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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화 장편소설 '레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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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작전 개시
“팀장님, 엄 처장님의 지시사항은 무엇입니까?”
“심 차장님의 지시라면서 모두 사살하라고 하셨어.”
공작조의 숙소 앞에서 현우가 탄 승합차가 출발한 지 대략 10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신체조건과 전술목표에 맞게 특수 제작한 개인화기로 중무장한 부대원들이 화원에 도착했다. 그 사이에 정원 일행도 함께 있었다. 도착한 전술팀은 총 4개 팀이었다. 그들은 다시 2개 공격조로 나뉘어 한 조는 화원을 그리고 다른 한 조는 지수의 집을 동시에 수색하는 작전계획을 세웠다. 부대원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검은 두건으로 가린 상태였다. 일당백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특수요원들답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특수장비의 박람회였다. 직경 9㎜ 권총탄을 방어하는 신형방탄헬멧과 헬멧에 장착돼 작전상황을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국산 무선영상 전송시스템인 ‘카이샷(KAISHOT)’. 그리고 방탄철판을 수납할 수 있는 신형 전술용 방탄조끼 등 각종 테러진압장비까지 구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 부대원들이 테러리스트를 사살하는 데 중점을 둔 특수요원이라는 사실을 가장 정확히 설명하는 무기는 기관단총 MP-5였다.
“재국 씨, 최대한 신중하게.”
“알겠습니다.”
“유진 씨도 조심하고.”
“예, 팀장님도요.”
작전상 정원 일행도 두 팀으로 나눴다. 정원은 화원을 맡았고 재국과 유진은 가택수색을 맡았다. 재국과 유진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정원은 전술팀 대장에게 진입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대장은 사전 각본에 따라 신속하게 목표물을 장악하라는 전술행동을 지시했다. 대장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폭파담당이 맨 앞으로 나아가 샷건(산탄총)으로 화원의 주 출입구를 파쇄했다. 동시에 뒤에 있던 정찰담당이 시력을 일시적으로 잃게 하는 섬광탄을 화원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두 명의 부대원이 짝을 이루며 X자 형태로 매우 신속하게 화원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대원들 상황보고.”
“대장님, 1번 사수. 이상 무.”
“2번 사수. 이상 무.”
“…….”
“4번 사수. 등록된 배달차량도 그대로 있습니다.”
“팀장님, 화원 안은 깨끗합니다. 적은 이미 도주를 한 것 같습니다.”
“대장님, 뒷마당 쪽은 어떻습니까?”
“지금 2팀이 확인 중에 있습니다.”
“대장님, 유리온실을 발견했습니다.”
“온실!”
“예, 뒷마당으로 나오시면 11시 방향으로 피라미드처럼 생긴 유리온실이 보이실 겁니다.”
순간 대장은 아래로 끌어내렸던 두건을 다시 끌어올려 콧등을 덮었다. 그리곤 수신호를 통해 주변의 부대원들에게 다시 한 번 전술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부대원들이 폭파영상을 되돌리듯 일사불란하게 정해진 전술대형을 갖췄다. 곧이어 부대원들이 비밀의 화원을 밀물처럼 부드럽게 빠져나가 뒷마당을 통해 신속하게 목표지점으로 이동했다. 목표지점은 이미 2팀이 포위하고 있었다. 대장은 2개의 공격조를 다시 돌격조와 엄호조로 재구성했다. 그리곤 곧장 돌격조에게 과감한 침투로 온실을 장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침투개시!”
“침투개시!”
대장의 명령과 동시에 부대원들이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동을 개시했다. 먼저 엄호조가 온실 밖에 남아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그리고 정원이 포함된 돌격조는 기민하게 온실 내부로 진입했다. 하지만 미니식물원처럼 꾸며진 온실 내부는 화원과 그 조건부터가 달랐다. 그래서 공격조는 야간에 건물 내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각각의 위험요소들을 세밀하게 확인했다. 부대원들은 전략적 위치를 선점하며 은밀하게 먹이에 다가가는 맹수처럼 내부를 영리하게 수색했다. 하지만 어느 사냥에서건 승패를 가르는 건 전략과 전술, 그리고 운이다. 물론 전략과 전술은 완벽했다.
“팀장님, 상황종료입니다. 그런데 타이밍의 운이 없는 것 같습니다.”
“대장님, 거기다 결과도 최악인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인질이 발생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이 화원의 주인이…….”
“확실합니까?”
“예,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목표물을 찾아내 반드시 제거하겠습니다. 물론 인질도 구출하고요.”
“그런데 대장님, 지금 혹시 이상한 소리 못 들으셨습니까?”
“이상한 소리요?”
“예,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말입니다. 온실에 쥐가 있을 리도 없고.”
“글쎄요, 전…….”
“제가 너무 긴장을 한 탓인가요?”
“어쩌면 그럴지도.”
“!”
“대장님, 방금 또.”
“팀장님, 저도 분명히 들었습니다. 저 소리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대장님.”
“저건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구조요청 같은데요.”
“그럼 혹시 인질?”
희미했지만 간절했다. 그리고 날지 못하는 아기새가 폭풍우를 만난 것처럼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목소리였다. 순간 정원의 눈빛이 폭발하듯 강렬하게 변했다. 정원은 과감하게 넝쿨벽을 발로 찼다. 그러자 그 소리에 반응해 외침도 다급해졌다. 이번엔 대장이 군홧발로 더 세게 찼다. 자신의 외침을 외부에서 들었다는 확신이 섰는지 이제는 울먹이기까지 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정원은 오른 주먹으로 넝쿨벽을 일일이 두드리며 인질이 갇힌 비밀출입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원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때 갑자기 경험이 풍부한 대장의 눈이 번뜩였다.
“팀장님, 잠깐만요.”
“대장님, 왜 그러십니까?”
“출입문의 잠금장치가 풀려 있습니다.”
“!”
“일반적으로 테러범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의 방문을 예측해 화력을 그리로 집중시킵니다. 더구나 인질이 안에 갇혀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잠금장치가 풀려 있습니다. 그건 우리를 내부로 유인하기 위한 술책이 출입문 주위에 펼쳐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럼 출입구에 부비트랩(Booby trap·사람이나 어떤 물체가 건드리면 폭발하도록 만든 위장폭탄)이 설치됐다는 말씀이십니까?”
“적어도 제 판단은 그렇습니다. 현재 출입문은 닫혀 있고 창문도 없습니다. 따라서 밖에 있는 저희로선 내부 상황을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 경우 출입문에 부비트랩이 설치됐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온실 자체를 급조폭발물(IED)을 사용한 HBIED(House-Borne IED)를 설치해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내부로 진입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방법은 있습니다. 내부 진입을 위한 출입구를 저희가 만들면 됩니다.”
정원이 간과한 죽음의 덫을 대장은 정확하고 엄격하게 판단했다. 곧이어 부대원 한 명이 대장의 지시로 급히 뛰어왔다. 부대원은 전술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케이블 안쪽에 폭약이 장치된 끈폭약을 이미 만들어놓은 물재킷의 홈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작업은 조용하면서도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겨우 몇 분 만에 모든 작업이 완료됐다. 부대원은 물재킷을 벽면에 설치했다.
“5, 4, 3, 2, 1. 폭파!”
“폭파!”
“쾅!”
폭발 시의 충격이 작아 파편 발생도 매우 적었다. 때문에 설혹 인질이 벽 가까이 있을지라도 부상의 염려가 없었다. 물재킷은 강력한 드릴처럼 콘크리트벽을 타원형으로 뚫었다. 그때 대장이 신속하게 전술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돌격팀이 배수관으로 빨려 들어가는 물줄기처럼 지하 공간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부대원들이 확인한 지하 공간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적은 인질이 탈출할 수 없도록 철창에 수갑으로 묶어놓았다. 거기다 인질은 가시철사처럼 급조폭발물로 제작된 폭탄조끼까지 입고 있었다. 정원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저도 수많은 특수작전을 수행했지만 이토록 잔인한 상황은 처음입니다. 더구나 조금 전 폭발물처리 전담요원의 X-ray 확인결과 출입구에 설치된 부비트랩과 폭탄조끼의 급조폭발물이 서로 감응폭발을 하도록 메커니즘이 구성돼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아까 대장님이 저를 말리지 않으셨다면?”
“아마도 그랬을 겁니다. 그야말로 영리하고 사악한 적입니다. 급조폭발물 제작자의 능력과 상상력 역시 뛰어나고요.”
“그랬군요.”
“아무튼 현장상황이 너무 험악하고 위험합니다. 현장은 저희 돌격조가 맡을 테니 엄호조와 함께 폭발사정 지역 밖으로 대피하십시오.”
“아닙니다. 저도 여기에 남겠습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곧바로 폭발물 수작업 처리키트를 든 폭발물처리 전담요원이 투입됐다. 폭탄해체는 한 번의 실수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인질과 전술팀 모두에게 심리적 부담이 컸다. 하지만 지금 당장 현장에서 폭발물을 처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제 지하감옥에는 오로지 전담요원 단 한 사람의 숨소리와 그의 움직임 그리고 그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소음뿐이었다. 실무 경험이 풍부한 전담요원은 침착하게 상대가 숨겨놓은 비밀을 풀었다. 급조폭발물의 고정장치에 물린 속임수가 파헤쳐지고 위협이 가전제품의 부스러기처럼 제거될 때마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손에는 땀이 고였다. 그러기를 10여 분. 마침내 급조폭발물의 근간이 되는 폭약과 기폭장치인 전기뇌관, 그리고 각각의 폭약에 연결됐던 전선이 완전히 분리됐다.
“히~유! 대장님, 폭탄해체 완료했습니다.”
“정말 수고했어. 오늘 작전의 일등공신은 바로 자네야.”
“살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경찰 아저씨.”
“뭘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임무인 걸요.”
“그런데 이건 언제?”
“!”
“아저씨들 앞인데 제 모습이 너무 창피해서요.”
“아, 양손의 수갑 말이군요. 그건 제 담당이 아니라서, 히~.”
땀으로 샤워를 한 폭발물처리 전담요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의 가장 엄숙한 순간 위험과 공포에 당당히 맞선 전담요원의 순수한 미소는 용기 그 자체였다. 그때 다른 폭파담당이 앞으로 나서 임무를 교대했다. 그가 몇 번 만지작거리자 수갑은 인질의 손에서 장난감처럼 풀렸다. 그때야 비로소 인질의 상태가 드러났다. 인질은 부대원의 부축을 받고서야 겨우 발걸음을 뗐다. 그 사이 폭발물처리 전담요원의 손끝에서 분리된 부품들을 확인하던 정원은 다시 한 번 경악했다. 자신이 남산 1호터널에서 구출한 은행여직원의 폭탄조끼 구성품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전 전술팀의 대장입니다. 지금부터 아가씨의 신원을 간단하게 확인하겠습니다. 우선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전, 윤지수라고 해요.”
“이 화원의 소유주가 맞습니까?”
“예, 맞아요.”
“지수를 이렇게 만든 인질범들을 보셨죠?”
“예.”
“그럼 인질범들의 신체적 특징과 납치 동기가 뭔지 설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건…….”
“왜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습니까?”
“아니요.”
“그럼 혹시 복면을 했습니까?”
“그렇지도 않았어요.”
“혹시 협박이라도 받으셨나요? 만약 받으셨다면 이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들이 반드시 체포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대장님, 윤지원 일당입니다.”
“!”
“팀장님, 윤지원 일당이라면 구체적으로 누구를…….”
“이 아가씨의 일란성 쌍둥이 언니가 공범이라는 말씀입니다.”
“예?”
“더구나 그녀는 북한에서 남파된 무장간첩입니다. 그리고 지난번 을지로 국민은행 지점에 난입해 무고한 시민들을 무차별 살육한 무장괴한들 중 한 명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 화원에서 일하던 배달기사와 화환제작 기사, 그리고 꽃꽂이 강사도 포함됐을 겁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세상에! 그게 정말입니까?”
“예, 하지만 언니는 아니에요.”
“아니라면 뭐가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언니와 같이 있는 사람들이 북한에서 내려온 무장간첩은 맞아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은행에서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할 때 언니는 저와 함께 여기에 있었어요. 정말이에요.”
“!”
“윤지수 씨, 이건 국가안보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진실을 왜곡하거나 거짓 없이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그럼 언니 윤지원 씨가 무장간첩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요. 아마도 그건 팀장님의 말씀이 맞을 거예요.”
“윤지수 씨, 지금 이렇게 허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수 씨를 납치했던 사람들이 무장간첩으로 밝혀진 이상 그들이 또 다른 희생을 만들거나 북한으로 도주하기 전에 반드시 잡아야만 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약속해주세요.”
“뭘 말입니까?”
“불쌍한 우리 언니도 꼭 구해주겠다고요. 예?”
“만약 무장간첩이라면 제가 섣불리 약속을 드릴 수가…….”
“지수 씨, 전 국정원의 최 팀장입니다. 전 어머니 성혜경 씨도 잘 압니다.”
“아! 맞아요. 저도 언젠가 오마니한테서 들은 적이 있어요. 남한 정착에 도움을 많이 주셨다고.”
“윤지원 씨가 체포과정에서 극악한 저항만 하지 않는다면 절대 사살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대신 지수 씨가 알고 있는 사실을 숨김없이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예, 그럴게요. 제 눈엔 언니가 위험에 빠진 것처럼 보였어요.”
“위험에 빠졌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에 빠졌다는 겁니까?”
“전 누구보다도 언니를 잘 알아요. 아마도 쌍둥이라서 그런가 봐요. 언니는 지금 정신적·심리적으로 매우 혼란한 상태가 틀림없어요.”
“제 경험상 오랜 기간 뼛속 깊이 새겨진 혁명의식과 투쟁의지를 하루아침에 씻겨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물론 북한의 대남공작부서도 체제에 대한 충성심이 높고 탈주할 위험이 없는 자들을 특별히 선발해 남파시키고요. 그런데 정신적·심리적 혼란이라는 게 대체 어떤 종류입니까?”
“언니는 아바지와 오마니의 죽음을 통해 자기가 살아온 시간이 모두 거짓과 기만, 그리고 위선이었다는 걸 최근에 알았거든요. 어쩌면 지금의 언니는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가혹한 체제와 현실이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아니 전 그렇게 확신해요. 언니는 그런 가혹한 자신의 운명과 매일매일 싸우며 하루하루의 삶을 지탱한 거예요.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조차도 그 고통을 감히 짐작조차 못해요. 미래가 없다는 것, 그리고 꿈이 없다는 것. 그건 삶의 가장 큰 슬픔이며 고통이에요. 마치 공기가 없는 밀폐된 공간에 갇힌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북한에서의 삶은 하루하루가 넘을 수 없는 벽이고 건널 수 없는 강이죠. 아무튼 언니는 진실이 없는 세상에서 보고, 들은 많은 것들을 후회했어요.”
“그럼 윤지원 씨와 무장간첩들은 지금 어디로 도주를 한 것입니까?”
“거기에 대해선 저도 아는 바가 없어요. 단지 언니는 도주를 한 것이 아니라 납치를 당한 거예요.”
“도주가 아니라, 같은 무장간첩에게 납치를 당했다고요?”
“예.”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속죄로 무장간첩들이 은행에서 난동을 부릴 때 저와 신분을 바꾸자고 제안했어요. 저는 안 된다고 했지만 언니가 한사코……. 그런데 제가 탈출을 하려다가 마침 돌아온 무장간첩들에게 발각되고 말았어요.”
“그래서요?”
“그런데 서로 옷을 바꿔 입으니까 저를 언니로 착각하더라고요. 하지만 언니의 토트백에서 항공권이 나오는 바람에…….”
“그럼 언니가 공작조에서 이탈해 제3국으로의 탈출을 계획했다는 겁니까?”
“아마도요. 그래서 분노한 무장간첩들이 폭탄조끼를 입혀 저를 철창에 묶어놓고 도주한 거예요. 무장간첩들이 언니를 저로 착각해 끌고 가고요.”
“이거, 정말 믿을 수 없는 현실이군요.”
“윤지원 씨를 지수 씨로 알고 끌고 갔다? 그럼 무장간첩들도 리재경의 비밀자금을 끝내 찾지 못했다는 소리군. 만약 찾았다면 지수 씨를 지금까지 살려둘 이유도 끌고 갈 이유도 없을 테니까.”
“맞아요. 그 아저씨, 리재경 아저씨. 무장간첩들이 그 아저씨가 보낸 사진 뒤의 글귀에 대해 정말 집요하고 악랄하게 캐물었어요. 하지만 전 그것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대답도 못했어요. 물론 그래서 고문도 많이 당했고요.”
“잘 알겠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 윤지원 씨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참, 팀장님?”
“확실하진 않아요. 하지만 전에 오마니가 독신으로 지내는 배달기사와 화환제작 기사를 위해 숙소를 마련해두신 건물이 있어요. 혹시 모르니까 거기를 한 번…….”
“거기가 어딥니까?”
“저희 집에서 한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아담한 2층 전원주택이에요. 옥상에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져서 찾기도 쉬워요. 우리 동네에서 옥상에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집은 그 집이 유일하거든요.”
“알겠습니다.”
“약속 꼭 지키셔야 해요. 아셨죠?”
“예, 물론입니다. 저희 국정원은 국가기밀사항 때문에 진실의 전부를 알려드리지 못해서 그렇지 절대 국가와 국민을 기만하지 않습니다.”
“믿을게요.”
지수는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땐 폭발물처리 전담요원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릴까 봐 위험과 불안을 스스로 제거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언니 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때 마침 재국이 가택수색이 종료됐다는 보고를 했다. 현장상황은 정원 쪽과 동일했다. 정원은 곧바로 숙소의 위치를 알려주고 다시 수색을 지시했다.
잠시 후, 정원은 지수를 병원으로 긴급후송하자마자 곧바로 전술팀과 함께 숙소로 달려갔다. 정원과 대장이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재국과 유진이 황급히 다가왔다. 그리곤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현우의 휴대전화였다. 그런데 그 휴대전화에서 소름 돋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피오기였다.
“네 영혼은 시속 300km 이상으로 달리며 다른 세상을 여행한다.”
“속도가 300km/h 이상이라면 가능성 있는 운송수단이 800km/h인 여객기와 305km/h인 KTX, 단 두 종류뿐입니다. 이 중에서 과연 어떤 걸 선택했을까요?”
“재국 선배, 그거야 녹음내용에 사지가 찢기는 고통을 경험한다고 언급했으니까 KTX겠죠. 안 그런가요. 팀장님?”
“맞아.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마지막 멘트야.”
“무리죽음이 기다려 외롭지는 않을 거란 소리 말이군요. 그럼 설마?”
“그래. 자, 서두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