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서화 장편소설 '레드'-1

  • <37> 죽음의 미스터리


    정오 무렵, 정원과 유진은 유명 호텔이 직영하는 최고급 그릴 전문레스토랑에 와 있었다. 그곳의 품격을 직설적이고도 명료하게 설명한 건 모던하고 감각적인 실내 인테리어였다. 하지만 그 품격에 지울 수 없는 기억의 향기를 더한 건 세련된 몸가짐으로 수준 높은 서빙을 하는 직원들이었다. 정원과 유진은 창가에 접해 있는 사각테이블에 앉았다. 타원형의 유리벽을 통해 발아래로 펼쳐진 서울의 전경이 아찔하다 못해 짜릿했다.
    “재국 씨, 여기!”
    “와! 팀장님, 여기 전경이 끝내주네요. 설마 둘이서만 벌써 식사를 끝낸 건 아니죠?”
    “재국 선배는 테이블 위가 말끔하게 셋팅되어 있는 거 안 보이세요?”
    “나의 미스테이크.”
    “재국 씨, 비밀자금에 대해 낌새를 맡은 또 다른 기자는?”
    “TV방송국과 주요 일간신문을 모두 털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괜한 냄새를 풍길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릅니다.”
    “그나저나 오늘 식사계산은 둘 중 누가 하는 거야?”
    “둘 중요?”
    “응, 최소한 그건 알고 먹는 게 초대해주신 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아닐까?”
    “…….”
    “혹시 나?”
    “훗, 맞아요! 재국 선배. 그래서 부른 거예요.”
    “어째 오늘 발걸음이 무겁더라니.”
    “아, 맞다! 제가 은서도 소개시켜 주었으니까 당연히 소개턱도 내야 하잖아요.”
    “맞아! 그게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지.”
    “두 분이서 오늘 아예 저를 벗겨먹기로 작정을 하셨군요?”
    “아주 쬐끔만.”

    그때 주문한 그릴요리가 아름다운 담당 서버의 손에 들려 나왔다. 마블링이 하얀 눈처럼 빨간 고기에 내린 스테이크는 화려한 색감부터 상상력을 자극해 입안에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더구나 폭풍처럼 입안을 휩쓸고 지나가는 부드러운 식감(食感)은 중추신경계를 마비시킬 만큼 일품이었다. 그런데 이미 식사를 마친 재국이 언제부턴가 정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엔 감성은 날아가고 이성만 남아 있었다.
    “팀장님, 리재경이 살해당하던 날 말입니다.”
    “!”
    “박철진의 진술을 토대로 하면 정황상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반적으로 다시 한 번 재조사를 해봤습니다.”
    “그래, 뭐 좀 나온 게 있어?”
    “리재경이 피살되기 바로 전날 중국 국적의 동양인 한 명이 그곳에서 묵은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현재 쿠알라룸푸르의 약 70%가 중국인인 것으로 아는데, 흠! 소속은?”
    “당시 그는 중국대사관에서 발급한 외교관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추후 말레이시아 정보 당국이 파악한 바로는 북한에서 직접 파견한 요원 같답니다.”
    “통화기록과 통화내용은 확보된 게 있어?”
    “전혀요. 아주 깨끗했답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고 시간이 많이 경과해 말레이시아 측에서도 더 이상의 확인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가 호텔에 투숙한 목적과 기간은?”
    “체크인하면서 기재한 투숙 목적은 관광이었고 기간은 단 하루였답니다.”
    “그럼 체크아웃된 날짜를 기준으로 할 때 리재경과 북한에서 파견한 요원 사이에는 직접적으로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거잖아요?”
    “유진 씨, 언제 우리가 하는 일이 눈에 보인 적 있어? 눈에 보이면 그것은 이미 실체에서 멀어져 있다고.”
    “역시! 팀장님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요.”
    “그럼 뭐가 또 있었어요?”
    “당시 투숙객 중에 아주 특별한 인물이 7층 객실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추정컨대 북한 요원이 그 사람을 만나고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그게 누군데요?”
    “조직원 3만 9,000명을 거느린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구미(山口組)의 마에다 유주루(前田讓) 비서야.”
    “마에다 유주루가 확실해?”
    “예, 제가 공안조사청(公安調査聽·PSIA·Public Security Intelligence Agency)에 신원정보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확실하다는 답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황상 가장 유력한 혐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정리를 워낙 깔끔하게 잘 해놓았다는 겁니다.”
    “마에다 유주루라, 마에다 유주루.”
    “왜요, 팀장님. 마에다 유주루에 대해 잘 아십니까?”
    “예전에 일본과 국제테러 공조수사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일본 공안조사청의 외사과 요원으로부터 요주의 인물이라고 단단히 교육을 받은 적이 있거든. 거기다 기억하기도 좋게 경력마저도 특이해. 규슈(九州)와 오키나와(沖繩) 지역을 담당하는 육상 자위대 직속의 서부방면대 신속대응군 통합작전부대인 중앙즉응집단(中央卽應集團) 3등육좌(3等陸佐·육군소령) 출신이거든.”
    “맞습니다, 팀장님.”
    “아니, 어떻게 특수부대의 소령 출신이 야쿠자에?”
    “다른 나라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비상식적인 일이겠지. 하지만 일본에선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야. 심지어 일본인은 우요쿠(右翼)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야쿠자를 먼저 연상하지.”
    “마에다 유주루의 입국 목적은?”
    “호텔과 카지노에 대한 투자상담 때문에 입국했답니다.”
    “팀장님, 그럼 마에다 유주루가 리재경을 살해한 용의자라고 확증하시는 건가요?”
    “글쎄, 가능성이 반반이지 않을까?”
    “그건 왜죠?”
    “야쿠자뿐만 아니라 조직폭력배들의 생리가 고붕(졸개)들의 절대적인 복종을 조직원리의 바탕으로 삼잖아. 때문에 위험성이 큰 이런 일에 오야붕(두목)이 직접 나설 가능성은 아무래도 적겠지. 하지만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야 얼마든지 있는 거 아니겠어?
    “하긴.”
    “더구나 현재 야마구치구미가 외형적으로 대대적인 조직 확대를 시도하고 있잖아. 따라서 얼마든지 북한과 관계를 맺을 가능성도 존재하고.”
    “맞습니다, 탐장님. 모든 정황과 심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건 당일 카지노 근처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결정적인 물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사건 이후에도 며칠을 더 묵었다가 체크아웃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마에다 유주루의 오만한 자신감의 표현인데, 그 이외 다른 인물은?”
    “요주의 인물이 또 한 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황상 리재경의 피살사건과 그 인물을 직접적으로 연관시키기엔 다소 무리가 따를 것 같습니다.”
    “재국 선배, 그게 누군데 미리부터 발을 빼요?”
    “마에다 유주루처럼 투자를 위해 입국한 롯사나 시아피노(Rossana Shiaffino)라는 이탈리아의 배우 출신 여성CEO야.”
    “여성CEO라고요!”
    “그런데 그녀는 시칠리아 기반의 마피아보다 조직원 수에 있어 다섯 배나 더 많다고 알려진 고모라(Gomorra)의 대모 중 한 명으로 의심받고 있거든.”
    “살찐 고양이, 톰보이 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그 고모라의 대모 말이에요?”
    “맞아.”
    “그럼 오히려 그녀가 마에다 유주루보다 더 리재경의 피살사건에 근접한 용의자일 가능성이 높은 거잖아요?”
    “그런데 롯사나 시아피노는 현재까지 드러난 범죄사실이 단 한 건도 없어. 그래서 아직까지 반마피아 담당국(DNA)조차 손도 못 대고 있는 실정이야.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 권총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여자 혼자서 호위총국 출신인 리재경을 제거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녀의 입국 목적인 투자와 관련된 상담은 어떻게 됐지?”
    “첫 만남 이후에 양쪽 다 적극성을 보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마에다 유주루 측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유는?”
    “호텔 측에선 애초 기대했던 투자금액보다 적었기 때문이고, 마에다 유주루와 롯사나 시아피노 측에선 요구했던 지분 참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리재경의 피살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확보한 또 다른 구체적인 사실이나 물증은?”
    “신원정보 이외에 추가로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피살된 장소가 나이트클럽의 화장실이다 보니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건현장이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답니다. 거기다가 고객들 대부분이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추후 관광산업 전반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경찰 당국도 마약 관련 사고로 조기에 덮으려 한 의지까지 엿보이고요.”
    “리재경의 사망 원인이 헤로인 과다투여라고 했지?”
    “맞습니다. 박철진의 진술대로 헤로인 과다투여로 인한 심장마비였습니다.”
    “리재경이 피살될 때 롯사나 시아피노는 어디에 있었지?”
    “호텔에서 콜걸 2명과 함께 이른바 붕가 붕가(bunga bunga) 파티를 즐겼답니다. 물론 호텔 내에 설치된 보안카메라의 판독 결과에서도 전혀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고요. 참고로 마에다 유주루는 당시 호텔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돌고 있었습니다.”
    “재국 씨.”
    “예, 팀장님.”
    “일단 롯사나 시아피노가 묵었던 객실에서 지문이 채취된 것이 있나 말레이시아 경찰에 다시 확인 좀 해봐.”
    “지문요?”
    “응. 그리고 롯사나 시아피노가 탄 비행기가 말레이시아에 도착하기 전에 중간에서 기착(寄着)했는지와 카지노에서 리재경에게 접촉한 인물도 함께 한번 알아보고.”
    “알겠습니다. 아참! 들으셨어요?”
    “뭘?”
    “조금 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Tel Aviv)공항 내 로비에서 속옷폭탄테러가 발생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답니다.”
    “하여간 그쪽 동네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네요. 어디 무서워서 숨이나 한 번 제대로 쉬겠어요. 여기서도 쾅! 저기서도 쾅! 도처가 움직이는 지뢰밭이니 말이에요.”
    “그러게, 조금씩 양보하고 더불어 살지.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한 핏줄이잖아.”



    현우는 영업팀 석정균 차장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백 전무를 등에 업은 그의 권력을 새삼스레 실감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오버랩되는 파국도 동시에 보았다. 그는 모순되게도 유동적이고 간사한 소비자의 심리패턴은 잘 읽으면서도 이미 변했거나 변화과정을 거치고 있는 세상의 도덕적 기준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김웅태 과장님!”
    “어, 나 팀장!”
    “오늘 고객파트와 생산파트가 왜 이렇게 어수선한 겁니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야. 어린애처럼 칭얼대는 소비자들의 투정이야 늘 있는 일이잖아. 이젠 나 팀장도 신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컴플레인에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전 아직.”
    “사실 유행이라는 건 글자 그대로 물처럼 흘러가는 거잖아. 한 시즌만 지나도 유행이 지났다고 쳐다보지도 않을 거면서 몇십 년 입을 것처럼 시시콜콜 따지기는.”
    “과장님, 소비자들의 구체적인 불만사항이 뭔데요?”
    “별거 아니야. 타사 제품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싼 거 아니냐고 따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기와는 맞지 않으니 그냥 무조건 환불해달라는 것까지. 한도 끝도 없어. 아참! 아까 보니까 석 차장님하고 함께 나가는 것 같던데.”
    “식사나 같이하자고 하셔서요.”
    “나 팀장.”
    “예, 과장님.”
    “내가 주제넘은 줄은 알아. 하지만 웬만하면 둥글게 살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도 있잖아. 유행처럼 우리의 인생에서 보면 직장생활도 흘러가는 물이잖아. 안 그래?”
    “그런가요?”
    “어차피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야. 세상을 조금만 더 여유롭게 바라봐. 그게 정신건강에도 좋아.”
    “…….”
    “그렇다고 지금 당장 나 팀장에게 어떤 결단을 요구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마. 내겐 그럴 자격도 권한도 없잖아. 판단은 오직 나 팀장의 몫이지. 후후후.”
    김 과장은 현우에게 그럴 듯하게 자기의 탐욕과 시기를 포장했다. 거기다 가면의 언어가 아닌 배설의 언어로 부정(不正)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이야기 속에서 뭉텅 빠져 있었다. 바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행위의 목적으로 하는 이타심이다. 즉 자기의 욕심만큼 회사 내 다른 직장동료들의 행복과 꿈도 중요하다. 그래서 현우는 김 과장의 말을 듣는 동안 뱀의 심장을 먹는 것만큼이나 끔찍했다.
    “!”
    “뭘 그렇게 혼자 골똘히 생각하세요? 여기는 완전히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은데.”
    “빈둥빈둥 놀고 있는 내 뇌를 어디에 쓰면 좀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생각 중이었어.”
    “예~에.”
    “후후후, 농담이야. 홍 대리는 청산가리보다 천배나 독한 독 때문에 잘못 먹으면 4~5시간 만에 사망하는 복어를 일본인들이 왜 그토록 즐겨먹는다고 생각해?”
    “사실 전 가격이 너무 비싸 자주 먹지도 못하지만 막상 먹어도 다른 회에 비해 아무런 맛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미식가라고 자처하는 일본인들이 즐겨먹는 것을 보면 다른 생선에 비해 유독 단단한 육질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내가 일본 요리사에게 직접 들은 바로는 황당하게도 극기(克己)에 도전했다는 허세 때문이라는 거야.”
    “극기에 도전했다는 허세요?”
    “응. 유치하게도 자신은 복어독을 먹었지만 살아남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먹는다는 거야.”
    “그런데 갑자기 복어독 이야기는 왜요?”
    “누가 조금 전에 내가 보는 앞에서 마치 자랑하듯 복어독을 한입에 그냥 꿀꺽 삼켜버려서 말이야. 후후후.”
    “아참! 팀장님. 오늘 혹시 인사발령이 있다는 소리 못 들으셨습니까?”
    “아니.”
    “인사발령은 지난 3월에 이미 끝난 게 아니었나요?”
    “그러게, 난 처음 듣는 소린데.”
    “그럼 인사과에 있는 동기가 또 장난을 친 건가.”
    “그나저나 홍 대리, 주변 인물들 조사는 어떻게 됐어?”
    “백화점 매장담당자와 매장의 점장들을 중심으로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소득은 없습니다.”
    “아마 그들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입을 열게 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도 발톱을 찔러 넣은 이상 설혹 발톱이 모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질 생각입니다. 현재로선 그 외에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수단도 저희에겐 없고 말입니다.”
    “그야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문제는 우리에게 과연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느냐 아니겠어?”
    “그럼 어떻게?”
    “때론 어둠이 내린 밤이 사냥하기에 더 좋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먹잇감이 좁아진 시야 때문에 심리적으로 경계를 늦추는 시간이거든.”
    “어둠, 어둠이라. 그건 환경적인 요소인데. 아! 무슨 말씀인지 감 잡았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퇴직사유가 불명확한 직원들을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먹잇감을 고르기만 하던 석우의 눈에서 세상을 향해 거칠게 빛이 뿜어졌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지수였다. 휴대전화를 꺼내 들자 향기처럼 모차르트의 <C단조 피아노협주곡>이 흘러나왔다. 현우는 그 곡의 제목은 몰랐다. 하지만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색은 지원이 차마 꺼내놓지 못하는 외로움의 크기를 설명했다.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현우 씨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한 거예요.]
    “지수 씨, 오늘 저녁 분위기 좋은 데서 제가 술 한잔 살까요? 아니면 시끄러운 데도 전 괜찮아요.”
    [술요? 아니요, 안 마실래요. 한 번 마시면 술잔을 손에서 못 놓을 것 같아요.]
    “그럼 다른 건요? 아, 쇼핑은 어때요? 쇼핑을 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거예요.”
    [아니에요. 당분간은 그냥 집에 있고 싶어요. 그래도 괜찮죠?]
    “물론입니다.”
    [그러고 보니 바쁘신데 제가 괜한 말을 한 건 아닌지 후회가 밀려드네요.]
    “절대 아닙니다. 언제든지 내가 필요하면 말해요, 알았죠?”
    [예, 현우 씨. 그럼 이만 끊을게요.]
    현우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지수의 눈가에 차오른 그렁그렁한 외로움이 보였다.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이 침착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현우는 그녀가 매우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물론 현우는 그 외로움의 확실한 치료법을 알고 있었다. 그 치료법은 주변 사람들의 따스한 보살핌이었다. 환자 곁에서 여러 가지 접촉을 통해 교감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면 쉽게 치료가 가능한 병이었다. 그만큼 외로움에는 관심과 따뜻한 보살핌만큼 좋은 치료약이 없다는 의미였다. 아무튼 지금 지수에게 필요한 건 어린아이처럼 들어 안아주고, 입 맞춰주고, 같이 놀아주고, 말을 걸어주는 편안한 그 누군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