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로서 보인 구조조정·불통 VS 개혁시도 두고 지지와 반대 극명
  • 증권업계의 '돈키호테', '미스터(Mr.) 쓴소리'로 불리는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국회입성 가능성이 제기되며 증권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현 증권업계의 관행과 관성에 강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는 인물이 정치인으로 변신할 경우 업계 전체에 강력한 비판과 개혁이 가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다.

     

    7일 정치권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새인물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주 사장의 영입을 추진 중이다. 아직 양측이 입장을 밝힌 것은 아니지만 증권가에서도 주 사장의 정계진출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최근 더민주당은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 이수혁 전 북핵6자회담 수석대표, 김병관 웹젠 이사회 의장을 영입했다. 법·IT/기업·통일/외교 등 분야를 불문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만약 주 사장이 더민주당에 입당해 총선에 당선되면 경제개혁과 민주화를 추진하는 '경제 전문가'로 활동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인맥이 넓은 주 사장은 이미 지난 2011년 민주당에서 경제민주화 특별위원회 위원을 지낸 바 있다. 주 사장의 부친 주종환 전 동국대 명예교수(2014년 별세)는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이사장 등을 지냈고, 동생 주은경씨는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 원장으로 진보성향의 가풍(家風)이 눈에 띈다.


    주 사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현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을 담은 글을 활발히 올리며 지지층(팔로워)도 꾸준히 늘고 있다.


    당초 주 사장은 한화투자증권 사장 임기만료 이후에도 업계에 남아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투자증권 퇴임 이후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투자스타일을 추구하는 자산운용사 대표로서는 역량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개혁을 바탕으로 업계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주 사장이)금융투자협회도 행선지로 꼽히고, 본인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후 지난해 연말들어 주 사장의 정치입문 가능성이 제기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2013년 9월 한화투자증권 취임 이후 회사 내에서 추진했던 파격실험들을 업계전체로 고스란히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 사장은 고정관념을 깨고 실험적인 정책을 도입하며 이목을 집중시켜왔다. 매도 리포트를 의무적으로 작성토록 했고, 읽기 쉬운 리포트를 추구하는 차원에서 사내에 편집국을 만들었다. 고위험 주식을 선정해 투자자들에게 공지했다.


    영업부서직원들의 개인 성과급을 폐지했고, 그 일환으로 업계 관행으로 여겨져온 자기매매를 없애며 불필요한 매매를 금지시켰다. 주식 위탁 계좌를 PB가 상담·관리해주는 상담 계좌와 비상담 온라인전용 계좌(다이렉트 계좌)로 나누고, 고객이 선택하도록 하는 서비스 선택제를 도입했다.


    반면 파격행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오히려 증권업 종사자들은 반대입장이 강하며 한화투자증권의 내부 상황과 성적을 기준으로 한다면 성공보다는 실패에 여론이 쏠린다. 이에 따라 '정치인 주진형'에 대한 전망 역시 기대보다는 우려가 다소 높은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민주화'를 추구하는 주 사장이 현재 본업인 증권사 CEO로서는 '칼잡이'면모를 과시하며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주 사장은 한화투자증권 취임 직후 1600여명의 직원 중 21%인 350명을 내보내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취임 이전 한화그룹이 주 사장을 영입한 것 역시 구조조정이 목적이었다는 업계 예상과 같은 결과였다. 과거 우리증권과 LG투자증권 인수합병 후 구조조정 작업을 주도하며 구조조정 전문가로 업계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구조조정 외에도 한화투자증권의 자발적 인력이탈도 지속되고 있다. 업계는 주 사장의 소통부재가 만들어낸 결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매도리포트 의무 발행과 고위험 종목 선정에 반기를 들고 애널리스트가 잇따라 퇴사했다. 한때 50명에 달하던 리서치센터 규모가 주 대표 취임 이후 급감해 10여명 선까지 줄기도 했다.


    전 한화투자증권 직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슈가 한창인 당시 업계에서 유일하게 합병 반대 보고서를 낸 것도 주 대표가 리서치센터에 강요한 부분이 크다"며 "주주가치 제고나 투자자보호의 목적이 아닌 삼성이 엘리엇에 패할 것이라는 전망과 그에 따른 투자전략을 제시한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50여명의 지점장들이 본사에 찾아와 주 사장을 항의방문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공개집단반발 사태도 일어난 바 있으며 이 과정에서 주 사장은 지역사업부장 2명에 대해 자택 대기발령하는 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이같은 직원들의 극심한 반발에도 주 사장은 귀를 닫으며 오히려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회사 직원은 "SNS를 통해 새 제도의 도입 취지를 소개하고 직원들과도 매주 소통의 시간을 가진다고 강조해왔지만 정작 내홍이 불거지자 인트라넷과 직원 이메일 계정을 막는 등 사내 소통 차단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룹과도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9월 한화그룹은 독단경영을 이유로 주 사장을 조기에 해임하고 여승주 부사장을 새 대표이사에 앉히려 했다. 그러나 임기를 채우겠다는 주 사장의 의지가 강했고, 이 과정에서 주 사장과 그룹 및 직원들 간의 분란이 끊이지 않아 그룹과 약속된 3월까지 임기를 채우기로 했다.


    회사 실적이 악화됐다는 점도 경력에 약점요소로 꼽힌다. 한화투자증권은 연결재무제표 기준 3분기 당기순손실 49억3300만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영업손실도 138억8000만원으로 역시 적자로 돌아섰다. 회사 내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이 3분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통을 끊은 채 독단경영을 했던 결과가 바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주 사장이 국회에 입성하게 되면 한화투자증권 CEO로서 보인 파격을 각종 입법활동 등을 통해 금융투자업계 전체에 확산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증권업계 전체가 주 사장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는 이유다.


    물론 우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 주진형'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지난 4일 주 사장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금융투자업계의 귀중한 존재"라는 발언도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황 회장은 "주 사장의 개혁이 시끄러웠던 것은 개혁과제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룹과의 문제 등 다른 변수 때문"이라며 "이같은 성격의 개혁이 사회 각계에서 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쉬운 투자보고서와 매도리포트 작성, 온라인과 지점 고객의 수수료 차등화는 원칙적으로 옳은 개혁"이라고 평가했다.


    이밖에 고용부분에 있어서도 구조조정에 열을 올리는 한편으로는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학자금 대출상환이나, 연공 서열 방식의 인사체제에서 능력별 직무급 인사체제로의 전환 시도에 대해서는 신선한 변화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 역시 "기존의 관행을 깬 개혁에 대한 피로감과 그에 따른 반발은 반드시 일어날 수 밖에 없지만 업계가 변화를 필요로 하면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는 점에서 주 사장의 행보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주 사장의 거취와 관련해 한화투자증권 관계자는 "주 사장 개인적인 일로 정계진출과 관련된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으며, 부사장 등 임원들역시 기사 등을 통해 내용을 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정당 입당과 총선준비 기간과 사장 임기가 겹치는 부분에 대해서도 거취 문제에 대한 윗선의 언급 역시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주 사장의 더민주당 입당이 확정될 경우 3월말 임기만료 이전에 자연스럽게 사장자리를 내려 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지난 2012년 19대 총선에서 증권사 사장 출신으로서 정계입문을 도전했던 사례는 이휴원 전 신한금융투자 사장(現 현대BS&C 대표)을 꼽을 수 있다. 포항 북구와 공천을 신청했지만 낙천했고, 이후 비례대표를 신청했지만 국회등원에 실패했다.


    이 전 사장의 국회 도전은 자신의 고향에서 국회의원으로서 정치활동을 하겠다는 본인 스스로의 의지가 강했던 반면, 주 사장의 경우 당 차원의 영입제안을 통한 입당과 출마과정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