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총리 "환골탈태 혁신 추진…주택공급 역할은 지속"변창흠 장관 "역할 재정립 고민중"…국회에 제도화 요청전문가 "본말전도…투기척결 시스템 만드는 게 핵심""부당 시세차익 엄두도 못 내게 징벌적 페널티 필요"
  • ▲ LH 해체 요구 기자회견하는 신도시 예정지 주민·토지주. ⓒ뉴데일리
    ▲ LH 해체 요구 기자회견하는 신도시 예정지 주민·토지주. ⓒ뉴데일리
    정부 합동조사단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을 1차 조사한 결과 의심사례 7건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LH 해체론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로, LH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조직 해체가 이번 LH 집단 투기 사태의 본질적 해법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징벌적 페널티를 통해 부패를 저지를 엄두를 못 내게 해법을 찾아야지 자칫 조직 개편이 본질을 흐리는 물타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11일 LH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해 국토교통부와 LH 직원에 대해 1차로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LH 직원 20명이 투기를 자행했을 의심이 확인돼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공공개발 업무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수행해야 할 LH가 되레 문재인 정부가 적폐로 몰아왔던 투기세력으로 지목되면서 비대해진 LH를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세균 총리는 이날 브리핑에서 "LH와 임직원은 과연 더이상 기관이 필요한가에 대한 국민적 질타에 답해야 할 것"이라며 "LH에 대한 국민 신뢰는 회복 불능으로 추락했다"고 비판했다.

    정 총리는 LH 혁신 방법을 묻는 말에 "그야말로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를 추진하겠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전문가와 시민사회 의견을 수렴해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LH 외 신도시 개발 업무를 맡을 조직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주택 공급은 LH 혼자 하는 게 아니다. (2·4 부동산 대책 등) 주택공급은 경제부총리를 사령탑으로 해서 범정부적으로 추진한다"며 "LH가 (공급대책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하겠으나 (지금은) 신뢰의 위기에 직면했다. 한편으로 혁신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주택공급 문제에 있어 지속해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앞서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지난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해 "LH의 역할 재정립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변 장관은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LH를 해체해서 서민에 대한 주택공급 기능은 별도 부처를 만들어서 하고 LH는 시행사로 남겨야 한다"고 주장하자 "LH가 지금껏 공공주택의 80%를 공급하며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게 돼 부작용도 많았다"면서 "이번에 공공자가주택이나 주거뉴딜 등 (새로운 형태의 주거복지 제도) 도입으로 LH 역할도 재정립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회가) 제도화를 도와달라"고 했다.
  • ▲ LH 해체 요구 기자회견하는 신도시 예정지 주민·토지주. ⓒ뉴데일리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LH 해체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LH 해체가 이번 사태의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큰 독점기업을 분할하는 것은 독점의 폐해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며 "LH 기능을 풀어 민간에 주면 (부패가) 더 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연구원은 "택지개발 등의 기능을 뽑아서 독립시키자는 의견이 나오는데 그렇게 분리하면 감시할 대상이 줄어드니 관리·감독은 쉬워질 것"이라며 "다만 이번 같은 부패가 근절되진 않을 거다. 증권시장이 좋은 예"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의 경우 강력한 징벌적 배상이 이뤄지지만, 우리나라는 제도가 있어도 실제로는 운용되지 않는다"면서 "건설업계를 봐도 우리나라는 중소건설업체가 많은데 가령 중소업체가 10억원짜리 소송에서 져 법원으로부터 3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으면 해당 업체는 문을 닫아야 한다. 판사들이 징벌적 배상 책임을 잘 묻지 않는 이유다"고 부연했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도 "가칭 주택청이란 걸 만들자는 얘기가 들리는데 (MB정부 때) 붙였던 조직을 다시 떼어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면서 "문제의 본질은 우리 부동산 거래 시장의 투명성이 낮기 때문이다. 시장이 투명하면 시세차익을 얻기가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은 토지를 누가 소유하고 있고 구매자의 이름이나 주소 등이 다 공개된다. 남의 눈이 무서우니 투기가 덜 하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영국, 미국 등도 일반인보다 공직자가 개발정보 등에 접근하기 쉽다"면서 "관건은 부패가 발생했을 때의 징계·처벌 수준이다"고 강조했다. 가령 미국의 경우 이번 LH 같은 사례가 발생하면 시세차익을 볼 수 없게 아예 개발계획을 취소하고 관련자 전원을 즉각 사직시킨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LH 직원들은 미래 이익을 다 계산하고 있을 거다.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사직해도 수십 억원의 차익을 챙길 수 있는데 누가 부패를 저지르지 않겠느냐"면서 "이번 사태의 본질은 공직자의 부패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강력한 처벌로 부패를 저지르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확실히 하는 방향으로 해법을 찾아야지, 조직 해체 후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식으로 접근하면 물타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 ▲ LH 규탄 기자회견.ⓒ연합뉴스
    ▲ LH 규탄 기자회견.ⓒ연합뉴스
    LH는 지난 2009년 한국토지공사(토공)와 대한주택공사(주공)를 묶어 출범했다. 지난해 말 현재 직원 9500여명에 자산 규모 184조원에 달하는 공룡 조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