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잘못 아닌데"… 금융권 '당혹'"1심 판결일 뿐, 더 지켜보자" 반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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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은행 사이트에 속아 금전적 손해를 입은 소비자에게 은행이 손해 일부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은행들은 이 같은 판결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핀테크 전문가 사이에서도 “재고의 여지가 있는 판결”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는 15일 파밍 사이트 피해자 36명이 신한은행·국민은행·하나은행 등 금융기관 10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 중 33명에게 총 1억91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파밍이란 PC를 악성코드에 감염시킨 후, 이 PC를 조작해 이용자가 정상적인 홈페이지 주소로 접속해도 가짜 사이트로 유도한 후, 개인 금융 정보 등을 몰래 빼가는 수법의 신종 범죄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36명 역시 가짜 사이트로 유도된 후, 개인정보, 보안카드번호 등을 입력하라는 메시지에 속아 그대로 입력했다가 피해를 당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누군가 가짜 사이트에서 이용자의 금융거래 정보를 빼내 공인인증서를 위조한 것이므로 은행이 배상 책임을 진다”고 밝혔다.

다만 원고들이 각종 정보를 유출하게 된 경위 등을 감안해 은행들의 책임을 10~20%로 제한했다. 36명 중 일부승소한 33명을 제외한 나머지 3명에게는 자신의 부인이나 아들 등 제3자에게 공인인증서와 비밀번호 등을 알려줬다는 이유로 은행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판단은 금융기관에 대해 ‘무과실(無過失) 책임’ 원칙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 측이 “사건 발생 이전부터 전자금융사기의 범행 수법과 주의사항 등을 게시하는 등 방지 노력을 충분히 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용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더라도 금융기관의 책임이 면제되는 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해당 소식을 접한 은행들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은행들은 “판결 내용을 검토한 후,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로서는 아직 대응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핀테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당혹스럽다는 의견이 나왔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이번 사건은 누군가 은행을 사칭해 타인에게 사기를 저지른 행위”라며 “소비자보호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은행에게 책임을 물은 것인데, 은행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향후 재고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아직 1심 판결인 만큼, 좀 더 지켜보자는 말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은행 관계자는 “아직 1심 판결인 만큼, 구체적으로 대응방안을 마련하거나 입장 표명을 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금융감독당국 역시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이주형 금융감독원 서민금융지원국 선임국장은 “이번 판결은 금융사기와 관련, 금융기관에게 부분적으로나마 손해배상 책임을 물은 첫 번째 사례”라면서도 “1심 판결이고, 앞으로 2심, 3심까지 갈 가능성도 있는 만큼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감독당국은 이 같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포통장 척결에 더욱 힘을 쏟겠다는 입장이다.

이 선임국장은 “대포통장을 척결하는 것이야말로 금융사기를 줄이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며 “이번 판결과 무관하게 금감원은 대포통장 척결 등 금융사기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