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 1000兆 웃돌아도… 野 "'이재명표 예산' 지역화폐 지원 확대"李 "재정 확대, 청년 3만원 패스 도입"… 與 "재정만능주의 버려라"국회, 총선 앞두고 포퓰리즘 법안 쏟아내… 재정준칙 논의는 뒷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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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총선을 5개월여 앞둔 시점에 정치권에서 다시 고질적인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고개를 들고 있다. 나랏빚은 1000조 원을 넘어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에서 미래 세대에 대한 부담은 아랑곳없이 당장 눈앞의 표만 얻으면 된다는 망국병이 선거철을 앞두고 다시 번지는 모양새다.

    국회는 3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내년도 경제부처의 예산안 심사에 돌입했다. 경제부처 예산안 심사는 기획재정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토교통부,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등 27개 기관을 대상으로 한다. 이날과 오는 6일 이틀간 진행한다. 7~8일에는 비경제부처 예산안 심사, 9~10일에는 종합 정책질의가 각각 진행될 예정이다. 이어 14일부터는 예산안의 감액·증액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예산소위)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예결위는 모든 일정을 소화한 뒤 오는 30일 전체회의를 열어 내년도 예산안을 심사·의결할 계획이다. 새해 예산안 국회 본회의 처리 법정 시한은 매년 12월 2일이다. 지난해의 경우 법인세 등을 둘러싼 여야 간 갈등에 예산 처리가 늦어지면서 초유의 준예산 편성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었다.

    올해는 벌써 여야가 연구·개발(R&D) 예산과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 삭감 등을 두고 견해차를 보이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R&D 예산안은 올해보다 16.6%(5조1626억 원)가 줄어든 25조9152억 원으로 편성된 상태다. 지역화폐의 경우 내년도 지원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정부는 지역화폐 예산의 경우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재정을 조달해야 한다는 견해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재정건전성 기조에 발맞춰 법정 기한 내 예산안 처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국회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는 건전재정"이라며 "내년 총지출을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2.8%가 증가하도록 편성해 총 23조 원 규모 지출을 구조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R&D·지역화폐 예산 등 '필수 예산'의 총지출을 6% 이상 증액해야 한다는 태도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기자간담회에서 "미래를 대비한 예산이 없다. R&D 예산, 청년 일자리를 비롯한 청년 예산이 대폭 줄었다"며 "기후 위기와 인구구조 변화를 대비한 예산도 담겨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를 비판하며 확장재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먼저 이 대표는 지역화폐 예산 삭감과 관련해 "소득지원과 경제지원 활성화라는 이중 효과가 증명된 지역화폐로 신속히 내수를 회복해야 한다"면서 "예산을 증액하고, 중장기적으로 지역화폐 발행과 지원 사항을 의무화해 '계속 사업'으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지역화폐 예산은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 대표가 2021년부터 줄곧 증액을 주장하는 항목이다. 국민의힘은 이를 '이재명표 예산'이라고 규정한다.

    문제는 지역화폐에 대한 재정 지원 효과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 2020년 내놓은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 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지역화폐의 소비 진작 효과는 크지 않다"고 결론내렸다. 특정 지역의 소비가 늘어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나라 전체로는 소비 증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지역화폐는 소비자가 원래 쓰려고 한 현금을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지역화폐를 쓸 수 있는 업종에만 소비가 몰리게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지역 소비의 역외 유출 차단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가까운 다른 지자체의 지역화폐 발행 경쟁을 유발할 뿐 지역 내 소비에 그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결국 '보조금 효과'로 소상공인 매출이 다소 늘어나는 것 말고는 지역화폐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토대로 기재부는 지역화폐 정책에 혈세를 투입하기에는 사업의 효용성이 크지 않고, 도입한 지역과 미도입한 지역 간 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고 본다.
  •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국회에서 민생경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국회에서 민생경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는 청년층의 교통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청년 3만 원 패스'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독일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등을 고려해 특정 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게 한 '9유로 티켓'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9유로 티켓은 서민의 교통비 부담을 경감하면서 동시에 자가용 이용 수요를 줄여 탄소배출도 줄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미 대중교통비 경감을 위한 유사 정책이 시행 중이거나 도입이 예고된 상태다. 대표적인 게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중교통 공약이었던 '알뜰교통카드'다. 윤 정부는 문 정부의 알뜰교통카드 정책을 폐기하지 않고 취약계층과 청년층에 대한 혜택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보완·확대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여당이 지하철·버스 통합권인 이른바 'K패스'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내년 7월 도입을 목표로 올해 예산안에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K패스는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을 월 21회 이상 이용할 경우 월 60회 지원 한도 내에서 연간 최대 21만6000원을 환급해주겠다는 것이다. 청년층은 연간 최대 32만4000원까지, 저소득층은 연간 최대 57만6000원까지 환급 혜택을 늘렸다.

    국민의힘은 기존 알뜰교통카드의 운영관리비 등 불필요한 낭비 요소를 줄여서 국민이 더 큰 혜택을 볼 수 있게 K패스를 고안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자전거 이용 등에 따른 이용객 불편을 줄였을 뿐 큰 틀에선 알뜰교통카드와 상당 부분 성격이 겹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여기에 민주당까지 숟가락을 얹어 3만 원권 패스를 내놓은 셈이다.

    올 상반기 '천원의 아침밥'을 제공하는 대학을 확대하자거나 학자금 대출 이자 면제 등 국회에서 쏟아져나온 법안도 대표적인 포퓰리즘으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대학생의 아침식사까지 국가가 책임져줘야 하냐는 비판부터, 선택의 문제인 대학 진학에 대한 학자금 대출 이자를 면제해주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에 반해 과도한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한 재정준칙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재정준칙은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하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초과하면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을 2%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으로, 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로 논의 테이블에도 올라가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예산 심사를 앞두고 국회가 포퓰리즘 법안만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일 "현재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고물가 현상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 각국이 펼친 확장 재정 정책에서 비롯됐다"며 "이런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각 국은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국제통화기금(IMF) 등도 긴축재정을 조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화폐 예산 확대 주장에 대해 윤 원내대표는 "현금 살포식 지역화폐 또한 투입 대비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며 "민주당이 재정만능주의와 정략적 예산 증액 기조를 버리지 않는다면 올해 예산심사도 큰 어려움 겪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