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강화에 억지로 중증환자 비율 맞추면서 경증환자 입원 꺼리면서 수익 급감…"정책 자체가 만행 유도…상급종병 중증·경증 진료비 가산 차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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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급종합병원 지정 타이틀매치를 앞두고 중증질환자 비율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경증 환자들의 입원을 억제하면서 중형급 대학병원들의 입원수익이 최근 급감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일부 중형급 상급종합병원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기존에 당연히 입원시켰던 환자들을 회유해 입원을 줄이고 있는 것.


    성형외과, 이비인후과 등 비교적 중증도가 높지 않은 진료과에서 특히 이같은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실손보험에 기댄 환자들은 불평을 드러내고 있고, 진료 일선에서 교수들은 이를 설득하기 위해 애를 먹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는 의료수익 급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인 서울시 A대학병원의 경우 최근 2~3개월간 매달 20억원가량 의료수익이 감소했다. 이는 해당 의료기관 평균 월 의료수익의 20%가량에 해당하는 상당히 큰 액수다.


    A대학병원 한 교수는 "예전에는 당연히 입원시켰던 환자들의 쓸데 없는 입원이 없도록 하라는 게 최근 병원 정책"이라면서 "의료 수익 때문에 과도한 입원, 과잉진료를 유도해왔던 통상적인 모습과 다른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3기 상급종병 타이틀매치…강화되는 중증환자 비율 맞추기 '사활'


    중형급 상급종병에서 최근 이같은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내년도 3기(2018~2020년)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앞두고 부랴부랴 중증환자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대학병원의 '명예'인 상급종병 지정을 앞두고 중증 환자 비율 맞추기는 중형급 대학병원들에게 가장 뼈아픈 숙제다.


    빅5 대학병원과 일부 병원을 제외하고는 만점 기준인 중증 환자 30% 비율을 채우는 의료기관이 많지 않다. 지난 2기(2015∼2017년) 지정된 43개 상급종병 중 이를 충족한 곳은 10여 곳에 불과하다.


    때문에 상급종병 평가자료 제출을 마친 다음에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경증환자 진료비를 청구하는 등 말 그대로 '조작'이 암암리에 많았다.


    평가 기준상 중증 환자 비율은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상급종병이 되려면 중증환자 비율이 전체 입원환자 중 적어도 21%(기존 20%)를 넘어야 하고, 만점 기준 역시 35%(기존 30%)로 높아졌다.


    평가에 반영되는 중증 환자의 진료비 청구자료의 기간도 과거 1년치에서 2년6개월치로 늘었다.


    서울 B대학병원 교수는 "소위 빅5를 제외하고는 중증질환 비율을 맞추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면서 "2년6개월치를 받다보니 당장 청구를 미루는 방식의 어설픈 조작만으로 기준 충족이 불가능하다. '울며 겨자먹기'식이든 어쨌든, 결국 상급종병 목적에 부합한 진료 양태로 가고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순기능" OR "기형적 만행"…'중증환자 진료비 차등적용', 제도 개선 필요


    중형급 대학병원들의 자발적(?)인 최근 행태는 어딘지 낯설다. 중증질환에 대해 난이도가 높은 의료행위를 전문적으로 하는 종합병원이라는 상급종합병원 제도 취지에 부합한 듯하면서도 기형적인 모습이다.


    의료계는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억지로 중증질환자 비율을 높이도록 유도하는 현재의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고대의료원 박종훈 의무기획처장(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은 "현재는 상급종병이 되면 중증환자를 보든, 경증환자를 보든 진료비 가산이 동일하게 30%씩 이뤄진다"면서 "이것은 상급종병이 경증환자를 보도록 유도하는 것과 다름 없다. 중증환자 진료보다 경증환자 진료 시 받는 메리트가 오히려 높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무기획처장은 중증환자 진료비 가산을 40%로 높이고, 경증환자는 25%로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30% 진료가산이 되는 상황에서 의료 마진은 3~5% 정도"라면서 "중증 환가와 경증환자의 가산 비율을 차등화하면 현재처럼 억지로 입원을 시키려한다거나 혹은 입원을 줄이는 식의 기형적인 일들은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이같은 정책 개선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전달체계개선협의체에서 입원 시 중증도에 따른 진료비 차등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해당 TF에서 관련 실행 방안 발제를 맡았던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 윤 교수는 "중증도에 따라 의료기관 진료비를 차감하면서 환자 본인부담율을 인상하는 식으로 진료비를 차등화할 수 있다"면서 "추가적인 재정 투입 없이도 환자를 재배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동네의원에서 발생하는 입원진료비 1조원, 병원과 종합병원급에서 발생하는 경증질환자 진료비는 9천억원, 상급종병에서는 1600억원이 발생하는데 중증도에 따른 진료비 차등제 적용을 통해 적절한 재분배가 이뤄지도록 한다는 것.


    김 윤 교수는 "이를 위해서는 중증질환과 경증질환에 대한 질환분류체계가 정교해져야 하고, 의료기관 유형별로 외래 진료비중에 대한 합의 등 전제가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