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금융당국이 자본시장 육성을 위한 ‘또 하나의 선물’을 내놓았다. 증권거래세 0.05%포인트 인하와 금융투자 상품간 손익통산 허용이다.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은 이를 두고 “선물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국의 선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해부터 당국은 코스닥 살리기를 필두로 한 모험자본시장 육성을 목표로 5000억 규모의 ‘코스닥 스케일업 펀드’ 조성, 바이오·4차산업 등 ‘핫한’ 산업분야에 대해서는 특화라는 이름으로 상장 ‘특혜’를 부여하기도 했다. 

    많은 기업들이 이를 활용해 상장의 꿈을 이루기도 했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검증이 덜 된 기업들에 투자를 할 수도 있는 위험성도 공존하게 됐다.

    여기에 아예 ‘코스닥 벤처펀드’를 만들어 코스닥에만 50% 이상 집중적으로 투자하도록 한 상품까지 야심차게 내놓았다. 정부의 열의라는 인센티브를 받고 출시 1개월도 되지 않아 2조원의 자금이 몰리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시장 악화로 수익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인기도 예전만 못한 상황이 됐다. 그나마도 대부분이 사모펀드 중심이라 일반 투자자들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는 한계도 남았다.

    수년 전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실패부터 시작해 정부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상품들이 잇따라 ‘붐업’에 실패하면서 금투업계에서는 암묵적으로 ‘정부가 미는 상품은 실패할 것’이라는 원칙까지 떠돌게 됐다. 

    한 금투업계 관계자는 새로 나온 정부 발표 상품에 대한 의견을 묻자 대뜸 “정부에서 시키니 기업 입장에서는 팔기는 해야겠지만 투자자들의 반응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벤처기업,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를 육성시키기 위한 정책을 내놓는 것이 여러모로 정치적으로는 유리한 방향일 것이다. 더군다나 ‘불평등 해소’를 내걸고 출범한 현 정부는 더욱 그 책임이 막중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당국은 자본주의의 본질과 투자자들의 속성을 먼저 파악했어야 했다. 무조건적으로 ‘펀드’를 조성한다며 5000억이든 1조원이든 조성하기에 앞서 투자를 하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먼저여야 했다.

    투자금은 ‘수익’이 보장된 곳으로 흐른다. 리스크가 크더라도 소위 ‘대박’을 노릴 수 있는 곳이거나 아니면 적은 수익이라도 ‘안정적’인 지급을 보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서민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투자처다.

    이 때문에 과거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막대한 돈이 쏠리거나 아니면 여전히 부동산 투자가 인기를 끄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부가 육성하고자 하는 코스닥, 벤처기업, 초기기업 투자는 이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최대 수익률은 ‘코인’만 못하지만 부동산처럼 안정적이지도 않다. 대기업은 아무렇지 않게 상장을 유지하기도 하는 이유로 걸핏하면 ‘상장폐지’가 되는 리스크도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 때 투자자들은 다시 한 번 ‘대마불사’의 씁쓸함을 삼켜야 했다.

    이런 근본적인 상황이 바뀌지 않는 마당에 정부가 이것저것 당근책을 내놓아봤자 투자금이 몰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여전히 규제의 벽에 막혀 좋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대중화에 실패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과거보다는 많이 완화됐다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테슬라’의 꿈보다는 자본력을 이미 갖춘 대기업에 기술을 매각하는 길을 택하곤 한다.

    한 업계인은 “정부에서 몇 푼을 푸는 것보다 일단 투자할 만한 기업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며 “근본적으로 기업에 친화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각종 상품을 만들고 펀드를 조성하는 것은 ‘머니 게임’에 불과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번 거래세 인하에 대해서도 일단 시장의 표정은 냉담하다. 비록 ‘단계적 인하 후 최종적으로는 폐지’를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으나, 당초 시장의 예상보다도 낮은 0.05%포인트의 적은 인하폭으로 얼마나 큰 거래 활성화 효과가 생기겠냐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거래세 인하에 부정적이었던 기재부와 정부여당의 지속적인 '밀당'의 결과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에서는 그저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제스처로 소비될 것이라는 비관론과, 심지어 양도세와 얽혀 오히려 더 큰 과세부담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당국과 국회는 과세제도 개편과 관련해 TF를 꾸리고 세부사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정부의 당근책이 그저 정치적인 목적으로 급조된 대책이 아닌, 진정으로 투자자들을 이롭게 하고 자본시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진짜 선물’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