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탈선 SRT, 28일 선로 복귀… 코레일 대신 현대로템이 정비제작사 품질보증방식 참여… 조기복귀로 130억 수익·수수료도 아껴'계약·정비 일괄처리' CEO 결단도 한몫… 빠른 서비스로 고객도 이익
  • ▲ 지난 7월 SRT 탈선사고 현장.ⓒ연합뉴스
    ▲ 지난 7월 SRT 탈선사고 현장.ⓒ연합뉴스
    지난 7월1일 부산역을 떠나 서울 수서역으로 가던 SRT 203호(편성번호) 열차가 대전조차장역 인근에서 탈선하는 사고가 났다. 해당 사고열차는 정비를 모두 마치고 오는 28일 정상 영업운행에 투입될 예정이다. 사고열차가 6개월만에 현장에 복귀하는 것이다. 철도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업계 설명으론 복귀 기간은 1년쯤 단축됐다. ㈜에스알(SR)은 SRT 조기 투입으로 130억원쯤의 이익이 예상된다. 빠르고 편한 SRT 추가 편성으로 고객도 이익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사고차량의 초고속 정비와 현장 복귀가 이뤄진 것은 차량 제작사인 현대로템이 직접 SRT 정비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운영사가 차량을 직접 정비하는 구조다. 국유재산법 정비가 이뤄지지 않아 차량정비기지 확보에 어려움이 있는 SR로선 경쟁 관계에 있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정비를 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하지만 올 1월5일 경부선 대전~김천구미역 사이에서 차량 바퀴 파손으로 KTX-산천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국토교통부는 현대로템 등 차량 제작사의 정비 참여를 확대하는 '고속열차 안전관리·신속대응 방안'을 내놨다. 국토부는 앞으로 주력 고속열차가 될 동력분산식 고속열차(EMU-320) 정비에 제작사가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으로 이번 SRT 정비는 제작사 정비 참여의 시범운영 성격이 짙다. SR 관계자는 "사고 발생후 차량을 호남철도차량정비단으로 옮긴 다음 코레일과 협의를 거쳐 현대로템에 정비를 맡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차량 제작사가 품질보증방식으로 직접 정비에 참여하다 보니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났다. 먼저 정비기간이 대폭 단축됐다. 2020년 5월2일 SRT 206호 열차가 코레일 호남정비단에서 신호장치 시험을 위해 시험운전을 하다 차단시설과 부딪치며 탈선 사고가 났다. 당시에도 사고차량 정비는 현대로템이 맡았다. SR이 신속한 복구와 정비 효율성을 고려해 로템에 정비를 의뢰하기로 했고 코레일도 이를 받아들였다. 다만 당시는 제작사 일괄정비방식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이어서 정비에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해당 사고차량은 사고 난 지 1년6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영업선로에 복귀할 수 있었다.

    반면 이번에는 제작사가 책임지고 일괄정비에 나서면서 정비기간이 1년이나 짧아졌다. 보통 SRT 1편성은 1년에 280~300일 운행하며 140억원쯤을 벌어들인다. SR 출범 당시 열차 구매 프로세스의 한계로 말미암아 열차를 운행하든 놀리든 간에 15억원쯤의 차량 임차비용이 발생하므로 이를 제하면 SR로선 정비 기간 단축으로 최소 125억원의 수익이 발생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SR이 원래대로 정비를 코레일에 맡겼다면 일종의 중간유통 수수료를 추가로 떠안았어야 한다. 탈선 사고 특성상 코레일도 차체 프레임 등에 대한 일부 정비를 현대로템에 위탁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14%쯤의 위탁수수료를 SR이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SR이 직접 현대로템과 계약을 맺고 정비에 나서면서 5억6000만원쯤의 수수료를 아낄 수 있게 됐다. 이를 포함하면 SR로선 총 130억원 이상의 이득을 보게 된 셈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SRT 이용객에게도 이익이다. 차량의 현장 복귀가 앞당겨지면서 SRT 서비스를 좀 더 빨리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제작사 정비 참여 확대의 장점은 정비 품질을 보증할 수 있다는 점이다. SR 한 관계자는 "206호 열차의 경우 선로에 복귀한지 1년쯤 돼가는데 이렇다 할 잔고장이 없었다"면서 "코레일도 일반정비는 잘하지만 특수정비의 경우 제작사가 하는게 (품질보증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부연했다. 성능검증만 해도 코레일은 자체기준에 따라 3일 정도만 하지만 현대로템은 차량제작 기준에 따라 2주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 ▲ 사고차량 이송 챙기는 이종국 사장.ⓒSR
    ▲ 사고차량 이송 챙기는 이종국 사장.ⓒSR
    이번 SRT 정비 기간 단축과 빠른 서비스 복귀에는 숨은 요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최고경영자(CEO)의 마인드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이종국 SR 사장은 지난 7월 탈선 사고가 나자 고속차량 혁신추진단(TF)을 꾸리고 사고차량의 신속한 복구정비 모델(패스트 트랙) 제시부터 203호 차량의 현대로템 창원공장 이송, 향후 정비 방안까지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TF의 한 관계자는 "206호 열차의 경우 정비과정에서 제작사 원가용역 등 행정관련 절차에만 6개월을 허비했다"면서 "이번에는 (이 사장이) 적극행정 면책제도를 활용해 정비기간을 단축하도록 결단했다"고 귀띔했다. 어차피 정비에 참여할 국내 제작사가 로템밖에 없는 상황에서 중간 행정절차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계약과 정비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으로 속도를 냈다는 설명이다. 건설공사에서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설계와 시공을 같은 회사가 맡는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 방식을 활용하듯 사고차량 정비에 이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기존 관행대로 일을 처리했다면 1년이나 정비 기간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이번 사례를 계기로 차량 제작사가 품질을 보증하는 방식으로 정비에 참여하는 방안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해외의 경우 열차 제작사가 애프터 마켓(유지·보수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전체의 3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9년 9월 감사원의 '철도안전 관리실태' 감사결과를 보면 고속차량의 경우 차량 정비 부실이 1만6350건, 고장 난 차 영업 888건, 부품 교체·정비주기 미준수 등 수천 건의 안전법·규정 위반사례가 적발됐다.

    한편 SRT 203호 탈선 사고의 원인은 차량의 문제보다는 갑작스러운 고온으로 레일이 엿가락처럼 휘는 '레일 장출' 때문이었던 것으로 사고조사가 마무리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