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美 소비자물가 3.2%… 韓은 3.8%, 3개월 연속 상승세정부의 'MB식 물가관리' 무용론… '풍선효과·소비위축' 악재 우려미국도 인플레 압력 줄었지만, 소비 위축으로 경기침체론 '솔솔'
  • ▲ 로스앤젤레스의 슈퍼마켓 ⓒ연합뉴스
    ▲ 로스앤젤레스의 슈퍼마켓 ⓒ연합뉴스
    정부가 '관제물가', 'MB물가'라는 비판에도 소비자물가 안정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6년2개월 만에 한·미 물가가 역전하면서 관제물가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은 소비자물가가 3%대 초반을 기록하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줄었다는 평가지만, 고강도 긴축 여파로 소비가 위축하면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어 우리나라도 비슷한 경로를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10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1년 전보다 3.2% 상승했다.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6월 9.1%까지 치솟았다가 올 6월 3.0%까지 하락했지만, 국제유가 급등으로 9월 3.7%까지 반등했었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1년 전보다 4.0% 상승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었지만, 지난 2021년 9월(4.0%) 이후 2년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15일(현지시각) 미 상무부가 발표한 10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전달보다 0.5% 하락하면서 최악의 인플레이션 시기가 지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 생산자물가는 전달 대비 7월 0.6%, 8월 0.8%, 9월 0.4% 오르는 등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가 에너지 가격이 떨어지며 10월 들어 하락 전환했다. PPI는 일정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소비자물가의 선행지표로 통한다.

    지표상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10월 소매판매가 한 달 전보다 0.1% 감소하며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의 소매판매가 줄어든 것은 지난 3월 이후 7개월 만이다. 소매판매는 전달 대비 7월 0.6%, 8월 0.8%, 9월 0.9% 오르며 미국 경제를 든든하게 뒷받침했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줄어든 시기에 소비가 위축돼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소비가 줄어든 것은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이자 부담과 대출 연체가 증가하고, 그동안 가계 경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가계 저축이 소진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 대형 소매업체인 '타깃'은 실적 발표에서 "소비자들은 고금리와 학자금 대출 상환 등 역풍에 직면했다"며 "소비자들이 중첩된 경제적 압박의 무게를 느끼면서 임의 소비재의 판매가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고 밝혔다. 임의 소비재는 자동차나 레저, 여행, 백화점과 같이 경기가 좋아야 소비가 늘어나는 소비재를 뜻한다.

    더 나아가 경기침체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기둔화에도 미국 경제가 성장한 배경은 견조한 고용시장과 탄탄한 소비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제의 큰 축인 소비가 위축되면서 성장동력이 떨어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최근 성장을 견인한 미국 소비가 고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무라증권의 제레미 슈워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금리 인상으로 많은 기업과 가정이 예상치 못한 충격에 더 크게 노출될 위험도 있다"며 내년 경기침체를 예상했다.
  • ▲ 대형마트 ⓒ연합뉴스
    ▲ 대형마트 ⓒ연합뉴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이상기후 등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며 먹거리 물가를 중심으로 고물가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 3.4%, 9월 3.7%, 10월 3.8%로 3개월 연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달 소비자물가를 3.6%로 전망한 것을 고려하면 당분간 고물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애초 정부는 올해 경기를 상저하고로 예상하고 하반기 물가가 안정화하면 정책 역량을 경기 부양에 쏟는다는 계획이었으나 예상이 빗나가고 있다. 국내외 기관도 최근 우리나라 물가 전망치를 줄줄이 높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9일 올해와 내년 물가 전망치를 각각 3.6%와 2.6%로 지난 8월보다 0.1%포인트(p)씩 상향 조정했다. 한국은행도 이달 말 11월 경제전망에서 물가 전망치를 올려잡을 거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 8월 한은이 제시한 올해와 내년 물가 전망치는 각각 3.5%와 2.4%다.

    이에 따라 정부는 농·수·축산물과 가공식품, 외식물가 등 35개 품목에 전담직원을 지정해 매일 가격점검을 하는 등 전방위적인 물가관리에 나선 상태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해 커진 가계 부담이 반도체 수요 회복과 수출 플러스 등으로 서서히 훈풍이 불고 있는 경기의 발목을 잡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의 전방위적인 물가관리 덕에 물가가 안정된다면, 정부로서는 다음 단계인 경기부양을 위한 통화정책 긴축 완화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해소될 쯤, 소비 위축이 심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더구나 원자재 가격 인상 등 업계의 제품가격 인상 요인은 차고 넘치는데, 정부가 억지로 눌러놓은 물가가 결국에는 터지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미 가격은 그대로 놔둔 채 제품 중량을 줄이는 방식의 '슈링크플레이션'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정부의 물가안정 대책이 결국 시차를 두고 최종 소비자가격에 반영되는 시간만 뒤로 미뤄놓은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