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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기조 여파로 주요 보험사의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수익률이 연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2005년 국내에 도입된 퇴직연금 제도는 적립금 규모가 이미 지난해 190조원에 이를 만큼 성장했지만, 원리금보장 위주로 자금을 굴리다보니 수익률은 저조한 편이다. 최근 퇴직연금 시장에 '디폴트 옵션'과 '기금형' 도입이 거론되는 가운데 금융권에서는 책임소재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11개 생명보험회사 가운데 5개사의 퇴직연금 DC형(확정기여형) 상품 1년 수익률이 1%대를 기록했다.
대형 3사인 삼성생명(1.74%), 한화생명 (1.71%), 교보생명(1.37%)을 비롯해 신한생명(1.84%), 동양생명(1.94%)도 1%대에 머물렀다.
인수합병(M&A) 시장 매물로 나온 KDB생명은 직전 1년 수익률이 유일하게 마이너스 2.79%를 기록했다. 2017년 이후 퇴직연금 시장에서 철수 후 적립금이 감소하면서 수익률도 곤두박질친 것이다.
11개사 중 2%를 웃돈 곳은 IBK연금보험, 미래에셋생명, DB생명, 흥국생명, 푸본현대생명 등 5곳이다.
손보업계의 경우 6개사 중 KB손해보험(1.74%), 삼성화재(1.87%), 롯데손해보험(1.95%) 등 3개사가 1% 수준에 그쳤다. 나머지 3개사인 한화손해보험, DB손해보험, 현대해상은 2%대 수익률을 거두며 선방했다.
문제는 가입자가 퇴직연금을 직접 운용 하는 DC형이 무관심으로 방치되면서 수익률 저하가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퇴직연금은 회사가 운용을 맡는 확정급여형(DB형)과 퇴직연금 가입자가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형), 개인형 퇴직연금 IRP형으로 구분된다.
DC형의 경우 근로자가 스스로 운용해야 하는데 전문성 부족으로 원리금 상품 위주로 운용되는 연금자산을 방치하고 있어 수익률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 올해 1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퇴직연금 가입자의 상품 운용 행태 연구결과를 보면 DC형 퇴직연금 가입자의 91.4%가 운용지시를 변경하지 않았다.
저금리 기조로 수익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근로자가 별도로 의사 표시를 하지 않으면 원리금보장상품을 편입하도록 하는 규약도 수익률 저하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자본시장활성화특위가 지난 5월 DC형 퇴직연금에 대한 디폴트 옵션 제공과 기금형 퇴직연금의 선택적 도입 방안을 담은 개선안을 발표했지만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디폴트 옵션은 DC형 퇴직연금 가입자의 운용 지시 없이도 금융사가 가입자 성향에 맞춰 투자 상품을 선정, 운용하는 제도다. 디폴트 옵션을 도입할 경우 자산운용 역량을 갖춘 전문가가 연금 자산을 배분 운용해 수익률 개선이 기대된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다수 사업장의 퇴직연금을 한데 묶어 특정 연금 사업자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노사와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가 선정한 외부전문기관에 퇴직연금 운용을 맡기고 매년 성과를 평가해 운용방향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디폴트 옵션 도입에 앞서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 자산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하는 가입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중장기적으로 투자를 활성화하는 취지는 공감한다”면서 “다만 금융사가 가입자 운용지시 없이 투자했을 때 수익률이 부정적으로 나올 경우 책임소재에 대한 부분이 부각될 수 있으므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