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지였던 국내 IT산업 구축에 일평생...뛰어난 선견지명에 기술개발 실천 노력 이어와선진국에 30년 뒤쳐진 반도체 산업 '세계 일류'로 성장 밑거름...'애니콜 신화'로 이어져삼성 '디자인 혁명'에 큰 뜻...세계 휩쓴 제품 디자인으로 '굳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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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 회장은 사실상 불모지였던 국내 IT 산업의 바탕을 닦는데 일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회장의 선견지명과 꾸준한 기술개발 실천 노력이 현재 IT 시장을 휩쓰는 한국 기업들의 출발선이었던 셈이다.처음에 삼성이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만해도 아무도 삼성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 20~30년이나 기술수준이 뒤쳐졌는데 이를 따라갈 수나 있겠는가 하는 물음표가 한국 IT산업에 항상 뒤따랐다.이건희 회장이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했을 당시세간에는 'TV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반대의견이 쏟아졌다.지금이야 반도체 하면 '삼성'을 떠올리는 시대가 됐지만, 그 때만 해도 한국반도체 인수는 말도 안되는 공상과 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비판 하기도 했다.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언제까지 그들(미국, 일본)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는가.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겠다"며 자신의 사재를 털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다.이후 선진국 기술을 배워 우리 것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이 회장 본인이 직접 현지를 오가며 경영을 이어온 결과 1986년 7월 삼성은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에서 본격적으로 꽃 피우기 시작했다.삼성은 64메가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데 이어 생산량을 늘리며 시장 점유율도 1위를 기록했다. 기술과 생산 모두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업에 오른 것이다.반도체의 성공은 이후 삼성의 모바일인 '애니콜 신화'로 이어받았다. 신경영 선언 이후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예견하면서 이 같은 성공신화가 지속될 수 있었다.이 회장은 당시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며 "전화기를 중시해야 한다"는 신념을 임직원들에게 심어주고 휴대폰 사업을 삼성의 핵심 사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그러던 지난 1995년 8월 마침내 애니콜은 전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 당시 대한민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이기도 했다.이건희 회장은 뒤이어 2000년 신년사를 통해 21세기 초일류 기업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또 한 번의 계기를 만들었다.이 회장은 "새 천년이 시작되는 올해를 삼성 디지털 경영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제2의 신경영, 제2의 구조조정을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사업구조, 경영 관점과 시스템, 조직 문화 등 경영 전 부문의 디지털화를 힘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보다 먼저 변화의 흐름을 읽고 전략과 기회를 선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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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의 디자인 혁신을 중심으로 소프트웨어가 탄탄한 기업을 만드는데도 첫 획을 그었다. 그는 지난 1996년을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언하고 디자인 경쟁력 강화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이 회장은 "올해를 그룹 전 제품에 대한 '디자인 혁명의 해'로 정하고 우리의 철학과 혼이 깃든 삼성 고유의 디자인 개발에 그룹의 역량을 총집결해 나가도록 하자"고 말하며 새로운 디자인으로 삼성의 새 역사를 써나갔다.그 결과로 지난 2002년 4월에는 혁신적인 디자인의 휴대폰 'SGH-T100'이 출시되며 삼성이 제품력에 이어 디자인으로까지 전 세계를 사로잡는 데 첫 발을 내딛었다.이 제품은 이건희 회장이 개발 단계부터 꼼꼼히 디자인을 살핀 것으로 유명하다. 이 회장이 잡기 쉽게 넓으면서도 가볍고 얇은 디자인을 제안해 만들어진 조가비 형태의 이 휴대폰은 이후 '이건희폰'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출시와 함께 큰 화제가 됐다.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선 1000만 대 판매라는 대기록을 수립한 제품으로 또 한번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이후에도 이건희 회장의 디자인 혁명을 위한 도전은 계속됐다. 2005년에는 세계적 명품과 디자인의 격전지인 밀라노에 주요 사장들을 소집하고 '디자인 전략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삼성의 디자인 경쟁력을 '1.5류'로 평가하며 다시 한번 글로벌 초일류 수준으로 혁신할 것을 주문했다.당시 이 회장은 사장단에 "제품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간은 평균 0.6초"라며 "이 짧은 순간에 고객의 발길을 붙잡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고 알려졌다.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밀라노 4대 디자인 전략'도 발표했다. 독창적 디자인과 UI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디자인 우수인력 확보하는 동시에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 조성하는데 초점을 뒀다. 금형기술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한 투자도 이뤄졌다. 이는 앞선 1996년에 이은 '제2 디자인 혁명' 선언으로 삼성의 디자인 역사에 길이 남게 됐다.이후 삼성의 디자인은 다시 한번 벽을 뛰어넘어 도전에 도전을 거듭했다. 이듬해 출시된 와인잔 형상의 '보르도TV'는 2006년 한 해에만 300만 대가 판매되며 세계 TV시장의 판도를 뒤바꾸기도 했다.이처럼 이건희 회장의 미래 삼성 100년을 위한 무수한 노력과 도전은 결국 오늘날 초일류 기업 삼성을 이끈 동시에 한국이 IT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초석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어느 기업에도 견줄 수 없는 독보적인 디자인 기술을 갖추고 있다는 점 또한 이 회장의 유산으로 남아 전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