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상법 개정, 경제단체 불안감 "경영권 간섭에 방어수단 없어"이해관계 모인 정치적운용 벗어나 전문가 중심 수익창출운용 전환 필요
  • ▲ 지난해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시행령 개정을 통한 기업경영 간섭, 이대로 좋은가' 정책 세미나ⓒ연합뉴스
    ▲ 지난해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시행령 개정을 통한 기업경영 간섭, 이대로 좋은가' 정책 세미나ⓒ연합뉴스
    상법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국민연금이 올 3월 주주총회부터 전방위 기업압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5%룰에서 자유로워진 국민연금이 지난해 도입한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내세워 경영참여 선언을 하지 않고도 주주제안이나 이사해임 청구 등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상법 개정으로 민간기업 이사회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화되면서 정부의 스튜어드십 코드 남용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한국경제연구원 등 경제단체들은 6일 오후 전경련 컨퍼런스 센터에서 '국민연금 독립성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를 열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개회사에서 "이제 우리 기업들은 해외 헤지펀드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의 경영권 간섭까지 받게 됐다"며 "이런 공격을 우리 기업들이 별다른 방어수단 없이 감내해야 한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 원장은 "국민연금 설립 목적이 국민들의 미래소득 보장에 있는 만큼, 정부가 기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최광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일부 기업의 위법 행위는 관련법을 통해 처벌하면 되는데, 정부가 나서서 국민연금을 이용해 기업들을 제재하겠다는 발상은 기금설립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최 전 장관은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제고를 주장하며 '국민연금위원회' 설립 필요성을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민연금위원회는 국민연금에 대한 감독기능만 수행하고, 산하에 기금운용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를 따로 둬 독립성을 확보하자는 제안이다.

    곽관훈 선문대학교 법경찰학과 교수도 "기금의 투자·운용이나 기업경영에 전문적 지식이 부족한 위원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이 정치적 판단에 휘둘릴 수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이 지닌 거버넌스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곽 교수는 "국민연금기금의 투자 판단 및 의결권 행사는 투자전문가에게 맡기고, 현행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이들 전문가들의 의사결정을 관리·감독하는 기능에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민연금 산하 위원회 중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집행역할을 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와 투자정책전문위원회의 법적 설치근거를 문제삼았다.

    최 교수는 "해당 위원회들은 기업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권을 가지는데, 이 설치근거를 상위법이 아닌 시행령에 두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또 국민연금 지역가입자단체에 농어업인, 자영업자, 소비자, 심지어 시민단체들까지 넣는 것도 독립성 확보의 걸림돌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단지 위원회의 구성이 다양하다고 해서 독립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연금이 사법적 심판대에 오르는 것은 그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상철 경총 수석위원도 이해관계자 중심의 현행 기금운용위원회를 전문가 중심으로 시급히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수석위원은 "일본 GPIF, 노르웨이 GPFG, 네덜란드 ABP, 캐나다 CPP 등 세계적 연기금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는 모두 공모나 노사단체 추천을 받은 민간 투자‧금융 전문가들"이라며 "국민연금도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나 수익률 극대화에 매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또 전문가 의사결정으로 국민적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현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본부장은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막강한 자금력으로 국내 주식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기금운영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정치적 이유로 기업 경영이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최 본부장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과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은 이런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며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수단이 거의 없는 현 상황에서는 오히려 국민연금이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 국내 기업과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