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호실적에도 반도체주 급락, 정점론 재점화전문가 4명 "업황 침체보다 성장률·심리 조정 국면"7월말 빅테크 실적·AI 투자 기조·HBM 물량이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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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 피크아웃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삼성전자가 2분기 시장 기대를 웃도는 실적을 내고도 주가가 급락하면서다. SK하이닉스도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에 힘입어 사상 최대권 실적이 예상되지만 시장은 이미 현재 이익보다 향후 성장 속도 둔화 가능성에 반응하고 있다.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메타의 AI(인공지능) 클라우드 사업 추진과 모건스탠리 보고서다. 메타가 남는 AI 컴퓨팅 자원을 외부에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은 하이퍼스케일러의 인프라가 과잉 구축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으로 번졌다. 여기에 모건스탠리가 반도체주의 추가 상승 여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내면서 반도체 정점론은 시장 전면에 다시 등장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을 실제 업황 둔화 신호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D램·낸드 가격 하락, HBM 주문 축소, 빅테크의 AI 투자 중단, 공급 과잉 등 피크아웃을 뒷받침할 수급 신호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반도체 호황 종료가 아니라 실적 증가율 둔화와 투자심리 조정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가격도 수요도 안 꺾였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잠정 실적으로 매출 171조원, 영업이익 89조4000억원을 제시했다. 영업이익은 시장 컨센서스 85조원 수준을 웃돌았다. 그러나 실적 발표 당일 삼성전자 주가는 급락했고, SK하이닉스도 동반 약세를 보였다. 시장의 질문은 “실적이 나쁘냐”가 아니라 “이 성장 속도가 계속되느냐”로 옮겨갔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지금 시장에서는 피크아웃 조짐이 없다”며 “가격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공급이 많아진 것도 아니며, 빅테크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겠다는 신호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떨어질 것 같다는 주장을 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하반기 가격 조정 가능성에 대해서도 안 전무는 “조정될 만한 모멘텀이 없다”고 했다. 생산 규모가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니고, 수요가 내려갈 가능성이 확인된 것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빅테크 투자는 실적과 관계없이 경쟁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한 곳이 투자를 멈추면 뒤처지는 구조라 생존 게임처럼 투자하는 것”이라고 했다.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 우려도 단기 변수로 보기 어렵다. 안 전무는 “반도체 공장은 뚝딱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며 “가장 빠른 용인 SK하이닉스 공장도 내년 초 생산을 시작한다고 해도 정상 생산까지는 1~2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현재 증설이 실제 공급 부담으로 나타나는 시점은 2029년 이후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도 “현재 반도체 업황 자체를 훼손할 만한 거시경제 둔화 요인은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시장이 작은 변수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는 측면이 있다”며 “반도체 피크론도 업황 악화보다는 투자심리에 따른 해석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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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리 사이클 아닌 AI 사이클”

    이번 호황은 과거 메모리 사이클과 성격이 다르다. 2017년과 2021년 메모리 호황은 범용 D램 가격과 재고 흐름이 중심이었다. 지금은 AI 서버와 HBM 수요가 판을 바꾸고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이번 사이클은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며 “이전에는 범용 D램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HBM이 메인으로 넘어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HBM 수요는 AI 때문에 생긴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메모리 사이클이라기보다 AI 사이클로 봐야 한다”고 했다.

    HBM은 고객 맞춤형 성격이 강하다. 빅테크와 AI 반도체 기업의 수요에 맞춰 장기 계약으로 물량이 정해지는 구조다. 이 교수는 “HBM은 고객이 요청해야 생산하는 주문 생산과 비슷한 성격”이라며 “장기 계약을 통해 물량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과거 범용 D램 사이클과 패턴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짜 피크아웃 여부를 판단할 핵심 지표도 가격보다 물량이라는 게 이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출발점은 결국 AI 수요”라며 “AI 수요가 강해야 AI 반도체 수요가 생기고, 그에 따라 HBM과 D램 수요가 생긴다”고 했다. 이어 “HBM이 꺾인다면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가격보다 물량”이라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빅테크로부터 얼마나 강하게 주문을 받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해석은 나눠볼 필요가 있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중심 사업 구조여서 HBM 수요와 실적 흐름이 비교적 단순하게 연결된다. 반면 삼성전자는 메모리 수익성 개선에도 파운드리 적자, DX 부문의 부품 원가 부담을 함께 봐야 한다. 이 교수는 “삼성은 HBM과 메모리에서 돈을 벌더라도 파운드리 흑자 전환 시점, 완제품 부문의 원가 부담을 같이 봐야 한다”고 했다.

    ◇실적보다 증가율을 보는 시장

    시장 불안의 핵심은 펀더멘털보다 수급과 투자심리다. 변준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반도체 업황과 관련한 펀더멘털에 크게 문제가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반도체 호실적 행진에도 외국인 매도 압력이 지속·강화되는 배경에는 펀더멘털보다 '센티멘트 피크아웃(정점에 이른 뒤 상승세가 둔화하는 것)' 우려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외국인은 연초부터 대체로 매도 우위를 이어왔고, 2분기 들어 매도 압력이 더 강해졌다. 특히 6월 19일부터는 하루도 빠짐없이 순매도를 지속했다. 시장의 호재와 악재에 관계없이 매도세가 이어지면서 반도체주에는 수급 부담이 커졌다.

    변 연구원은 실적 증가율 피크아웃 가능성도 지적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은 하반기와 내년까지 우상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마진이나 실적 증가율은 하락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시장 컨센서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전년 대비 증가율은 올해 2분기,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혹은 3분기가 정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는 실적 악화를 뜻하지 않는다. 이익은 계속 늘 수 있지만, 증가 속도가 올해보다 낮아지면 주가는 먼저 조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과거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증가율이 정점을 보였던 2017년, 2021년, 2024년에는 하반기 외국인 매도 우위가 나타났다.

    다만 이번 사이클을 과거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변 연구원은 “현재 국면은 HBM과 장기공급계약(LTA)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업황 사이클이 전개되고 있어 과거 사이클과 동일하게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봤다. LTA 비중이 커질수록 단가와 실적 안정성이 높아지고, 경기순환 우려도 완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반기 분수령은 미국 빅테크 실적 시즌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파벳, 메타 등 주요 AI 투자 기업들이 설비투자 확대 기조를 유지하는지 여부가 국내 반도체 업황 판단의 핵심 기준이다.

    김양팽 전문연구위원은 “결국 시장을 이끌고 있는 것은 빅테크의 AI 투자”라며 “반도체 시장의 방향성도 빅테크의 투자 기조가 유지되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 연구원도 “7월말 빅테크들의 강한 AI 투자 의지와 긍정적 코멘트가 부각될 경우 주가 흐름과 외국인 수급은 재차 개선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