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인도일 못 지킬까 ‘노심초사’탄력근로제 무의미, 담당자 자주 바뀌면 효율 저하
  • ▲ 자료 사진.ⓒ현대중공업
    ▲ 자료 사진.ⓒ현대중공업
    본지는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한달 앞두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겪게 될 삶과 근무환경의 변화를 미리 살펴본다. 소득 감소와 고용 불안 등 부정적 영향도 예상되고 있지만, 워라밸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기대반 우려반이 공존하고 있는 곳도 있다. 주52시간 시행이 가져올 각 분야별 변화를 기획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한 조선소에서 올해말 건조를 목표로 하는 LNG선 프로젝트 총괄담당자 A씨는 최근 만성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7월 1일부터 시작된 주 52시간 근로단축으로 생산공정 곳곳에서 차질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박건조는 설계와 강재적치 등을 시작으로 명명식까지 총 11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단계별로 담당자가 배치돼 공정이 진행되는데, 근로시간 단축으로 초과근무 등이 제한돼 당초 짜놓은 일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A씨는 계약시 선주와 약속했던 선박 인도일이 지켜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인도기일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조선사의 ‘신뢰도’에 치명적이다. 조선사 책임으로 공정이 지연되면, 선주에 보상금을 줘야 하는 등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프로젝트 총괄자인 A씨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이유다.

    조선소 근로자는 대부분 오전 8시에 조회를 시작으로 오후 5시에 업무를 마친다. 이 중 선박 공정을 맡고 있는 인원은 초과근무를 하거나 주말에도 출근해 잔업을 수행한다. 업무집중 없이 선주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환경에서도 업무집중 근로를 위해 ‘3개월 탄력근로제’를 실시하고 있다. 3개월 단위로 성수기에 근로시간을 집중하는 대신, 비수기에는 성수기에서 당겨쓴 시간 만큼 줄이는 제도다.

    그러나 조선업계는 업종 특성상 탄력근로제를 따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A씨가 맡고 있는 LNG선 프로젝트처럼 대형선박의 건조기간은 짧아야 1년 6개월이다.

    조선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3개월 마다 프로젝트별 담당자를 교체해 선박 공정에 나서라고 주문한다. 회사 역시 이러한 방침이 선박건조에 악영향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정부 정책에 따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육지책을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작업 효율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담당자가 자주 교체되면 업무 숙련도는 낮아진다. 조선업계에 근로시간 단축은 업종 특성상 실현 불가능한 정책이다.

    A씨는 점심을 먹으러 가던 중 한 도크에서 도장 작업이 진행 중인 선박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선수와 선미의 페인트 색깔이 미묘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도장을 맡은 담당자가 달라 발생한 실수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겠다는 정부 정책에는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도장이 잘못된 선박을 보니 헛웃음만 나온다. 갑갑한 마음에 점심을 거른 A씨는 자리로 돌아와 또다시 두통약을 먹는다. 저 멀리서 울려퍼지는 뱃고동 소리가 참 야속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