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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수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연합뉴스
한일 어업협상 결렬이 장기화하면서 정부가 대만 수역에 갈치 대체어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지만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제관계 전문가는 문재인 정부가 중국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상황에선 대체어장 확보는 요원하다고 지적한다. 해양수산부는 대체어장 확보에 나서기 시작할 때부터 중국의 눈치를 살폈던 것으로 드러났다.
25일 해수부에 따르면 한일 어업협상이 결렬된 지 4년째지만 협상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일 외교가 여전히 냉랭한 가운데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사태까지 겹쳐 교류가 원활하지 못하다. 해수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일본 수산청 담당 국장이 새로 와 서한을 보냈지만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다"며 "(최근) 특별한 교류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대만 수역에 확보하겠다던 갈치 대체어장도 이렇다 할 진척이 없긴 매한가지다. 2017년 10월17~19일 사흘간 대만에서 한-대만 민간어업인단체가 만나 협의체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한 이후로 답보상태다. 제주어선주협회 관계자는 "대만측에서 (추가 논의를 위해) 제주지역 방문을 원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코로나19 상황도 있고 이후로 진척된 내용은 없다"고 전했다.
해수부는 한일 어업협상 결렬로 어민 피해가 커지자 대체어장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당시 김영춘 전 해수부 장관은 "일본과의 협상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며 "대체어장 확보를 위해 대만 측과 접촉하고 있다"고 했었다. 해수부가 검토했던 곳은 중·일 잠정조치수역 인근으로, 북위 25~26도의 대만 연안이다. 이곳은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갈치어장이 형성된다.
우리 측은 대만에서 열린 회의에서 대만 연안에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5개월간 들어가 3000t의 갈치를 잡는 방안을 제시하고, 조업 구역과 기간, 입어 척수, 입어료, 어획 할당량, 통신장비 등 입어 조건을 확인했다. 대만 측은 수산물 수출을 염두에 두고 냉동 수산물의 검사·검역, 수입업자 등록 등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측은 애초 갈치 대체어장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대만 측과의 대화가 순탄했기에 조기에 구체적인 성과가 나올 거로 예상했으나 이후 논의는 2년6개월이 넘도록 지지부진하다. -
- ▲ 취임연설 하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연합뉴스
국제관계 전문가는 우리나라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를 고려할 때 대체어장 확보가 녹록지 않을 거라는 견해다. 한 중국 관련 전문가는 "중국에 맞서 독립노선을 추구하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집권2기를 맞는 등 지금 양안 관계가 최악"이라며 "(한국-대만 민간어업협정이) 쉬운 일은 아니다"고 했다. 그는 "대만은 중국을 자극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와 민간 차원의 협정을 맺으려 할 수 있다. 대만은 일본과는 이미 어업협정을 맺고 있다"면서 "(문제는) 중국이 가만있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대만과의 어업협정이 지지부진한 것과 관련해 "크게 2가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면서 "중국이 우리의 움직임을 알고 못 하게 압력을 넣었거나 우리 정부가 중국 눈치를 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만으로선 완전히 민간 차원에서 (협정이) 이뤄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게런티(보장)하지 않으면 안 하려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들어 해수부는 대만과 물밑 협상을 시도할 때부터 중국의 눈치를 살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해수부 대응을 지켜본 한 어업인은 "당시 (해수부가) 중국 반응을 염려하는 부분이 있어서 관련 내용을 오픈했었다"며 "(해수부는) 대만과 협상에 진척이 있으면 중국도 알게 될 텐데 '민간 차원에서 움직인 것이어서 우린(해수부) 몰랐다'며 정부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중국에) 얘기하기로 가닥을 잡았다"고 전했다. 그는 대만과의 협상에 해수부가 얼마나 적극적이었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적극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중국과의 관계를 핑곗거리 삼아 눈치를 보며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것 같기도 하다. 헷갈린다"고 했다. -
- ▲ 해수부.ⓒ연합뉴스
해수부는 정부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협상을 지원했다는 태도다. 익명을 요구한 해수부 한 소식통은 "당시 외교부에 협조를 구하는 한편 (해수부에서) 서울에 있는 대만 대표부를 찾아가 국장급 인사를 면담하고 대만 어장을 우리가 이용하길 희망하니 현지 담당 부서에 연락을 취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처음부터 중국 눈치를 살폈다는 의견에 대해선 "(우리 정부가) 대만 쪽 문을 두드렸을 때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검토하는 것은 협상의 기본"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 측은 관련 정보가 빠르다"면서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적잖은 갈치를 수입하는데 대만이 황금어장을 우리에게 내주면 갈치를 그만큼 못 팔게 되니 기분 좋을 리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갈치 수입량은 총 1만5658t(5950만 달러)이다. 이 중 중국으로부터 수입량은 1933t으로, 전체의 12.3%를 차지한다. 주요 11개 수입국 중 세네갈(4275t), 베네주엘라(2785t)에 이어 3번째로 많다. 금액으로 따지면 중국은 1100만 달러(18.5%)로, 세네갈(1568만7000달러·26.4%)에 이어 두 번째다. 2018년에는 3366t(1959만2000달러)으로, 세네갈(6647t·2571만2000달러)에 이은 2위 수입국이었다.
소식통은 대체어장 확보가 민간 차원에서 추진하는 협정이지만, 이면을 뒤집어보면 정부 역할이 지대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는 "우리가 본보기로 삼은 일본도 민간단체를 앞세워 매년 4월 협정을 맺는다"면서 "겉으로는 민간 대표자가 서명하는 형식이지만, 실상은 국가 간 (어업협상)이나 진배없다"고 밝혔다. -
- ▲ 갈치.ⓒ연합뉴스
전문가들은 현 정부 들어 중국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을 고려할 때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대만 연안의 대체어장을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가까운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조업이 수년째 막히면서 제주지역 어업인들은 대만 연안 어장 확보가 어렵다면 중국 남부 수역에 들어가 조업할 수 있게 협상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불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어선주협회 관계자는 "해당 수역은 베트남과 필리핀 분쟁지역이고 군사지역도 있어 개방이 어렵다는 게 중국 측 답변이라고 해수부가 전했다"고 했다. 외교적인 문제로 얽히고설켜 일본·중국·대만 수역 모두 갈치 조업이 여의치 않다는 얘기다.
일본 통상 관련 전문가는 "일본-대만 어업협정의 경우 일본 정부가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 주장을 위해 전략적으로 외교에 나선 결과"라며 "한동안 중단됐던 협상을 2012년 재개하고 바로 이듬해 협정을 맺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총리 관저 주도로 적극 협상에 나선 일본 정부가 있다"고 조언했다.
반면 우리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현 정부의 첫 해수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세계 해양강국'을 강조했던 김 전 장관은 대만 갈치 대체어장 확보에 대해 청와대에 보고했느냐는 물음에 "한일 어업협상 결렬과 관련해 (감척, 휴어제 등) 대응방안을 보고할 때 관련 자료에 그런 내용이 포함됐을 순 있으나 따로 보고하진 않았다"면서 "(대만과) 협상을 추진해보겠다는 이야기였다. 성과가 확실하지 않은 일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취임 이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선 대만에 대체어장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브이아이피(VIP)에게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해수부가 진정성 없이 어업인과 국민을 상대로 언론플레이를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
- ▲ 김영춘 전 해수부 장관.ⓒ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