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차고 넘친다더니…지루한 '서증조사-증인신문' 진행'진술조서' 신빙성 논란에, 껍데기 증인신문 지적 잇따라
  •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데일리DB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데일리DB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공판이 지난달 7일 시작된 이래 40일 넘게 진행되고 있다. 

    공판은 매번 100여 명의 방청객이 참석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지만 회차가 거듭될 수록 '세기의 재판'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지루하게 진행되는 양상이다.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자신감을 보인 특검이 혐의를 입증할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검은 지난 13차례의 공판에서 수 만 페이지의 진술·비진술증거와 5명의 증인을 앞세워 혐의 입증에 나섰다. 하지만 제시된 증거 대부분이 혐의를 입증하기에 부족해 감정싸움만 고조되고 있다. 특히 이달부터 열린 증인신문에서는 진술조서에 대한 신빙성이 도마 위에 오르며 유도신문 논란도 제기된 상황이다.

    변호인단은 특검의 수사과정과 증거를 집중 공격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대전제 자체를 무너뜨리는 전략이다.

    특검과 변호인단의 공방은 공판이 진행될수록 고조되고 있다. 이에 지난 한 달 간의 공판 과정을 간략히 되짚어본다.

    ◆[1차] '세기의 재판' 돌입…공소사실 두고 날선 공방

    1차 공판은 공소요지 및 사건의 실체 등을 설명하는 모두절차로 진행됐다. 이날 특검과 변호인단은 모든 혐의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청탁이었다는 주장을 놓고 날선 공방을 펼쳤다.

    특별검사팀을 이끈 박영수 특검은 이날 직접 나서 "지난 3개월간 수사를 통해 최순실 씨가 국정에 깊이 관여하면서 각종 이권사업 개입해 사익 취한 사실 확인했다"며 "국정농단 사건은 최순실의 국정개입과 사익추구를 위한 정격유착 두 가지 고리로 이뤄진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삼성과 최순실 간의 모든 연결고리가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을 위한 준비된 절차였다는 논리에 기반한 판단이다.

    변호인단은 특검이 제기한 주장의 실체적 진실과 공소의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검이 예단과 선입견에 입각해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반박이다.

    그러면서 "특검은 사업구조 개편을 포함한 여러가지 사업 활동에 대해 삼성이 최순실을 미리 알고 경영권 승계를 위했다는 예단을 갖고 있는데 이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논리적 비약에 불과하다"며 "승계작업이라는 현안과 대가 관계에 대한 합의와 부정한 청탁이 가장 중요한데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항변했다.

    ◆[2~6차] 방대한 '진술 증거' 불구 혐의 입증 난항

    진술증거에 대한 서증조사로 진행된 2~6차 공판에서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 대한 삼성의 승마지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의 대가성 여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부정 청탁 여부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특혜 의혹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등이 주로 다뤄졌다.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등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과 함께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 등 핵심 관계자들의 진술조서를 통해 삼성의 뇌물죄 입증에 총력을 기울였다. 1차 공판과 같이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대가성 청탁을 했다는 의혹을 앞세워 '삼성→박근혜 전 대통령→최순실'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방대한 양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변호인단은 특검이 실체 없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특검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면서 핵심 쟁점으로 거론되는 삼성의 승마지원 역시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강요로 인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합병에 따른 순환출자고리 해소와 관련해서도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경영행위를 불법적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여기에 특검이 공소사실과 상관없는 발언으로 논점을 흐리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공소장 전체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7~9차] 특검 "대가성 청탁" vs 변호인단 "예단과 추측일 뿐"
     
    7~9차 공판은 비진술증거에 대한 서증조사로 진행됐다. 양측은 ▲삼성의 승마지원과 최순실 영향력 인지 시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및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행정처분 ▲삼성물산 합병 특혜 여부 등을 놓고 입장차를 보였다.

    특검은 삼성과 코어스포츠 간의 용역 계약서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후원계약서 및 공소사실 관계자들의 문자메시지와 이메일 등을 앞세워 혐의 입증에 집중했다.

    특히 진술증거에 대한 서증조서와 마찬가지로 삼성의 대가성 청탁에 초점을 두고 날선 공방을 이어갔다. 특검은 삼성의 정유라 승마지원이 최순실의 영향력을 미리 인지한 대가성 지원이었으며 동계영재센터 후원과 삼성서울병원의 행정처분 역시 대가관계 합의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대가를 바라는 부정한 청탁이었다는 특검의 논리에 대해 "예단과 추측에 기반한 주장"이라고 맞섰다.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 전까지 최 씨의 영향력을 알지 못했고, 이후에는 최 씨의 강요와 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끌려다녔다는 항변이다.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도 법적 절차에 따른 경영상 판단일 뿐 특혜는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공정위가 순환출자고리 해소를 위한 처분 주식을 축소했다는 지적에는 "6개월 내 시정조치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특검은 불법적인 청탁으로 결과가 뒤짚힌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10~13차] 핵심인물 없는 '빈껍데기' 증인신문 논란

    이달부터 진행된 10~13차 공판에서는 특검의 공소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증인신문이 이어졌다. 특검은 네 번의 공판에서 7명의 증인을 신청했지만 최순실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핵심인물들이 불출석하면서 허무하게 마무리됐다. 

    여기에 출석한 5명의 증인도 특검의 진술조서를 부정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태도를 보여 특검의 무리한 공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노승일 전 코어스포츠재단 부장과 장남수 전 비덱스포츠 대리, 박재홍 전 승마국가대표 감독 등 비교적 비중있는 인물들이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진술조서와 모순되는 주장을 펼치거나 비협조적인 진술태도를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검은 증인을 상대로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입증할 만한 질문을 이어갔지만, 되려 진술조서가 유도신문으로 작성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역풍을 맞기도 했다.

    실제 3차 증인으로 출석한 김찬형 씨는 "특검 사무실에서 조사받을 당시 정황에 대해 검사님이 설명해주셨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인정했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변호인단은 김 씨의 진술조서를 근거로 "김 씨는 특검 조사 전까지 최순실이 덴마크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몰랐다고 한다"며 특검의 유도신문 의혹을 제기했고, 재판부는 김 씨에게 "재판장에서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아는 부분만 정확히 말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17일 열리는 14차 공판에는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과 이영국 제일기획 상무가 증인으로 출석한다. 특검과 변호인단은 이들을 상대로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관계 및 청와대의 정유라 특혜 지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