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와 음악-뉴데일리경제 박정규] 눈 앞에서 동료가 총살 당하고, 길거리에는 시체가 나뒹굴고, 가족들이 가스실로 향하는 열차에 짐짝 싣듯 실려가고....
독일 나치정권의 유태인 학살 만행 공포 속에서 촛불과도 같이 기적처럼 삶을 이어간 한 예술가의 실화를 다룬 영화가 더 피아니스트(The Pianist)이다.
유태계 폴란드인 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삶을 다룬 이 영화는 제작비 420억원에 1,000여명의 연기자와 스탭이 동원된 걸작으로, 2003년 아카데미 3개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주인공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 역)은 전쟁으로 숨어지내던 시절을 포함해 6년간 쓴 일기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2000년 스필만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아들이 이 일기를 세상에 공개했고 이를 계기로 영화가 제작됐다.
때는 세계2차대전이 시작될 무렵. 저명한 피아니스트였던 스필만이 바르샤바의 국영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중 독일군의 폴란드 공습으로 방송국이 피격되면서 방송이 중단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스필만은 가족들과 강제로 바르샤바 외곽의 유태인 격리구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가족들과 가스실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기 직전 친구인 유태인 경찰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혼자 살아남아 폐허가 된 건물에 몸을 숨기게 된다.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연명하던 스필만은 몇차례 은신처를 옮기다 결국은 독일군 장교인 빌름 호젠펠트에게 발각되고 만다. 스필만이 피아니스트였던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장교는 피아노연주를 명령한다.
전쟁의 한 복판에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시간. 그는 조심스레 피아노를 연주한다. 아, 얼마만에 터치해보는 건반인가. 하지만 이 연주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상황. 스필만은 극도의 긴장 속에서 쇼팽의 발라드(녹턴 C minor Op.48 No.1)을 연주한다.
스필만의 연주에 감동받은 장교는 그를 숨겨주고,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연주활동을 하게 된다.
-
신도 스필만의 재능을 아깝게 생각했던 것일까? 2차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살던 유태인 36만명 가운데 살아남은 유태인은 스필만을 포함해 20명 밖에 되지 않았다.
전쟁을 떠나 음악의 아름다움을 존중했던 장교 빌름 호젠펠트는 소비에트 포로 수용소에서 1952년 생을 마감했고, 피아니스트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친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2000년 89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
영화 ‘피아니스트’에는 쇼팽의 녹턴이 실려 있다. 야상곡으로 일컬어지는 녹턴은 밤의 기분을 나타내는 서정적인 피아노곡으로, 낭만파시대에 피아노를 위하여 작곡된 소곡이다.
녹턴을 가장 먼저 작곡한 사람은 아일랜드의 작곡가인 존 필드로, 생전에 녹턴 20곡을 남겼는데, 이 곡에 영향을 받아 정교하고 이전보다 완성된 쇼팽의 녹턴이 탄생했다.
영화 첫 장면에 나오는 곡이 쇼팽의 <녹턴 C# minor op.20>이다. 쇼팽의 녹턴 중 가장 유명한 곡으로 쇼팽의 청년기 작품이며, 1895년에 출판됐다. 이 곡은 피아노 외에도 바이올린과 첼로로도 편곡됐다.
실제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연주도 들어볼 수 있다. (스필만 연주 http://www.youtube.com/watch?v=n9oQEa-d5rU)
스필만이 영화 마지막 부분, 장교 앞에서 연주하는 곡인 <발라드 1번>은 쇼팽의 작곡활동에 있어서 가장 무르익었던 시기인 1841년 작곡된 명곡이다. 쇼팽의 작품 중 걸작으로 꼽힌다. 발라드는 자유로운 형식의 서사적인 음악으로, 독일 중세 가곡의 형식이며, 서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리트'를 쇼팽과 브람스가 기악화해 만든 것이다.
쇼팽은 이 곡을 슈만 앞에서 연주하며 천재성을 인정받게 된다. 20세기 최고 피아니스트로 손꼽히는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이 곡을 완벽하게 해석해 연주함으로서 연주가의 입지를 단단히 굳히게 된다. < (1)크리스티안 짐머만 연주 http://www.youtube.com/watch?v=RR7eUSFsn28
(2) 영화 속 연주 http://channel.pandora.tv/channel/video.ptv?ref=em_nom&ch_userid=kkk0329&prgid=35849827 >
-
영화에는 쇼팽의 마주르카 A minor Op.17 No.4도 등장한다.(아르트루 루빈스타인의 연주 http://www.youtube.com/watch?v=idbaPu1gDPg)
마주르카는 폴란드의 민속 무용과 무곡을 뜻하는데, 쇼팽이 평생에 걸쳐 작곡한 작품이며 예술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 Op.17 No.4는 1824년 작곡한 곡이다.
쇼팽의 마주르카 작곡활동을 3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곡은 초기 작품이다. 리듬과 멜로디, 여성스러운 결말, 전형적인 구성과 화성 등 전형적인 요소로 만들어진게 특징이다. 중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고급스러워지고 다양한 기술이 엿보이며, 영웅적인 면모도 느낄 수 있다.
프레드릭 쇼팽(1810-1849)은 폴란드가 낳은 최대의 작곡가이다. 그는 헝가리의 리스트, 독일의 슈만과 함께
-
낭만주의 시대에 꽃을 피웠고, 39년의 짧은 생애동안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대부분이 피아노 작품으로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린다. 평생 피아노곡 밖에는 쓰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 쇼팽은, 그 분야에 있어서는 영원한 왕관을 쓰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프랑스어 교사인 아버지와 폴란드의 천재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는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 8세 때 이미 신동으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2세 무렵부터 바르샤바 음악원의 원장에게 이론과 작곡을 배웠고, 아달베르트 지부니에게 피아노 교습을 받았다. 이후 쇼팽은 작곡에 전념했으며, 1825년 최초의 작품 「론도」를 출판했다.
20대에 리스트가 천재를 알아보고 파리 악단에 소개했고, 파리는 그를 피아노의 명연주가로서 환영했다. 쇼팽은 연주자로서는 물론 작곡자로서도 새로 자신의 앞길을 개척해 나가게 되었다.
쇼팽이 피아노의 세계에 혁신적인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공로는 참으로 지대하다. 꿈과 환상, 정교하고 치밀함, 풍부한 시의 정신에서 솟아나는 예술의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의 예술성을 병의 악마가 질투해서일까. 결핵은 차츰 쇼팽의 육신을 쇠약하게 하였다. 한때 병세가 조금 회복되어 영국으로 연주여행을 떠났는데, 이로인해 그는 삶을 일찍 마감하게 됐다. 쇼팽은 1849년 10월 17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지금도 전세계 여성의 연인으로 군림하고 있다. 페르 라세즈에 있는 그의 묘지에는 지금도 전세계에서 오는 여성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정규 뉴데일리경제 대표·음악평론가 skyjk@new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