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책은… 중기·자영업자 절망"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 경영·노동계 모두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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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손보기로 했다. 정부는 속도를 낼 태세지만, 노동계 반발이 예상돼 진통이 예상된다.
◇우이독경(牛耳讀經) 文정부, 망양보뢰(亡羊補牢)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내년 경제정책방향을 논의한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에 대해 "필요하면 보완조치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들) 새 경제정책은 경제·사회의 수용성과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조화롭게 고려해 국민의 공감 속에서 추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최저임금 속도 조절 언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7월14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 10.9% 인상을 결정하자 16일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최저임금위 결정을 존중한다"고 사실상 수용 의사를 밝혔다. 문 대통령 공약인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려면 내년 이후 평균 15.2%씩 올라야 했다. 10.9% 인상 결정을 존중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공약에서 한발 물러서 속도 조절을 인정한 셈이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집권 3년 차를 앞둔 시점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아우성에 귀를 닫고 친노동계 행보를 고집하다 최근 지지율이 내림세를 보이자 집권 중반기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할까 봐 속도조절론에 무게를 싣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내년 10.9% 최저임금 추가 인상 적용이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다.
소상공인연합회 김대준 이사장은 뒷북 논란과 관련해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을 몰랐고, 간과했다"며 "노동계 얘기만 듣다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경제·고용상황에 미치는 영향을 체감하고서야 '아! 이런 거였구나'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도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를 외면해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내년 1월 또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면 일자리 감소에 더 영향을 끼칠 것"이라면서 "정부는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드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현실을 모르는 거다. 줄어드는 것은 15~19세 학생들이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의 3분의 1이 경제활동을 계속하고, 여성도 0.3%씩 경제활동 참여가 늘고 있다"고 부연했다. -
정부는 이날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손보겠다고 했다. 내년 1월 중 정부안을 마련하고 국회 논의를 통해 2월 중 법 개정을 마친다는 구상이다. 이르면 내년 4월 말부터 최저임금위가 가동하므로 2020년 최저임금을 개편된 구조 아래서 결정하려면 속도감 있는 전개가 필요하다.
정부안은 최저임금 제도개선 기획반(TF)안과 국회 계류법안, 전문가 의견 등을 수렴해 구체화할 계획이다.
그러나 노동계 반발이 예상돼 개편이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송명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정책국장은 "아직 정부에서 어떻게 하겠다거나 의견을 물어온 적 없다"고 했다. 그는 "제도개선TF 개편안의 경우 결정구조를 이원화해 전문가가 인상구간을 정하면 노사가 논의해서 결정짓자는 건데 현재의 갈등 구도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을 이미 낸 바 있다"고 했다.
송 정책국장은 "현재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할 때 공익위원이 제시하는 심의촉진구간을 처음부터 전문가가 제시하고 그 안에서 협의하라는 것"이라며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이견을 조정한다. 무엇보다 노동계의 적정수준 인상을 요구하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제도개선TF의 안은 노사 간 협의로 합의점을 찾을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으나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경영계는 결정구조 개편에는 동의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한 관계자는 "아직 정부안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면서도 "개편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방법론에선 단체마다 견해차가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제도개선TF안과 유사하게 전문가그룹이 인상안을 제시하게 하자는 견해다. 노사가 제시안에 합의하면 정부가 이를 결정하고, 합의하지 못하면 정부가 제시안을 검토해 임의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전문가그룹의 제시안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결정방식이다.
경총은 현재의 방식을 큰 틀에서 유지하자는 태도다. 우선 국책·민간연구기관 공동연구를 통해 전문성이 담보된 기초 심의자료를 마련하자는 의견이다. 여기에는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나 고용에 미치는 영향까지 포괄적으로 반영된다. 이후 최저임금위에서 노사가 협의해 인상안을 마련하면 정부가 검토의견을 내는 방식이다. 경총 관계자는 "정부 검토의견은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있어 일정 부분 책임을 지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방식은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의 중립성을 강화하자는 게 핵심이다. 노사가 공익위원 집단에서 어느 한쪽 의견이 강해 서로에게 불리한 위원을 차례로 배제하는 방식으로, 남는 공익위원의 중립성을 담보하자는 것이다.
소상공인업계 일각에선 전문가그룹이 장기 인상계획을 세우고 노사 갈등 없이 인상안을 기계적으로 결정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가령 2030년까지 중위소득의 40%를 60% 수준까지 끌어올리도록 정책 목표를 잡고서 물가상승률이나 노동생산성 등을 기계적으로 대입해 인상안을 결정하자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이런 식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해외사례가 없잖다"며 "경기 부담은 물론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계가 반대하고, 경영계 내에서도 견해가 엇갈리면서 결정구조 개편이 정부 생각처럼 속도감 있게 진행될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 교수는 탄력근로제를 예로 들며 "현 정부에서 강성 노조를 무시한 채 정치력과 결단력 있게 개편을 추진한다는 데 회의적"이라고 했다.
안기돈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양극화가 심각하고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노사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할 게 뻔하다"며 "정부가 욕을 먹더라도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