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전략실, 2인자 자리에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선임 유럽행 중 위기돌파 구상… 관리형에서 행동형으로 전환
  • 최근 유럽발 경제위기로 전세계가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이 발 빠르게 전격적인 인사를 통해 위기극복과 변화, 제2의 혁신을 예고해 이목이 집중된다.

    이건의 회장이 유럽을 순방하고 귀국한지 2주 만에 사실상 2인자 자리이자 그룹 전략의 총괄지휘관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을 교체한 것이다.

    미래전략실장을 교체한 지난 7일은 이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라며 변혁을 지시한 프랑크푸르트 선언 19주년 기념일이기하다.

    이 같은 행보에 따라 일각에서는 삼성그룹 전반에 걸쳐 또 한 차례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변혁을 주도할 행동파!

    8일 미래전략실장으로서 첫 출근한 최지성 부회장의 행보 역시 이 같은 변화와 혁신을 예고했다.

    최 실장은 도보로 사옥 앞에 도착한 후 현관에 들어섰다. 이어 기다리는 기자단을 향해 90°로 인사한 후 출입증을 이용해 검색대를 통과했다. 잠깐의 움직임이지만 기존의 관행을 깬 파격 행보라고 할 수 있다.
     
    기본 원칙을 지키고 현장을 발로 뛰는 특유의 경영스타일을 보여주며 이하 전 직원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최 실장의 경영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일화는 지난 1985년 혈혈단신으로 유럽에 파견돼 반도체를 팔았던 것이다.

    그는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지난 1985년 1월 1일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 발령 받고 그해 유럽으로 갔다. 반도체를 몰라서 동료직원들에게 가르쳐 달라고 했지만 '백지한테 어떻게 가르쳐 주느냐'는 말을 들었다.
    억울해서 외국 책을 번역해 수백페이지를 외웠다. 그런데도 거래선과 얘기하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해서 각종 거래선의 현안 이슈를 파악하고 보고서를 줄줄 외워 반도체를 팔았다."


    ◆독한 스타일이 이 회장 입맛?


    최 부회장은 ‘독일병정’이라는 별명처럼 매사에 철두철미한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업무에 한 치의 소홀함이 있어선 안 된다며 자신은 물론 임직원에게도 혹독한 규율과 태도를 강조하는 타입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이다.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고 난 뒤 다소 부드러워졌다는 평도 있지만 디지털미디어 총괄이나 정보통신총괄 사장시절 궁금한 것이 있거나 챙겨야 할 업무가 있으면 새벽에도 임원들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것.
     
    이 같은 최 실장의 행보를 가까이서 지켜본 직원들은 “최 실장이 부임하면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변화와 혁신 의지가 강한 이건희 회장과 업무 스타일이 강한 최 실장이 합을 이뤘으니 경영혁신이 진행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 아니겠는가”라고 전했다.

    이 회장이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장을 최 부회장으로 교체하면서 또 한 번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위기 때마다 승부를 걸어온 이 회장이 유럽 경제위기의 진원지를 살피고 온 뒤 전격적으로 최 부회장을 미래전략실장으로 선임한 이면에는 그를 통해 성공DNA를 전사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중이 담겨 있다.

    미래전략실은 삼성그룹의 핵심조직으로 계열사 간의 중복업무를 조정하고 인사, 감사 등의 기능을 담당한다. 아울러 향후 삼성그룹을 이끌어 나갈 미래 신성장동력 사업의 발굴도 담당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이런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장 겸 미래전략위원장을 겸한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미래전략실이 그룹 내 계열사들을 관리하는데 주력했다면 향후에는 그룹 전체의 시너지를 내고 성장을 위한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 실장, 용퇴 아닌 질책?

    김순택 전임 미래전략실장은 지난 2010년 11월 선임됐다. 2년을 못 채우고 물러난 것이다.

    삼성에서 발표한 교체 이유는 김 실장의 건강문제다. 이인용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이건희 회장이 유럽출장에서 귀국한 뒤 제2의 신경영에 준할 만큼 강도 높은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고 김 실장이 건강상의 부담을 느껴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사배경을 놓고 사의보다는 경질에 가깝다는 해석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방해 사건이나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의 차명재산을 둘러싼 형제간 소송, 계열사들의 각종 부정행위 등 삼성 안팎에서 터진 현안들이 매끄럽게 처리되지 못한 데 대해 미래전략실을 질책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9월 갑작스럽게 장충기 사장을 미래전략실 차장으로 승진시킨 것도 김 전 실장의 조율과 장악력에 대해 실망한데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룹의 신수종 사업이 제대로 된 결실을 맺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이번 인사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삼성은 2년 전인 지난 2010년 5월 태양전지·자동차용 전지·LED(발광다이오드)·바이오 제약·의료기기를 5대 신수종사업으로 키우겠다고 밝힌 뒤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하지만 태양전지와 LED 등은 적자사업으로 전락했으며 자동차용 전지만이 돈을 벌고 있다.


    ◆이젠 관리가 아닌 행동할 때!

    김 전 실장은 삼성의 대표적인 기획통이다. 하지만 삼성SDI 외에는 주요사업을 직접 맡았던 경험이 별로 없었다.

    반면, 최 부회장은 TV 총괄 사장을 맡아 삼성 TV를 세계 1위로 만들었고 휴대폰이 노키아를 따라잡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최 부회장은 애플이 제품 발표를 하면 밤을 새워 직접 모니터하고 새벽에도 이메일을 체크할 정도로 독하게 일하는 스타일이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도 교감이 잘 되는 전문경영인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발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글로벌 현장 감각을 지닌 실무 야전형 최고경영자(CEO)인 최 부회장을 미래전략실장으로 삼은 셈이다.

    이 회장이 최 부회장을 그룹 사령탑으로 내세운 것은 사업 체질과 임직원들의 자세를 지난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에 버금갈 정도로 혁신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전자는 여전히 손안에!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지휘체제는 부품부문(반도체·LCD)장인 권오현 부회장이 승계한다. 권 부회장은 앞으로 반도체·LCD·LED·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 삼성의 부품 사업을 총괄하면서 대표이사 역할을 수행한다.

    최 부회장이 부문장을 맡았던 세트부문(정보통신·TV)은 따로 부문장을 임명하지 않기로 했다. 최 부회장 지휘 아래에서 TV와 가전 사업을 총괄해왔던 윤부근 사장과,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 사업을 총괄해온 신종균 사장이 세트 사업을 나눠서 사업을 맡는다.

    세트부문장을 따로 선임하지 않는 것은 결국 최 부회장이 미래전략실에서 세트부문의 실적을 직접 체크한다는 뜻도 된다. 실제로 윤부근 사장과 신종균 사장은 오랫동안 최 부회장과 함께 일을 해왔다.

    위기 극복과 제2의 혁신을 통한 새로운 성장을 모색하기 위해 최 부회장을 컨트롤타워로 불러들였지만 핵심 주력사업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이 회장의 의중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만큼 최 부회장에게 많은 힘이 실리겠지만, 아울러 책임 역시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물론 그룹 전반의 사업을 챙기고 거세지고 있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요구에도 대처해야 한다. 여기에 현재 진행 중인 부패척결과 지배구조 변화, 상속소송 등의 문제도 해결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야전사령관이자 스타 경영인인 최 부회장이 과연 산재한 여러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 갈지, 또 글로벌 경제 불황과 새로운 도약을 위해 어떤 전략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