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서화 장편소설 '레드'-1

  • <42> 국제테러리스트


    “오늘 F/W시즌 팬츠디자인 최종 심의 하는 날이거든요. 어제 이미 전무님을 비롯한 임원진들에게도 오늘 디자인 품평회를 갖는다고 보고한 상태고요. 그런데 손비아 씨가 보시다시피 아직까지…….
    “…….”
    “더구나 그 디자인은 손비아 씨가 전담했던 업무라서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지금 저희 기획실 분위기가 말이 아니에요.”
    “권아현 씨, 혹시 휴대전화는 해보셨나요?”
    “출근하자마자 휴게실에 가서 벌써 했죠. 날이 날이니만큼 기획실의 전 디자이너가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와 품평회 준비를 했거든요. 아마 저 말고도 여러 사람이 했을 걸요. 아무튼 그 놈의 술이 문제라니까요. 손비아 씨가 평소 술을 좀 좋아해야 말이죠. 그나저나 어제 도대체 얼마나 많이 마신 건지, 퇴근하면서 누구를 만난다고 싱글벙글하더니 그 사람하고 마신 건가…….”
    “!”
    “팀장님, 손비아 씨 출근하면 연락드리라고 할까요?”
    “아, 아닙니다. 제가 나중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아, 예. 그럼 전 이만. 품평회 시간이 얼마 남지를 않아서요.”
    지난밤 현우는 알코올의 힘을 빌려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몸이 고단했기보다는 손비아와의 찜찜함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영장에 가기 위해 새벽에 눈을 뜨는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손비아가 갖고 온 가먼트백(Garment Bag·여행용 양복케이스)이었다. 사실 손비아를 배웅할 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그 불안감의 실체를 당시엔 확인할 수 없었다. 현우는 출근과 동시에 기획실로 달려왔다. 그런데 기획실 동료가 들려준 이야기는 다시 한 번 현우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현우는 손비아의 휴대전화번호조차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젯밤 만난다는 친구의 이름이라도 알아둘걸.”
    “비 맞은 중마냥 뭘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세요, 팀장님?”
    “아, 홍 대리. 오늘 품평회가 있다고 하던데. 지금 기획실 직원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없어.”
    “전 기획실에 볼일 없습니다.”
    “그럼?”
    “팀장님 말씀대로 퇴직 사유가 불분명한 매장 직원들을 조사하다가 아주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의외의 이야기?”
    “물론 회사에 대한 악의적인 감정으로 사실보다 과장해서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야기가 다소 신빙성이 떨어져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충격적인 내용이라 전체를 악감정으로 꾸며냈다고 치부하기도 어렵습니다.”
    “무슨 내용인데.”
    “성상납에 관한 것입니다.”
    “성상납!”
    “예.”
    “그것도 매장 여직원하고 말입니다. 아무튼 좀 더 자세한 사항은 그 매장 직원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서 추후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동해 씨가 알아보는 공동명의자 쪽은 뭣 좀 밝혀진 사실이 있어?”
    “그쪽에선 아직 이렇다 하게 걸려든 게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매일 발바닥이 닳도록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니까 조만간 뭐가 걸려도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 흠…….”



    “재국 선배, 커피 드실래요?”
    “그래, 한 잔 줘봐. 커피라도 마셔서 뒤집히고 끓어오른 속 좀 달래게. 하여간 이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타이만 매면 꼭 뭐가 터져도 터진다니까!”
    “그렇다고 그걸 쓰레기통에 집어던지면 어떻게 해요. 하루 종일 노타이로 계실 거예요?”
    “몰라! 난 하나도 안 아까워.”
    “아참!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다 보니까 엄 처장님 방에 가는 것 같던데.”
    “앗! 뜨거워라!”
    “쯔쯔쯔, 조심 좀 하시지. 하여간 어린애처럼.”
    “으으으, 오늘 입천장 다 벗겨지겠네.”
    “엄 처장님이 무슨 일로 선배를 찾으신 거예요?”
    “왜?”
    “그냥요.”
    “리재경 피살사건과 관련해서 죽음의 냄새를 맡았을까 봐?”
    “조심한다고는 했지만 워낙 엄 처장님의 코가 예민하시잖아요.”
    “다행히 아직 냄새까진 맡지 못하신 것 같아. 그나저나 도통 무슨 말을 하시는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난 내가 에베레스트에라도 올라 고산병(高山病)에 걸린 줄 알았다니까.”
    “훗! 저도 이따금 엄 처장님의 말씀을 듣다보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고 메스꺼워요.”
    “오늘은 유달리 더 심하시더라고, 의식까지 가물가물 해지던데.”
    “상상이 돼요. 엄청 당하셨나보네요.”
    “바람 한 점 없는 사무실인데도 엄 처장님의 목소리가 너무 차가워 살과 뼈까지 얼더라니까.”
    “훗! 선배의 눈빛이 지금 어떤 줄 알아요?”
    “엄 처장님에게 혼을 모조리 빼앗겨 강시(屍)처럼 멍하게 보이겠지 뭐!”
    “비슷해요.”
    “빈말이라도 좋아. 그냥 ‘요즘 수고한다. 내가 언제 술 한잔 살게!’ 뭐 이렇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면 좀 좋아. 이건 마치 하루하루가 세렝게티(Serengeti)의 일상이라니까. 자기 영역을 침범한 것도 아닌데 보자마자 갈기를 세우고선 사자처럼 으르렁대기만 하고.”
    “킁킁킁.”
    “유진아, 너 지금 뭐하냐?”
    “혹시나 해서요.”
    “뭐가?”
    “엄 처장님이 자신의 분비물로 우리 사무실에 영역표시를 해두었는지도 모르잖아요.”
    “뭐! 푸하하하.”
    “히~유! 다행이다. 아무리 맡아도 우리 사무실엔 엄 처장님의 체취가 없네요.”
    “그런데 공항분실에 가신 팀장님은 왜 아직 안 오시지?”
    “쾅!”
    “아, 마침 들어오시네요. 저, 팀장님. 저희 커피 마시고 있는데 한 잔 드릴까요?”
    “식은 커피라도 주면 고맙지.”
    “잠깐만요.”

    평소 정원의 걸음걸이는 먹이를 향해 살금살금 다가가는 사자(獅子)처럼 낮고 묵직했다. 그래서 정원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무실의 공기도 스치는 풀잎처럼 미세하게 흔들렸다. 정원은 사무실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지배력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정원이 타고난 맹수임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정원의 눈빛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습득한 지혜로 최적의 공격타이밍을 잡는 노련함까지 엿보였다. 물론 재국과 유진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정원은 배부른 사자처럼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얼마 후 정원의 눈빛이 커피향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음, 좋다! 고마워. 유진 씨, 늘 마시던 커피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 향기롭게 느껴지는데.”
    “정말요?”
    “응, 그럼 이제 슬슬 일이나 시작해볼까. 재국 씨, 오전까지 마무리하기로 한 마에다 유주루의 신원조회는 어떻게 됐어?”
    “아, 예. 다 정리됐습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조사한 자료만으로도 마에다 유주루의 과거 행적에 의문점이 많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어린 시절의 마에다 유주루는 뜻밖에도 문학소년이었습니다.”
    “문학소년요?”
    “응, 초등학교 때부터 전국 규모의 글짓기 대회에서 수도 없이 입상했더라고. 거기다가 대학교 2학년 때는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스바루(すばる) 문학상까지 수상했어.”
    “이거야 말로 서프라이즈인데요.”
    “아무튼 어린 시절의 마에다 유주루는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에게 마음이 팔려 그를 매우 흠모했던 모양입니다.”
    “동경(憧憬)이라!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에서 시대착오적인 망동과 문학적인 좌절을 보고 냉소와 경멸을 보낸 것이 아니고?”
    “어린 시절 습작노트의 첫 페이지에 항상 자신의 꿈은 사무라이(武士)라고 적어놓았답니다. 실제로 사무라이를 일본정신의 원형(原形)으로 보고 미시마 유키오를 모방한 그의 위험한 사고가 습작노트에 독가시처럼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성장과정도 매우 흡사합니다. 단지 미시마 유키오는 작가로 변신했지만 마에다 유주루는 육상자위대에 지원을 했을 뿐입니다.”
    “재국 선배, 미시마 유키오라면 소설로는 『가면의 고백』, 『금각사(金閣寺)』, 희곡으로는 『사드후작부인』을 쓴 그 자살한 작가 말인가요?”
    “맞아.”
    “제가 알기론 일본적 미의식에 바탕한 전후 최고의 작가라는 평을 들으며 노벨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된 것으로 아는데요.”
    “그러게. 하지만 1936년 극우세력들의 쿠데타 미수사건인 ‘2·26사건’을 다룬 『우국(憂國,1961)』부터는 국수주의로 호흡하는 우익작가로 탈바꿈했지. 그런데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이 충격적인 건 참극(慘劇)이었기 때문이야.”
    “그냥 자살한 게 아니고요?”
    “응, 미시마 유키오는 45세 되던 1970년 11월 25일에 도쿄시(東京市) 이치가야(市谷)의 육상자위대 동부방면총감부(東部方面總監部) 총감(사령관)실에 난입해 일본도로 할복(割腹)했어. 그것도 다른 사람이 목을 쳐주는 잔혹한 사무라이(さむらい) 방식으로 신(神)이 되려 한 거지.”
    “세상에나! 문학을 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아무 죄도 없는 2천만 아시아인들을 제물로 바친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 건가요. 아니면 국가종교인 신도(神道)에 내재된 광적인 죽음의 정치가 한 인간을 파멸로 이끈 건가요. 전 도저히 제국주의의 환영(幻影)에 광분하는 그런 정신이상자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만큼 그의 문학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의미겠지.”
    “하지만 이후 미시마 유키오를 살아 있는 정신으로 추앙하는 현재의 일본이 더 괴기해. 하긴, 패전 이후 소멸하던 군국주의를 부활시킨 장본인이라 일본으로선 그를 잊지 못할 거야. 아무튼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은 일왕과 그를 따르는 극우세력이 배후에서 간접적으로 조종한 강요된 자살이라고 봐도 무방해.”
    “강요된 자살요!”
    “응.”
    “선배, 이거 보이세요? 소름이 확 돋는 거.”
    “아무튼 팀장님, 현재까지 파악한 마에다 유주루는 매우 극우적인 인물입니다. 실제로도 마에다 유주루는 ‘자위대가 일본의 혼(魂)이며 가타나(刀)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무슨 이유로 자위대를 갑자기 제대하고 뜬금없이 야쿠자가 된 거죠? 제 생각엔 야쿠자보다는 자위대가 그나마 나을 것 같은데, 조폭이 일본을 지킬 수는 없으니까 말이에요.”
    “그게 진짜 미스터리야. 비록 극우 성향을 가지긴 했지만 과거 경력으로 볼 때 테러리스트나 한낱 야쿠자가 될 만큼 부도덕한 인물은 절대 아니었거든.”
    “흠! 사막의 독사는 지나간 흔적으로밖에 못 찾는다고 하던데. 마에다 유주루가 세상에 만들어놓은 무늬가 예상 밖으로 너무나 복잡하고 기괴하군.”
    “아차차! 깜박했네. 저 팀장님, 마에다 유주루의 마약거래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입은 일본 내 다른 마약조직인 스미요시카이(住吉會)를 조사하다가 의외의 수확을 얻었습니다.”
    “그게 뭔데요, 재국 선배?”
    “최근에 마에다 유주루가 속한 야마구치구미가 국내로 자금을 몰래 들여와 직접 리스회사를 차려 운영한다는 첩보입니다.”
    “회사 명칭은?”
    “재팬리스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잘만 헤치면 무언가 뜻밖의 수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사진들도 한번 보시죠.”
    “사진?”
    “예, 필리핀 주재 대사관에 근무하는 우리 측 요원이 마침 마닐라 시내의 호텔에 공무가 있어 갔다가 우연히 찍은 것이랍니다.”
    “흠.”
    “혹시 몰라 마에다 유주루가 말레이시아에 타고 간 항공기를 조사했더니 미국 국적의 항공기였습니다. 문제는 마에다 유주루가 필리핀에서 그 비행기로 갈아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급히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거기서 근무하는 우리 요원이 이 사진을 보내준 것입니다.”
    “그럼 필리핀까지 타고 간 여객기는?”
    “중국동방항공(China Eastern Airlines)이었습니다. 그 이후는 추적할 수 없었습니다.”
    “재국 씨, 이 여자는 누구지?”
    “그 요원에게 확인한 결과 일본대사관의 홍보참사관인 미우 나카무라(仲村みう)랍니다.”
    “흠, 미우 나카무라라…….”
    “그럼 대사관에서 만나지 왜 마에다 유주루가 미우 나카무라를 호텔커피숍에서 만나고 있는 거죠? 혹시 두 사람이 연인 사이인가요?”
    “글쎄, 거기까지는 아직……. 아무튼 이날 일본대사관은 휴관(休館)이었답니다.”
    “휴관, 그럼 휴일이었나 보군요.”
    “아니, 이날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했던 필리핀의 위안부 할머니 수십 명이 마닐라 주재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거든. 그건 당시의 우리나라 신문기사에서도 확인했어.”
    “미우 나카무라의 신원정보는?”
    “1972년생으로 태어난 곳은 온천으로 유명한 하코네(箱根)입니다. 1994년 교토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곧바로 외무성에 입성했습니다. 이후 미국과 오만, 이탈리아, 그리고 현재는 필리핀 주재 일본대사관의 홍보참사관으로 재직 중입니다.”
    “그런데 참 이해하기 어렵군. 마에다 유주루의 실체가 극우이든 테러리스트이든 모두 정부 관료가 만나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그런 존재인데…….”
    “거기다가 이 사진이 중요한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마에다 유주루 맞은편의 이 세 사람 말입니다.”
    “동양인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차를 마시고, 중동사람으로 보이는 다른 두 사람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것 같은데요. 테니스를 치고 왔나 라켓도 보이고요. 왜 특별하죠?”
    “국제테러 담당자가 확인해준 바로는 이 세 사람 모두 미국 국무부가 지정한 국제테러조직의 중간 간부급 조직원들이라는 거야.”
    “예~!”
    “그러니까 동양인은 필리핀의 아부 사야프 그룹(ASG·Abu Sayyaf Group)의 조직원이고, 그 맞은편의 이슬람 복장을 한 사람은 레바논의 아스밧 알 안사르(Asbat al-Ansar)의 조직원,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이스라엘 카하네 차이(Kahane Chai)의 조직원으로 밝혀졌어. 한마디로 적색수배 위험군에 속한 인물들이야.”
    “그럼 뭐야. 홍보참사관이 테러조직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소리잖아요.”
    “위험한 추측이지만 현재로선 딱히 부정할 근거도 없지.”
    “더욱이 미우 나카무라가 이탈리아 주재 일본대사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으니까 고모라의 롯사나 시아피노와 연결됐을 가능성도 높고요.”

    정원의 눈빛은 조금 전까지 굉음을 내며 진흙탕으로 이루어진 오프로드를 달렸다. 그런데 이제 포장도로에 들어선 것처럼 흔들림이 멈추고, 동공에 편안함이 깃들었다. 그 편안함이 온몸을 뒤덮자 이번엔 포식자의 허기(虛飢)와 공복감(空腹感)이 의식을 지배했다. 정원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조용히 감았다. 눈을 감는 행위는 아래위 눈시울을 한데 붙이는 단순행위다. 하지만 지금의 정원에게 있어서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눈을 뜬 상태의 의식과 눈을 감았을 때의 무의식이 합쳐져 사고(思考)의 영역이 두 배로 넓어졌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우리도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자고.”
    “그게 무슨?”
    “오늘 오전에 우리의 타깃인 마에다 유주루가 입국했거든.”
    “예~에!”
    “정말입니까, 팀장님?”
    “공항분실에서 직접 확인한 사항이야. 다른 사람들에겐 굳이 말할 필요가 없어 하지 않았지만 말이야. 후후후.”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우선 유진 씨가 은밀하게 마에다 유주루의 신병 확보와 더불어 입국 목적을 파악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재국 씨는 재팬리스를…….”
    “잠깐만요, 팀장님.”
    “!”
    “히! 저는 오늘 좀 곤란한데요.”
    “아니, 왜요? 집에 무슨 일 있어요?”
    “실은 아까 엄 처장님이 따로 지시하신 사항이 있거든. 별건 아니야. 며칠간의 계약동거야.”
    “계약동거요?”
    “응, 오후에 대한항공편으로 이스라엘의 TV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오나 봐.”
    “방송국 취재에 우리 요원을 파견한다. 그럼 혹시?”
    “맞아. 위장취재야. 구성원 모두가 키돈(Kidon·히브리어로 단검이란 뜻)이라 불리는 모사드(Mossad·중앙공안정보기구)의 암살전문 비밀요원들로 의심되나 봐.”
    “방문 형식은?”
    “이스라엘 측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공식적인 방문 같았습니다.”
    “재국 선배, 그럼 정부가 허가한 취재 지역은 어디죠?”
    “자세한 내용은 나도 아는 바가 없지만 주된 취재 지역은 외교통상부와 통일부, 국방부 등 외교·안보부처 같았어.”
    “그렇다면 입국 목적은 최근의 중동 지역 상황으로 볼 때 북한의 용각산총무역회사에 대한 정보수집일 가능성이 높겠군.”
    “왜죠?”
    “북한이 이란에게 탄도미사일과 핵기술을 넘겨주는 바람에 이스라엘로서는 국가안보에 심대한 위협이 되고 있잖아. 그래서 북한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가 필요한 거겠지.”
    “아무튼 위험요소가 제거됐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철수해서 재팬리스를 파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아참! 첩보가 사실이라면 프로 중에 프로야. 그러니까 눈으로 보지 말고 한발 앞서서 육감(六感)으로 판단해. 우리 일은 그 다음에 해도 안 늦어.”
    “예, 명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