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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이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계약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들의 배상을 놓고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
은행 속내가 복잡한 가운데 배상 결정의 열쇠는 결국 은행 이사회가 쥐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 간 입장도 달라 의견을 조율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이 키코 피해기업 4곳에 대한 분쟁조정을 수용할 경우 앞으로 추가 발생하는 분쟁 자율조정(합의 권고) 문제를 다룰 은행 중심의 협의체를 꾸렸다.
키코 피해기업은 금감원 분조위가 조정결정을 내린 4개 기업 외에도 150여개에 달하며 배상액도 약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키코는 환율에 연계한 파생상품으로 일정 범위 내에서 환율이 움직이면 미리 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아 환차익을 남길 수 있다. 환율의 급격한 하락으로 인해 수출기업들의 손해를 줄일 수 있는 금융상품으로 2007년 이후 한때 각광받았다. 반면 환율 변동 폭이 커지면 손실을 본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환율이 1600원까지 급등하면서 이 상품에 투자한 900여개 기업이 약 3조원의 피해를 입었다.
키코 피해 기업에 배상 권고를 받은 은행(신한·우리·산업·하나·대구·씨티)은 배상 여부에 즉각적 반응 대신 최대한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분쟁조정 결정 기업 외에 금감원이 추정한 자율조정 대상 기업은 150여곳으로 이 기업들까지 추가 배상 할 경우 배상액이 불어나 은행들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 피해기업 배상이 형사상 배임죄에 속하지 않지만 주주를 고려해야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경영상 신뢰와도 직결돼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절차상 은행 내부 이사회에서 배상비율의 적정성 여부를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점도 고민거리다. 이사회가 키코 피해기업 배상이 배임해 해당한다고 반대할 수 있고, 이사회를 통과해도 주주들이 배임문제를 들고 나설 수 있어서다. 결국 공은 이사회에 넘어간 셈이다.
은행 간 입장이 다른 점도 배상 결정이 쉽지 않은 요인중 하나다.
은행권 관계자는 “배상을 권고 받은 은행 간 배상여부에 입장차이가 있는 상황”이라며 “일부 은행이 배상한다고 하면 당국은 이를 바탕으로 다른 은행들에게도 배상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은행 간 의견을 조율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금감원은 향후 양 당사자에게 분조위 결정 내용을 통지해 수락을 권고할 계획이다. 은행과 기업이 20일 이내에 조정안을 수락하면 조정이 성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