들은 타고난 재능과 학력, 지식 면에서 중국에게 뒤떨어 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시대에 맞게 필요한 국제적 소양(외국어 능력)을 겸비한 학생도 많고요.

    하지만 한국의 암기위주, 주입식 교육을 받은 한국 학생들에 비해 중국 학생들이 창의력 면에서 뛰어날 수도 있어요. 또 자본주의적 경쟁과 개방 분위기는 중국이 훨씬 강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소득분배 수준이 우리보다 훨씬 안 좋아도 아직 복지보다는 시장 경제적인 요소를 더 장려합니다. 일례로 북경대가 기존의 사회주의 경제학을 가르치던 학과를 유지하면서 시장 경제를 다루는 학과를 새로 만들어 경쟁시켜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을 유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을 지닌 중국인이 어쩌면 미래 세계의 주역이 될 지도 모릅니다.

    <선> 최근 해외유학을 떠나는 한국 학생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유학생들이 중국 유학생들에 비해 모국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신감이 뒤떨어진다는 지적을 많이 듣습니다. 원장님께서 보셨을 때 어떻습니까. 

    <이> 물론 중국학생들의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요. 그 자부심은 좋은 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100년간 서구 열강의 침입에 시달린 역사를 바탕으로 한, 서구에 대한 엄청난 모멸감이 배경에 깔렸다고 볼 수 있어요. 상처 받은 자존감이 최근 경제발전을 통해 치유되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러나 민족적 자부심이 우월주의나 폐쇄적 민족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한국 학생들의 자부심도 그에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對中무역을 중시해야”

    <선> 우리나라의 대중 무역 의존도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농산물, 식품, 자원 의존도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제 중국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혹시 이런 상황이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이> 중국 경제가 잘 돌아가면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에게도 좋은 일이지요. 물론 중국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으면 수출이 어려워질 위험도 있어요. 우리 GDP의 40% 정도가 수출, 수입에서 발생해요. 이렇게 세계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크기 때문에 대중의존도를 줄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런 시도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아요. 문제는 대중무역 내용입니다. 우리가 2008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대중수출 덕분이지요.

  • 중국과의 무역 관계에 있어서 주의할 점은 첫째 우리가 대외적 충격에 약하다는 점, 둘째 대중 수출이 대부분 대기업에 의한 것이라는 점, 셋째 대외의존도가 높으면 내수시장을 키우는 게 어려워 내수시장을 주된 상품 판매처로 하는 중소기업의 성장이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이런 면을 살펴서 투자와 저축을 늘리고 수출과 내수시장의 균형을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은 자원 전쟁입니다.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로 삼는 것은 주목해야 합니다. 자원은 유한한 반면 수요는 급속히 늘어가기 때문에 자원전쟁은 더욱더 격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리스크에 대비해 자원을 대체할 첨단기술이 필요해요.

    “대중외교 잘 하려면 대미외교 기반 탄탄해야”

    <선> 최근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돌돌핍인(咄咄逼人)으로 대외 정책을 바꾸고, 세계의 선두에 서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G2라는 말도 이에 맞춰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이 흥할 때 우리나라는 위험해졌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대중 전략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이> 양분해서 생각할 문제가 아니에요. 대중외교에서 독자성을 가지고 중국에 대응하려면 우선 대미외교의 기반을 탄탄이 해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를 경제적 면만 보지 말고, 외교 안보에서도 강화시켜 나가야 해요. 특히 북한 문제에 대한 소통강화가 필요하죠. 한편 경제적 상호관계를 심화시켜 나가는 것도 외교적 관계를 심화시키면서 동시에 가능하고요.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특히 외교 쪽으로 중국 전문가를 길러 내는 게 중요합니다. 외교란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예요. 전화로 소통할 정도로 친근한 인사가 많아야 해요. 강대국 외교에 한국의 이익이 희생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중외교와 대미외교 사이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 한국의 장래에 매우 중요합니다. 

    “상품의 차별화 전략이 필요”

    <선> 중국과 한국의 기술 격차가 어떤 분야에서는 2년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중국은 조선, 철강, 자동차 등에서도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 동력마저 위협을 받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이> 내가 여러분만할 때는 미국을 따라잡을 나라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안가 일본이 80년대에 미국을 따라잡았어요. 1인자는 경쟁자에 의해 따라 잡히기 마련이지죠. 한국도 중국에 따라잡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동차와 조선, 전자제품 면에서 중국은 생산량은 많지만 수출은 미미해서 아직은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아주 싸구려 제품에서 시작해서 최첨단 상품에 이르기까지 생산 스펙트럼이 높기 때문에 비교우위가 적용되지 않는 특이한 케이스란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중국은 외국 기업이 투자하려 할 때 전제조건으로 기술이전을 요구해요.

    이런 식으로 발전하는 중국이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한국 산업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같은 산업이라도 특화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즉 중국 상품과 질적-특화 경쟁을 벌이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IT분야에서 융합화, 복합화하는 것처럼 말이죠.

    “한국, 일본과의 경제적 관계를 돈독히 할 필요”

    <선> 우리나라는 일본과 중국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습니다. 산업 발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고부가가치 하이테크 산업에 뛰어나고, 중국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1, 2차 산업 전반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생존전략은 무엇입니까.

    <이> 이를 ‘샌드위치론’이라 하는데, ‘샌드위치론’은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보다는 앞으로 이렇게 될 수도 있으므로 조심하자는 의미를 지녔어요. 오히려 현실은 ‘역(逆)샌드위치’라고 봐요. 계속해서 이 상황을 유지시키기 위해선 기술 확보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일본에서 우수한 기술, 좋은 부품을 사올 수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일본 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기술개발을 이어 나가야 합니다. 또한 일본 시장의 폐쇄성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점도 잘 이용해야 합니다. ‘샌드위치 상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일본과의 경제적 관계를 돈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아 허브 되려면 싱가포르 벤치마킹해야”

    <선> 지난 정부에서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를 ‘아시아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공언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워보이지는 않습니다. 과연 한국이 아시아의 허브가 될 수 있을까요? 

    <이> 허브란, 각종 자원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입니다. 즉 돈과 사람과 지식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살고 싶게 만들어야 합니다. 언어, 문화, 투자 등 환경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싱가포르, 홍콩이 허브로서 잘 나가는 것은 이들이 영어권 국가인 점이 커요. 즉 허브가 되기 위해선 영어가 중요합니다. 

    자원을 끌어들이는 환경 조성의 모범적 사례로는 리콴유 수상이 싱가포르를 성장시키기 위해 기울인 노력들, 즉 서방 선진국 수준의 기업여건과 생활여건을 제공하고, 공무원들의 경쟁력을 높여야 합니다.

    “원화를 국제화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 

    <선> <금융대국 중국의 탄생>이라는 책을 보면, 세계의 은행으로 도약하려는 중국의 금융전략이 잘 나와 있습니다. 이런 전략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바로 중국 당국의 ‘기축통화전쟁’이라고 봅니다. 중국이 ‘기축통화전쟁’에 몰두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이> 중국이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 중앙은행 총재가 SDR을 기축통화로 하자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현재 중국의 목표는 무역 대금을 지급할 때 위안화 사용 비중을 늘리는 것이죠. 기축통화라는 것은 무역결제의 지불수단으로 사용되고, 국제자본거래에서 자주 사용되고, 각국외환보유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화폐를 말하죠.

    그러나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중국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각종 리스크 때문에 달러보다 훨씬 낮고, 중국 자본시장과 외환시장 또한 매우 폐쇄적이고 투명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자금 시장이 해외자본에 전면 개방되면 과연 중국이 잘 대처할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달러에만 너무 의존하지 말고 결제화폐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원화를 국제화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 “글로벌 인재양성,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정체성도 중요” 

    <선> 말씀을 듣다보면 정말 이제는 국내에서 아옹다옹하기보다는 글로벌한 활동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저희 젊은 세대가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역량을 강화해야 할까요.
     
    <이> 아시다시피 지금은 글로벌 경쟁시대입니다. 우선 국제기구, 다국적 기업에 진출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 보길 바랍니다. 해외에서는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있으니까요. 특히 개도국 쪽은 성장 잠재력이 크므로 그 분야도 고려해보길 바랍니다. 또한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지역적인 것, 정체성이 중요하므로 한국에 대한 것들을 숙지하면서 글로벌한 지식을 쌓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외국인들과의 소통도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후기>

    이경태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은 정체성이 없는 글로벌지식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글로벌을 외치면서 정작 자신이 태어난 국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외국인들과의 소통도 용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느새 중국 없는 세계경제는 상상하기 힘들게 됐습니다. G2라는 말은 이제 어색하지 않아요. 일본조차 최근 중국을 2대 경제대국이라고 공식 인정했습니다. 따라서 13억 경제대국 중국에 대한 전문가를 길러 내는 게 중요합니다. 외교란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예요. 전화로 소통할 정도로 친근한 인사가 많아야 해요.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 외교에 한국의 이익이 희생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해요. 대중외교와 대미외교 사이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 한국의 장래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는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정체성 확립과 글로벌지식을 함께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인터뷰 진행: 선진화 홍보대사 오선화, 강성우, 이혜민, 이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