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과 성공경영-뉴데일리경제 박정규] 인류의 전쟁사를 보면 도저히 상대가 안되는 전투에서 승리하는 경우들이 등장한다. 적벽대전(赤壁大戰)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트로이전쟁, 십자군전쟁과 함께 ‘세계 3대 전쟁’으로 꼽히는 적벽대전이 펼쳐진 때는 서기 208년. 유비군과 손권군이 연합해 조조군의 10분의 1도 안되는 군사로 조조 병력을 대파, 위-촉-오 삼분정립 형성의 기초를 다진 전쟁이다. 적벽대전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로 흥미진진하게 전해져오다 최근 오우삼 감독의 영화로 화려하게 부활해 1,800년 전 현장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북방을 통일한 조조는 60만 대군을 거느리고 형주를 치기 위해 남으로 내려온다. 그때 형주를 지키던 유표는 죽고 아들 유종이 아버지의 자리를 이었는데 그는 조조와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고 말았다.
-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이라는 말처럼 형주가 조조의 손에 넘어간 것은 곧 유비와 손권에게는 무시무시한 공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유비 휘하의 제갈공명은 이같은 위협적인 상황을 손권에게 설명해 연합군을 구성하자는데 합의한다. 손권은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아 정예군 3만으로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하구에서 유비의 2만 군사와 회합했다. 합류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은 적벽(赤壁)에 이르러 장강 남쪽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장강 북쪽엔 조조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주유와 제갈공명은 조조의 진영 내 상황을 면밀히 정탐해 이에 맞는 전법을 구상했다. 배들이 출렁이는 바람에 군사들이 멀미로 고생하자 조조가 쇠사슬로 배들을 한데 얽어맨 것을 본 연합군은 화공(火攻), 즉 불로 공격하기로 한 것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조조 휘하에 들어간 수군의 백전노장 채모와 장윤이었다. ‘수전의 귀신들’이어서 이들이 있는 한 어떤 계략으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유가 채모와 장윤을 어떻게 제거할까 부심하던 차에, 조조 진영의 장간이 주유를 설득해 항복시키겠다며 강을 건너왔다. 주유는 절묘한 계책으로 장간을 이용해 채모와 장윤을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
채모와 장윤이 제거되자 작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주유 수하의 대장 황개는 조조에게 투항하러 가는 척하면서 배를 몰고 가서 불을 놓겠다고 자청했다. 황개는 조조에게 야밤에 군량을 실은 배 수십 척을 몰고 투항하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이어 기름을 바른 마른 갈대와 볏짚을 가득 실은 후 그 위에 유포(기름을 바른 천)를 덮은 이십여 척을 몰고 조조의 수군이 있는 강북을 향해 노를 저었다.
배들이 조조의 수군영에서 다다랐을 때, 황개가 신호를 보내자 이십여 척의 배에서 일제히 불길이 치솟았다. 화염에 휩싸인 이십여 척의 배들은 세차게 부는 동남풍을 타고 질주하듯이 조조의 수군영으로 빨려 들어갔다. 조조의 수군영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
기슭에 있는 조조의 육군영도 불바다가 되었다. 조조의 군영에 불길이 번지자 유비와 주유는 즉시 수륙 양군으로 총공격을 단행했다. 조조의 군대는 손도 변변히 써보지 못하고 대부분 몰살당했다. 혼이 나간 조조는 패잔병들을 이끌고 작은 길을 따라 허도로 도주하고 말았다.
10대 1의 병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적벽대전은 (1)채모·장윤 제거에 이어 (2)위장 투항 (3)쇠사슬로 연결된 군선을 불지르는 화공전략을 연계한 3종의 연환계(連環計)를 쓴데 따른 것이다.
적벽대전은 오늘날 기업 경영에도 여러 방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SK그룹의 경우 최근 대법원의 최태원 회장 4년형 확정판결 이후 그룹 임직원들이 답답한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분위기다. 대법원 판결 결과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지만, 법치국가에서 이뤄진 판결이니 안타깝지만 순응할 수 밖에 없다.
최 회장이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직에서도 물러난 만큼, 앞으로 SK하이닉스 인수나 우한 석유화학 프로젝트 투자처럼 강력한 오너십이 요구되는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
그러나 기업 전문경영인들의 가치는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빛이 날 수 있다. 위기이기에 더욱 긴장하고, 오너가 영어(囹圄)의 상태이기에 계열사 CEO와 임원들이 더욱 심도 있게 사업들을 진단해 기업을 끌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세계전쟁사가 입증하듯 수성(守成)에만 몰두하는 나라나 집단, 기업은 몰락이 불가피하다. 향후 최 회장 가석방을 위한 노력 등과 함께 국내 및 글로벌시장에서 사세 확장을 위한 총체적 전략을 펼쳐나가야 하는게 SK 전문경영인들에게 부여된 시대적 과제라 할 수 있다.
유비-손권 5만 연합군이 ‘기업’이라면, 조조의 60만 군사는 ‘글로벌 시장’이다.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SK그룹과 변화무쌍한 글로벌시장과의 전쟁은 ‘현대판 적벽대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