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달리오 "中, '日 잃어버린 30년' 초입 때와 닮았다"글로벌 주요 금융기관, 中 성장률 5% 미만 하향 조정 對中 의존도 높은 韓… "수출 다변화 전략 수립 필요"
  • ▲ 베이징 인민은행 본사. 171229 AP/뉴시스. ⓒ뉴시스
    ▲ 베이징 인민은행 본사. 171229 AP/뉴시스. ⓒ뉴시스

    세계 경제 성장의 주축이었던 중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과 부동산 시장의 붕괴, 내수 침체 등으로 최근 발표된 경제지표가 저조하면서 잃어버린 30년의 초입에 섰던 일본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가 전방위적인 경기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체질 개선 없이 단순 돈 풀기만으로는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불투명하다는 시각이다. 중국의 경기 부진이 장기화할 경우 주변 국가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우리 정부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5일 외신 등에 따르면 '헤지 펀드' 대부로 통하는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설립자 레이 달리오는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1990년 일본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며 중국 경제를 잃어버린 30년의 초입에 섰던 일본과 비교했다.

    그는 중국 부동산 등 자산 가격 하락, 고용 및 임금 감소 등을 언급하면서 "중국의 많은 기업과 지방정부가 부채 문제를 겪고 있으며,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뉴욕타임스도 최근 부동산 경제의 붕괴와 소비 지출 감소로 중국 경제가 40년 전 개방 경제로 돌아선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부동산 붕괴로 인해 소비자들은 조심스러워졌고, 기업들도 경계심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중국에서 스스로 과거에 비해 부유해졌다고 느끼는 사람의 비율이 10년 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2014년에 실시한 관련 설문조사에서 77%로 최고를 기록했던 이 비율은 지난해 39%로 반으로 줄었다.

    글로벌 투자은행을 비롯한 금융 기관들도 최근 잇따라 중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5% 미만으로 하향 조정하고 있다. 재정이나 통화 정책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은 모습이며, 부동산과 내수 침체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따르면, 지난 4일(현지시간) 중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예상치를 기존 5%에서 4.8%로 낮췄다. 골드만삭스, JP모건, UBS, 노무라홀딩스 등도 중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5% 미만으로 하향 조정했다.

  • ▲ 중국 위안화 ⓒ뉴시스
    ▲ 중국 위안화 ⓒ뉴시스

    경제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중국 정부는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대대적인 금융완화 조치를 통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한 것이다. 판궁성 중국인민은행장은 24일(현지시간) 국무원 신문판공실 주최로 열린 금융당국 합동 기자회견에서 "조만간 지준율을 0.5%포인트(p) 낮춰 금융시장에 장기 유동성 1조위안(약 189조4000억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역환매조건부채권 금리 0.2%포인트 인하, 주택담보대출 금리 0.5%포인트 인하, 2주택 주담대 최소 계약금 비율 인하, 부동산 개발업체 자금 지원책 연장, 미분양 주택 재대출 출자 확대 등 경기 부양책을 대거 발표했다.

    이는 침체에 빠진 경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중국의 지난달 생산자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1.8% 떨어지며 23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6년 이후 최장 기간이다. 올해 경제 성장률도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5.3%로 비교적 높았지만, 2분기에는 4.7%로 떨어졌다.

    문제는 중국의 경제 침체가 세계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경제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상품 가격 하락과 수요 감소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핵심 공급망에서 중국산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우려는 크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중국 공급망 의존도는 핵심 원자재 등을 중심으로 19%로 태국, 미국, 싱가포르 등 주요국(평균 9%)의 2배를 상회한다.

    여기에다 우리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출에도 불확실성을 키운다. 중국은 우리나라 최대 수출국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누적 대중국 수출은 862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6.9% 성장했다. 한때 미국에 1위를 넘겨줬지만, 다시 부동의 1위 자리를 되찾으며 대중 수출 의존도에 변함이 없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경기 침체에 빠지면 우리 경제도 휘청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 성장률만 보더라도 1.4%로 외환위기, 금융위기, 코로나19 등 심각한 경제 위기 때를 빼곤 가장 낮았다. 세계 1위 경제 대국 미국(2.7%), ‘잃어버린 30년’의 일본(2.0%)보다 낮은 데는 중국 등 특정국가에 지나치게 편중된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크게 작용했다.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해 중국의 경기 부진은 더욱 악화하고, 미국 대선 정국에 갈피를 못잡는 동맹국 정책 혼조로 우리나라의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차이나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기술 혁신에 매진하고 시장 다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한정민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중국 경제 성장 둔화 및 수입 구조 변화, 제조업 해외 현지 생산 확대 등은 구조적 요인으로 단기간에 이를 개선하고 대응하기 어려운 과제"라며, "한국은 수출 주도형 성장 국가로서 향후 수출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구조적 요인들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대내적으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세계 교역 구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한 수출 시장의 다변화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