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이사 없이 사외이사 1명으로 비상경영 돌입정권마다 되풀이되는 낙하산 인사... 수장 잔혹사 관행이사회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 기반, 민영통신사 적임자 절실
  • "겉으로는 최대 통신 기업 수장, 알고 보면 독이 든 성배"

    재계 순위 12위인 KT 대표이사(CEO) 자리를 칭하는 말이다. 50개 계열사에 직원 5만 8000여 명을 이끄는 거대 통신 회사의 이면에는 정치적 외풍(外風)이 끊이질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KT 역대 수장 대부분이 각종 의혹에 휘말려 검찰·경찰 수사를 받으며 불명예 퇴진한 탓이다.

    공기업이었던 KT는 2002년 민영화 이후 CEO가 계속 교체되는 수난을 겪었다. 민영화 초대 사령탑에 오른 이용경 전 사장은 3년의 임기를 마치고 연임 도전에 나섰다가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이후 2005년 KT 수장을 맡은 남중수 전 사장은 연임에는 성공했지만, 납품비리 의혹·뇌물죄로 구속 수감되면서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석채 전 회장도 2009년부터 KT를 이끌며 연임에 성공하지만,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시달리며 2013년 회장직에서 내려왔다. 2014년 취임한 황창규 전 회장은 연임 임기를 채웠지만, 국회의원 '상품권 깡(쪼개기 불법 후원)'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황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구현모 전 대표는 2020년 취임 이후 '디지코' 전략으로 KT의 주가를 끌어올리며 경영 성과를 인정 받았다. 이에 구 전 대표는 연임 도전에 나섰지만, 상품권 깡 의혹 등 사법리스크와 정치권의 압박에 못 이겨 사의를 표명한다. 세 차례의 경선 끝에 내정된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도 현대차 임원 재임 시절 배임 의혹이 불거지면서 끝내 후보직에서 내려왔다.

    20년간 CEO 잔혹사가 반복되면서 KT는 '무늬만 민영통신사'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겉으로는 민영화 기업이지만,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가 요직을 꿰차는 관행이 되풀이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KT가 초유의 수장 부재에 따른 경영 공백 위기에 직면한 것이 예견됐다는 반응이다.

    KT 최대주주와 정치권이 제기하는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는 필요하다. 문제는 감놔라 배놔라 식의 무리한 인사 개입이 KT를 20년간 병들게 했다는 점이다. 이권 카르텔로 꼽히는 이사회를 개편하고, 통신 시장의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 오는 게 당연한 논리다.

    하지만 주인 없는 KT에 맞는 적임자는 과연 있는 것일까. 독이 든 성배를 누가 마시려고 들까. CEO 잔혹사가 반복되는 한 누가 온들 이 고리를 끊기는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KT에 몸담은 고위 관계자는 이같이 말한다. 민영화 기업이 되는 것보다 새 주인을 찾는 게 빠른 방법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