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백악관 주최 '반도체 CEO 서밋' 참석 후 고민 깊어져현지 투자 최종결정 두고 압박 수위 높아져 협상 불리해질 가능성도움 없는 정부에 삼성 홀로 답 찾기 분주...여전한 사법리스크도 한계점
  • ▲ 반도체 CEO 화상회의에 참석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 반도체 CEO 화상회의에 참석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미국 백악관이 주최한 '반도체 CEO 서밋' 참석 이후 본격적으로 대미(對美) 투자를 고민해야 할 처지에 놓인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 패권다툼 상황을 삼성전자 홀로 맞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삼성전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사법리스크로 총수 부재 상황에서 수십조 원 투자가 걸린 이번 결정을 앞당겨야 하는데 우리 정부 측의 이렇다할 도움도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12일 오후(미국시간)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산업 관련 19개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초청해 '반도체 및 공급망 복원에 관한 CEO 화상회의'열었다. 이날 회의에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주재 아래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깜짝 참석을 결정해 주목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의 참석으로 이날 회의에 무게감이 더해졌다.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공급 문제를 손수 챙길 정도로 중차대한 문제로 부상했다는 점에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삼성전자도 기존보다 더 강도 높은 투자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19개 기업들에게 미국 내 공격적인 투자를 주문했다. 그는 "오늘 내가 여기 참석한 이유는 우리가 어떻게 미국 내 반도체 산업을 강호하고 미국의 공급망을 보장할 것인지를 말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는 결국 기업들이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달렸다"고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 참여를 독촉했다.

    이와 맞물려 이미 많은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선언한 상황이다. 대표적인 곳은 미국 대표 종합반도체기업(IDM) '인텔'로 인텔은 20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신규 팹 2곳을 건설해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혀 업계를 놀라게 했다. 그동안 대규모 사업 정리를 통해 몸집을 줄여오던 인텔이 바이든 정부를 맞아 미국이 현재 가장 아쉬워하는 파운드리 분야에 진출을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글로벌 1위인 대만 TSMC도 최근 12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에 파운드리 공장 신설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바이든 정부 출범과 함께 반도체 산업 육성에 대한 니즈가 강해지는 분위기에 따라 미국 현지에 추가적인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향후 3년 간 추가적으로 1000억 달러를 더 투자해 파운드리 분야에선 독보적인 1위 지위를 이어가겠다는 포부다.

    삼성도 미국 바이든 정부의 이 같은 직접적인 투자 압박 이전부터 미국 반도체 공장 투자를 다각도로 고민해왔다. 현재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추가 공장을 신설하는 방안을 두고 사실상 최종 결정만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삼성은 여기에만 170억 달러(약 20조 원)를 투입할 예정이라 미국 현지 지방정부와의 인센티브 협상 등에서 가장 유리한 조건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화상회의를 통해서는 일단 바이든 정부가 표면적으론 삼성전자에 신속하게 투자 결정을 마무리 지을 것을 압박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 분위기다. 삼성은 이미 트럼프 정부 시절부터 미국 반도체 공장 투자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날로 격해져가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전쟁의 가운데서 좀처럼 마땅한 셈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이처럼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투자 주문에 나서면서 조만간 삼성이 미국 투자를 결정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 ▲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전경 ⓒ삼성전자
    ▲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전경 ⓒ삼성전자
    사실상 최종 결정만을 남겨둔 삼성이지만 속내는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이번처럼 글로벌 정세를 고려한 20조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는 큰 일에 결국은 최종의사결정권자의 부재 상황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수년 간 이어지고 있는 사법 리스크에 갇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들어서는 건강 악화까지 겹쳐 삼성 내부적으론 우환이 깊은 상황인데 외부적으론 대규모 전략적 투자 결정을 앞두고 있어 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 시절부터 고려해온 대미 투자가 계속 지연되고 있는 것도 삼성의 이 같은 내부 사정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의 재수감이 결정되기 전까지 최종 투자 결정을 내리지 못한 삼성이 이번 바이든 정부의 직접적인 투자 압박 상황에 내몰리면서 미국 현지로부터 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어낼 수 있을지에도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삼성에 유리한 투자 조건을 다각도로 살펴보던 중 총수 부재 상황에서 투자 결정이 늦어지면서 결국 바이든 정부의 직접적인 압박까지 받게 됐고 이제는 최종 결정을 앞당겨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협상 측면에선 삼성이 불리해질 수 있는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며 자국 산업 우선주의를 중심으로 고강도 대책 마련에 나선 상황에 삼성이 나홀로 맞서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점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삼성전자의 대미 투자가 글로벌 반도체 패권과 연관된 국제이슈라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자국 기업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마련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산업이 삼성으로 대표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가 지나치게 이를 의식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모양새"라며 "이번 문제는 자국 기업이 국제정세와 맞물려 이해득실이 달라지는 것 뿐만 아니라 반도체 산업계가 달려있는 중차대한 사안인데 너무 당사자에게만 맡겨놓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