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철근누락 15개지구중 10곳 '설계'가 원인철근 154개 빼먹은 '양주회천' 구조계산누락건설사, 종합심사낙찰제로 '단순시공'만 맡아경실련 "10개지구중 9곳 전관예우 설계사무소"
  • "이번 LH 철근누락사태 진짜원인은 시공이 아닌 설계다. 국토부나 LH도 알고 있지만 굳이 해명해 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나서지 않고 있을 뿐이다. 쉽게 말해 국민 오해를 풀고 싶거든 돈 많은 건설사 너네들이 알아서 하라는 얘기."

    가뜩이나 근래들어 입지가 좁아진 건설업계가 이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철근누락사태로 더 위축됐다. 시공입장에선 혼자 뒤집어 쓰기엔 억울한 면은 있다. 

    국토교통부와 LH가 지난달 31일 공동발표한 '긴급안전점검 결과 미흡현황' 엑셀파일을 보면 15개지구중 10개지구 기둥설치 미흡사유가 △구조계산 미반영 △도면표현 미흡으로 '설계'쪽 원인이 큰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특히 철근 154개를 모두 누락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양주회천A15(임대)' 경우 시공사가 '한신공영㈜'로 알려지자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그러나 결과지를 보면 해당단지 기둥설치 미흡사유는 '구조계산 미반영'으로 '설계'가 도화선이 됐다. 해당단지 한글파일 결과지를 보면 누락원인으로 '구조계산누락(전구간 전단계산누락)'이라고 적시돼 있다. 즉 양주회천A15블록을 설계한 범도시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에 100% 과실이 있다는 얘기다.

    발주처인 LH 관계자도 "철근이 모두 빠진 양주회천 오류는 설계사무소 잘못이 맞다"며 "설계도면을 그리고 거기에 도장을 찍는 순간 설계사 책임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계산은 건축물에 가해지는 외력과 하중을 계산 및 수치화해 철근을 몇 개 넣어야 하는지, 철근굵기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등을 결정하는 과정이다. 고난도기술이 필요한 분야로 구조계산만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구조기술사가 해당업무를 맡아야 한다.

    규모가 큰 설계사무소 경우 건축사와 구조기술사 모두 근무하지만 그렇지 못한 중소설계사무소 경우 대체로 구조설계 전문회사에 하청을 준다. 구조설계사가 구조계산서를 작성해 넘기면 설계사무소가 이를 보고 구조도면을 작성하는 식이다.

    건축업계 한 관계자는 "철근이 한두개 빠졌다면 단순실수로 볼 수 있겠지만 전체가 누락된 것은 구조계산서를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아마 설계사가 구조계산서를 넘겨받아 도면화하는 과정에서 누락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애초에 자질을 갖춘 설계사가 일을 맡았다면 철근누락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주회천A15을 포함해 '설계'가 빌미를 제공한 10개지구는 △충남도청이전도시RH11(DL건설) △파주운정A34(대보건설) △수서역세권 A-3BL(양우종합건설) △수원당수A3(HL디엔아이한라) △오산세교2A6(동문건설) △광주선운2A-2BL(효성중공업) △양산사송A-8BL(대우산업개발) △인천가정2A-1BL(태평양개발) △파주운정3A-23BL(대보건설)이다. 

    다만 나머지 5개지구는 △배근도 이해 및 도면검토 부족으로 설계는 제대로 됐지만 도면대로 공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시공'쪽 사유가 컸다.

    5개지구는 △남양주별내A25(SM삼환기업) △음성금석A2(이수건설) △공주월송A4(남영건설) △아산탕정2-A14(양우종합건설) △양산사송A-2(에이스건설)이다.

    중견건설 A사 관계자는 "구조계산 미반영이나 도면표현 미흡은 설계가 구조계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계산은 했지만 설계도면에 전단보강근 표기를 빠트린 것"이라며 "최근 각종자료나 보도에서 두 가지 경우가 혼재돼 국민에게 건설업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설계대로 시공만 했을 뿐인데 건설사가 마치 철근을 빼돌려 먹은 것처럼 오해를 받고 있어 정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건설업계에 따르면 이번에 철근누락이 발견된 15개지구 경우 종합심사낙찰제(종심제)를 통해 시공사를 선정했다. 이 경우 건설사는 이미 나와있는 설계안대로 시공만 맡게된다. 붕괴사고가 발생했던 인천 검단아파트처럼 건설사가 설계단계부터 관여하는 '시공책임형CM(건설사업관리)' 방식과는 다르다.

    일각에선 설계도면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시공사도 일부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하지만 건설업계는 "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건설사들도 자체설계팀을 두고 있지만 구조계산만큼은 워낙 전문적인 영역이라 세부적인 확인이 어렵다"며 "구조물이 얼만큼 하중을 버틸 수 있는지, 철근굵기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일일이 시뮬레이션을 돌려 확인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잘라 답했다.

    업계에 만연한 전관예우가 화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건축사사무소 한 관계자는 "15개지구 설계사무소 명단을 보면 1~2곳을 제외하고 모두 2022년 기준 업계 매출순위 20위권밖 중소업체"라며 "건축업계에선 규모나 인력이 달리는 중소업체가 공공사업 수주를 싹쓸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이는 LH 등 관출신들이 임원진으로 가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에 따르면 철근누락 원인이 설계로 지목된 10개지구중 전관업체가 참여한 곳은 무려 9개지구에 달했다. '양주회천A15'와 '충남도청이전도시RH11' 2곳 설계를 맡은 범도시건축도 전관예우 의혹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시공사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책임을 진다면 설계사는 왜 있고 구조설계사는 또 왜 있겠느냐"며 "책임소재를 명확히 밝혀 잘못된 정보확산을 막아달라"고 억울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