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했던 연내 6개국 승인 사실상 무산EU, 본심사 이제 시작… 6개월여 더 소요일본엔 아직 본심사 신청도 못해공정위 심사도 늦어져… 조건부 승인 우려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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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을 위한 기업결합 절차가 내년 상반기 이후에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전망이다. 연내 심사 마무리를 목표로 했으나, 전보다 깐깐해진 유럽연합(EU) 심사와 이로 인해 공정거래위원회 심사까지 늦어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올해 안으로 기업결합심사를 끝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분석이다.

    29일 최근 EU집행위원회가 실시한 기업결합 관련 심사를 분석해본 결과, 지난달부터 현재까지 약 2달간 3건이 심층심사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3건 모두 양사 합병시 과점으로 글로벌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도 심층심사 가능성이 커졌다.

    당초 업계에선 EU 기업결합심사 신청 대부분이 일반심사에서 승인돼 이번 건도 올해 안으로 심사가 마무리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EU의 기업결합 통계에 따르면 최근 30년간 접수된 7311건(자진 철회 196건 포함) 가운데 92%인 6785건(조건부 313건 포함)의 기업결합이 일반심사에서 승인됐다. 심층심사에서는 191건(조건부 129건 포함)이 승인됐고 33건만 불승인됐다.

    현대중공업그룹 역시 "올해 안에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으나 EU의 심층심사까지 진행되면, 예상보다 합병 작업이 늦어질 확률이 높아졌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12일 EU 공정위원회에 본심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본심사는 1단계인 일반심사와 2단계인 심층심사로 구분된다. 심사는 EU 집행위원회가 담당한다. 일반심사에서 과점 여부 등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지 못했을 경우, 심층심사를 실시하게 된다. EU 집행위원회는 다음달 17일을 1차 심사 마감일로 정했다.

    현재까지 현대중공업그룹은 기업결합 승인 심사를 신청한 6개 지역(한국 공정위·일본·중국·EU·싱가포르·카자흐스탄) 가운데 카자흐스탄에서만 기엽결합 승인을 받은 상태다. 기업결합 승인을 신청한 국가의 경쟁당국에서 승인이 나지 않으면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은 해당 국가에서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

    무엇보다 EU의 기업결합심사는 가장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EU의 경우 조선업 주요 선사들이 위치해 있어 경쟁법이 가장 발달한 기업결합심사의 핵심 국가로 꼽힌다. 현대중공업그룹도 이를 감안해 지난 4월부터 한 발 앞서 EU와 협의에 나선 바 있다. 업계에서도 EU의 합병승인을 얻어내는 것이 가장 어려울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실제로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초 미국 보잉의 브라질 엠브라에르 민수용 항공기 부문 인수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와 프랑스 아틀란틱 조선소 합병, 가장 최근에는 유럽 최대 구리 제련업체인 독일 아우루비스와 벨기에 비철금속 재활용 업체인 메탈로 합병에 대해 심층심사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위원회는 지난 19일 아우루비스와 메탈로의 합병에 대해 심층심사를 개시했다. 위원회 측은 "아우루비스는 비철금속 공급자로 유럽 구리산업의 선두주자며, 메탈로는 비철금속, 특히 구리 고철을 처리하고 정제해 두 회사 모두 대량의 구리를 구입하고 있다"면서 "합병시 가장 큰 구매자와 정제자를 하나로 묶어 구리를 구매하고 정제하는 데 있어서 매우 큰 시장 점유율을 갖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이번 합병으로 실제 혹은 잠재적인 경쟁자들의 경쟁 능력이 제한될지 여부를 추가로 조사할 예정이다. 해당 합병 신청은 지난 10월 14일 신청됐고, 심사 종료 시한은 6개월 뒤인 2020년 4월 3일까지로 정해졌다. 

    앞서 지난달 말에도 위원회는 유럽 대형 크루즈를 제조하는 조선사인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와 프랑스 아틀란틱 조선소 합병에 대해 심층심사에 들어갔다. 양사 합병시 크루즈 점유율이 58%에 달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미국 보잉이 브라질 엠브라에르의 민수용 항공기 부문을 인수·합병하는 경우 건도 이에 앞서 심층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심사 종료 시한은 2020년 2월 2일로 6개월 이후다.

    앞서 심층심사가 개시된 건들을 종합해 봤을 때,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 심층심사가 이뤄질 경우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17일 1차 결론이 나온 이후 6개월 이후인 내년 6월경 최종 승인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 ▲ ⓒ대우조선해양
    ▲ ⓒ대우조선해양
    ◆EU 조건부 승인 가능성 무게… 공정위도 내년에 결론날듯

    EU의 기업결합심사가 길어질 경우, 한국 공정거래위원회 심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혹여 기업결합심사 마지막 단계에서 조건부 승인이 이뤄지면, 다른 경쟁당국과 협의가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EU 심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심사 결과를 감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7월 1일 공정위에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 심사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공정위는 아직까지 자료를 검토 중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심사에 필요한 자료들을 요청해서 받고 있다"면서 "자료들이 다 오면, 검토를 마치고 분석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심사 완료 시기는 예측할 수 없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EU 집행위원회에서는 기업결합을 승인하거나 기각하는 것 외에도 조건부로 승인할 수도 있다. 업계에선 EU가 기업결합 자체를 불승인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LNG선 사업 제외 등을 전제로 한 조건부 승인이 나올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합병 후 선박 수주 잔량 점유율은 20%대로 크게 문제가 없다. 하지만 초대형원유운반선(VLCC)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합병 후 수주 잔량 점유율이 50%를 넘어 EU 집행위가 문제를 삼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 역시 EU 등 주요국 경쟁당국의 심사결과가 나오는 내년 6월경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합병에 대한 심사 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공정위는 지난해 말 세계 2, 3위 산업용가스 회사인 린데 아게와 프렉스에어 아이엔씨의 합병 건을 심사한 결과, 시장경쟁 제한을 우려해 시정조치를 내렸다. 국내 질소 토니지 시장과 국내 질소·벌크·아르곤 시장, 세계 엑시머 레이저가스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 심사도 EU 심사와 비슷한 시기인 내년 6월경 끝날 가능성이 크다"면서 "조건부 승인이 날 경우, 나중에 시정조치와 관련해 회의를 할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현재로선 이에 대해 알 수 없는 상황이라 EU 심사 결과에 우선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