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경제단체장들과 간담회 "선제적 투자 중요…규제혁파 검토" 제시'미래차·바이오·시스템반도체' 성장펀드 조성"한국판뉴딜 본격 추진…저탄소신산업 육성할것"새해 경제정책방향서 규제개혁 의지 보여줄지 주목주52시간제 계도기간 연장 외면 등… 말치레 우려도
  • ▲ 경제단체장 간담회.ⓒ연합뉴스
    ▲ 경제단체장 간담회.ⓒ연합뉴스
    정부가 코로나19(우한 폐렴) 위기 극복을 위해 결국 기업에 손을 내미는 모양새를 취했다. 시장 활력을 위해선 기업 투자가 필수적이라 판단하고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해 재정·세제 혜택을 주고 파격적으로 규제를 풀겠다는 태도다. 다만 일각에선 문재인정부의 기업 옥죄기 일변도 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이번에도 립서비스에 그칠 가능성이 없잖다는 의견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경제단체장과 간담회를 열고 내년 경제정책방향 수립과 관련한 방향을 제시하고 의견을 들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한진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이 참석했다.

    홍 부총리는 내년 경제정책방향과 관련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경제 회복·활력 복원, 선도형 경제로 대전환 등을 제시했다. 홍 부총리는 먼저 "미래자동차와 바이오, 시스템 반도체 등 '빅3' 산업의 성장 체감을 위해 펀드 조성 등 재정·금융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협력모델 개발 등 생태계 구축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5G(5세대 이동통신) 확산 가속화와 비대면 산업 활성화, 그린스마트스쿨 건립 등 한국판 뉴딜 사업의 본격 추진을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2050 탄소중립 실현 △규제 혁파 등 민간기업 투자 활성화 △공모 리츠·부동산펀드를 활용한 건설임대주택 공급 활성화 △금융·외환시장 급변동 완화 등 위험 관리도 중요 고민 과제로 꼽았다.

    특히 홍 부총리는 "기업의 선제적인 투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 부담을 줄이고 기업 활력을 되찾는 방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중"이라고 부연했다. 홍 부총리는 "올해 민간·민자·공공 100조원 투자 프로젝트 중 민간기업이 계획했던 25조원 투자목표는 28조원으로 초과 달성했다"면서 "국경 간 이동제한과 봉쇄 등 수출 여건이 어려웠는데도 코로나19 파고를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기업이 고용과 투자, 수출 등의 분야에서 버팀목 역할을 잘해준 게 가장 컸다"고 기업인을 치켜세웠다.
  • ▲ 산업생산.ⓒ연합뉴스
    ▲ 산업생산.ⓒ연합뉴스
    홍 부총리가 K-방역 성과 등 자화자찬 대신 기업인 공로를 인정하고 치켜세운 것은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한국의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로, 기존 9월 전망치(3.1%)보다 0.3%포인트(P) 낮춰잡은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올해는 중국에 이어 코로나19를 선제적으로 겪으면서 우수한 의료진과 국민의 적극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으로 국내총생산(GDP)이 쪼그라드는 것을 최소화했지만 본격적인 회복기에 접어들 내년 이후가 문제라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세계경제 전망치나 OECD 평균 이하가 될 거로 예상되면서 기업 투자확대 없이는 경제회복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기업활동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있어선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면서 "정부의 역할은 민간경제가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건은 정부가 기업의 눈높이에 맞게 규제를 철폐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기업의 규제 개혁 요구는 비단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처음 나온 얘기가 아니다. 경제단체장들은 지난 4월에 열린 간담회에서도 유통·고용·환경 관련 기업규제를 일시 완화해달라고 촉구했었다. 주52시간 근무제 보완을 위한 법안 개정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규제 완화 등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정부는 기업에 고용유지를 촉구했을 뿐 그동안 규제 완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미지수다. 당장 내년부터 50~299인 중소기업에 주52시간제가 확대 적용되지만,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0일 업계의 계도기간 1년 연장 목소리를 외면했다. 정부가 역점 사업으로 제시한 '2050 탄소중립' 실현도 미국 바이든 행정부를 의식한 나머지 철저한 준비 없이 성급하게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탄소배출 제로화를 위해선 필연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손볼 수밖에 없다는 견해다.
  • ▲ 주52시간제.ⓒ연합뉴스
    ▲ 주52시간제.ⓒ연합뉴스
    경영계는 이번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 완화를 촉구했다. 또한 당장은 기업의 기를 살리는 게 중요한 만큼 기업 부담을 늘리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은 코로나19 극복 이후로 미뤄달라고 제안했다.

    경총 손 회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내년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 등이 우리 경제회복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지만, 기업이 체감하는 불확실성은 여전히 크다"고 말했다. 백신이 보급돼도 경제활동이 언제 정상단계로 진입할지 불확실하고, 바이든 정부도 자국산업을 위한 보호무역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글로벌 교역 위축으로 수출 불확실성이 지속될 거라는 견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엔 다국적 기업들이 잃어버린 시장을 회복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펼칠 거라는 게 손 회장 설명이다. 손 회장은 먼저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탄력근로제와 같은 유연근무제를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며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합의한 탄력근로제는 (그대로) 가고 연구·개발(R&D)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도 활용기간을 현재 1개월에서 3개월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범법자 양산을 막기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계도기간을 법 개정 때까지 연장하고 50인 미만 영세기업은 주52시간제 유예를 검토해달라"고 건의했다.

    손 회장은 한국판 뉴딜과 관련해선 소통과 정보 공유를 위해 '민관 협의체'를 구성하고 현장에 필요한 인력양성에도 힘써달라고 주문했다.

    손 회장은 세제개편에 대해선 "적극적인 투자를 위해 경쟁국보다 불리한 상속세를 개선해달라"며 "부의 세습이 아니라 경영의 영속성을 확보할 수 있게 상속세 최고세율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법인세에 대해서도 "국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게 최고세율을 내리고 최저한세제도 폐지해달라"고 요청했다.

    비대면 시대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온라인 영업 규제와 관련해선 "유통산업에 아직 비효율적인 비대면 규제가 있다"며 "형평성 차원에서도 대형 유통업체의 온라인 배송이 의무휴업일과 의무휴업시간에 제한 없이 이뤄지게 조치해달라"고 건의했다.

    손 회장은 끝으로 정책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경제 활력을 위해 기업의 기를 살려달라"며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처럼 기업 부담을 늘리는 정책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한 이후에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