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대 최초 양산 발표… "엔비디아에 납품"캐파·수율·성능 모든 측면서 의구심미국 기업들 밀어주기 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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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크론
    D램 시장 3위인 미국 마이크론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앞서 5세대 HBM인 'HBM3E'를 양산한다고 밝히면서 HBM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마이크론이 선수를 쳤지만 생산능력(CAPA)이나 수율, 성능 등에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격차가 있어 올해 HBM 시장 구도에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자국 반도체 기업들을 지원하는 미국 정부가 강력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론은 26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인공지능(AI)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해 업계 최초로 HBM3E 솔루션을 대량 양산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HBM3E는 최신 기술이 적용된 5세대 HBM 제품이다. HBM 제조 3사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이 현재 앞다퉈 양산을 준비하는 상황이었는데, 마이크론이 이날 양산 시작을 알리면서 마이크론이 '업계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마이크론은 8단으로 D램을 쌓아 24기가바이트(Gb) 용량을 구현했다고 밝혔다. 10나노급(1b) 공정을 적용해 첨단 TSV(실리콘 관통 전극) 기술로 적층에 성공했다. 특히 전력 효율이 경쟁사 대비 30%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반도체업계와 금융투자업계에선 HBM 시장에서 갑자기 치고 나온 3위 마이크론에 대해 믿음 보단 의문의 눈빛을 보내는 분위기다. HBM3E 양산을 업계 최초로 성공한 것은 맞지만 업계 최초 양산이라는 타이틀 외에 HBM 산업에서 막강한 경쟁자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넘어설 경쟁력을 갖췄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부정적 의견이 많다.

    업계에선 크게 캐파와 수율, 성능 등 3가지 측면에서 마이크론이 SK와 삼성을 넘어서기 힘들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이 중 마이크론의 가장 결정적인 한계로 꼽히는게 캐파다. 마이크론은 기존 D램 생산능력에 있어서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대비 크게는 절반 수준까지 격차를 보였다. HBM도 뒤늦게 뛰어든 입장이라 기존 D램 대비 캐파를 더 넉넉히 가져갈 여유도 없는 상황이다.

    HBM 1위인 SK하이닉스도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여러 수요처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캐파 한계로 고민이 깊었다. 특히 HBM 캐파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병목구간인 TSV(Through Silicon Via) 라인을 확충하는데 최우선순위를 두고 지난해의 2배 이상으로 캐파 확대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도 올해 HBM 물량을 전년 대비 2.5배 늘리겠다는 목표다.

    증권가에서도 마이크론이 SK하이닉스와 캐파에서만 격차가 1년 가량 발생한다고 본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밸류체인 구축과 투자에 소요되는 시간 등을 감안할 때 올해 말 기준으로 마이크론의 캐파는 최대 월 웨이퍼 30만~40만 장 수준이 될 것"이라며 "SK하이닉스의 경우 올해 말 캐파가 월 110만~120만 장 수준으로 예상돼 격차가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 ▲ 엔비디아 H200 ⓒ엔비디아
    ▲ 엔비디아 H200 ⓒ엔비디아
    그나마 있는 생산라인에서 얼마나 양품이 나오고 있는지를 의미하는 수율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와 함께 '첨단 열압착 비전도성 접착 필름(TC-NCF)' 공정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 기술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인 '매스리플로-몰디드 언더필(MR-MUF)' 공정을 이미 안정화 시킨 SK하이닉스 대비 큰 폭으로 수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TC-NCF 공정에 머무르고 있는 마이크론이 이 공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솔루션을 찾거나 아니면 SK하이닉스가 택하고 있는 MR-MUF로 넘어가야 하는데 두 측면 모두 어려운 상황으로 알고 있다"며 "이 공정으로 수율 문제는 물론이고 제품 성능을 높일 수 있는 한계에 또 다시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에 마이크론이 대규모 양산을 시작했다고 밝힌 HBM3E 제품은 TC-NCF 공정으로 8단(8H)을 쌓아올린 것으로 보인다. 8단 이상 단수가 증가하는 공정에선 HBM 두께가 커지면서 발열 제어가 어려워진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게다가 칩 두께가 얇아지며 발생하는 휘어짐 현상에도 취약해 성능 측면으로도 SK하이닉스가 적용하고 있는 MR-MUF를 넘어서기 힘들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마이크론과 마찬가지로 TC-NCF 공정을 채택하고 있는 삼성도 이번에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어드밴스드 TC-NCF'를 선보여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마이크론이 HBM3E 최초 양산을 선언한 날 36Gb 12단 HBM3E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히며 맞불을 놨다.

    이날 삼성전자가 공개한 기술에 따르면 단수가 12단으로 높아졌지만 8단 제품과 동일한 높이로 구현할 수 있었던 비결로 삼성 자체 기술인 어드밴스드 TC-NCF 공정이 꼽힌다. 마이크론처럼 기존 TC-NCF를 적용해서는 차세대 HBM 시장에서 품질로 승산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기술 개발에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마이크론이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에 비해 여러 열세에 놓인 것은 명확해 보이지만 미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에 힘을 실어주는 전략을 이어나가면 HBM 시장 판도가 충분히 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무시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번에 마이크론이 HBM3E 양산 시작을 알리면서 또 하나 강조했던 부분이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맞았다"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HBM 시장 최대 고객이자 AI 반도체 시장을 주무르는 큰 손이다. 미국 기업인 엔비디아를 미국 정부가 적극 활용하려고 나서면서 HBM 공급사로 마이크론이 수혜를 볼 가능성이 제기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HBM 공급을 위해 엔비디아 측에 샘플 단계를 면밀히 거쳐야 하는 반면 미국 기업인 마이크론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엔비디아 공급망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기술력이나 생산능력이 한참 떨어지더라도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확보해 빠르게 추격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면 안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