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촉행사 할인비용 부담' 지침에 백화점 불만 여전업계 "시간만 늦춰졌을 뿐… 정기세일 없어질 것"'특약매입거래' 부정적 인식도 한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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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쇼핑
    내년 1월, 백화점들이 매년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할인행사(정기세일)이 사라지거나 대폭 축소될 위기에 놓였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백화점이 정기세일 시 입점 업체 상품 할인액의 절반을 부담하도록 ‘특약매입거래 부당성 심사지침’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업계는 공정위의 지침이 현실과 괴리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백화점의 영업이익률이 지난 10년 새 약 10%에서 3~5%대로 떨어지며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황에서, 공정위가 갑과 을을 무리하게 규정하고 입점 업체의 자발적인 할인을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의 ‘대규모 유통업 분야의 특약매입 거래에 관한 부당성 심사지침 개정안’(특약매입 지침)에 따르면 내년부터 백화점들은 입점 브랜드에 정기세일 참여를 요청할 경우 할인 금액의 50%를 부담해야 한다. 

    백화점들이 반발하자 공정위는 추가로 규정의 예외 요건인 자발성·차별성에 대한 내용도 보강했다. 납품업체가 판촉 행사를 자발적으로 요청했거나 해당 납품업자에게만 차별적으로 할인행사가 기획됐다면 유통업자의 50% 부담 의무가 면제된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업계는 개정안의 기준이 모호하다고 항변한다. 백화점 의사가 끝까지 개입되지 않고, 다른 매장과 구분되는 차별성까지 갖춰야 자발적인 할인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백화점은 할인행사를 기획하거나 입점 업자에게 요청해서는 안 된다. 입점 업자가 백화점에 할인행사 실시를 요청한 공문이 있어도 자발적인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문제는 대다수의 할인은 입점 업체의 자율적인 결정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업체의 자발적 세일을 공동 판촉비용으로 볼 수는 없는 셈이다. 별도로 진행하는 TV 광고, 사은품 등 백화점 판촉비도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그렇다 보니 당장 11월부터 진행된 연말 정기 세일부터 백화점 이름을 내건 가격 할인이 사라졌다. 롯데·신세계·현대·AK·갤러리아 등 주요 백화점의 행사 참여는 가격 할인은 일절 제외했다. 사은품·경품 이벤트가 전부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처럼 대대적으로 정기세일을 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지침에 맞춰 행사를 준비하면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백화점 인트라넷을 통해 협력사에 세일을 고지, 참여할 사람은 참여하라고 자율성을 강조해야 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업계는 당국의 개정안이 ‘특약매입거래’ 방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한몫 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약매입은 납품업체가 백화점에 입점해 직접 판매하고 매출의 일정액을 판매수수료로 백화점에 내는 거래방식이다. 팔리지 않은 제품에 대한 재고(반품) 부담도 납품업체가 진다. 백화점은 장소를 제공하고 모객과 마케팅에만 집중하면 돼 납품업체의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반면 이를 역이용해 시장에 검증되지 않은 신상품이나 신상브랜드를 과감히 선보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최대한 팔아보고 안 팔리면 반품이 가능하니 백화점도 적극적으로 신생브랜드에 매장을 내줘 브랜드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다. 국내 백화점 특약매입비중은 80%에 육박하며 직매입은 10%에 못 미친다.

    여기에 세일에 참여하는 업체들의 30~40% 가까이가 중소기업이라는 점도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할인을 통해 계절 상품 등 재고를 처리하는 입점업체도 세일로 인한 효과를 보기 어려워진다. 해외 명품 브랜드나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우 세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공정위 조치로 매출에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온라인 등으로 판매 채널이 확대되며 백화점의 입지가 예전과 다르고, 협력사와의 관계 역시 강제성을 띌 수가 없게 됐다. 백화점이 입점 업체에 갑질하는 시대가 아닌데도 정부는 계속 백화점이 갑이라고 정의하고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