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세와 중동 악재로 '강달러' 지속… 환율 1400원대 육박대외 악재 차곡차곡 쌓이는데도 대내 리스크 오히려 늘어나 '강달러' 대응 서둘러야… "쓰나미 외면 땐 제2의 외환위기"
  • ▲ 100달러 지폐 ⓒ연합뉴스
    ▲ 100달러 지폐 ⓒ연합뉴스
    최근 미국 정세와 중동 악재 등이 겹치며 '강달러'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고환율 기조가 강해지면 외환이 빠져나가거나 통화정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선제적으로 우리 경제의 안전벨트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29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최근 원·달러 환율은 1380원 초·중반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며 1400원에 근접하고 있다. 전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 종가 대비 1390.5원에 개장한 후 장 중 한때 1391.5원까지 찍었다. 이는 지난 7월3일(1391.9원) 이후 약 4개월 만에 기록한 최고치다. 

    고환율을 부추기는 변수는 많다. 미국 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기대감이 커지면서 달러 수요 확대 여지가 강화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재정지출 확대를 위한 대규모 국채 발행, 보호무역주의를 위한 관세 부과 등에 강화될 거란 예상 때문이다.

    미국 경제 지표가 견조하다는 점도 달러 강세를 자극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수 활성화를 위한 추가 금리 인하를 시행할 확률이 낮아지자 미국에 대한 투자 회수 가능성 역시 줄어들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분쟁을 비롯한 중동 악재도 강달러에 힘을 싣고 있다. 최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참패도 일본 정치의 불확실성을 키우며 달러 강세에 일조하고, 한국 경제의 버팀목으로 꼽혀온 수출마저 주춤하면서 강달러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당국은 환율이 급격히 높아지면 외환이 빠져나가거나 통화정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 일본 연립 여당의 과반 확보 실패, 북한의 러시아 파병 등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최소한 국내 리스크라도 하나씩 제거해야 할 판국에 오히려 더 늘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힘들여 구축한 '외한 방파제'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세수 결손을 메우기 위해 전날 외국환평형기금 4조~6조원 규모의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 향하는 예탁금을 일부 축소하는 방식을 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외평기금과 관련해 기금 운용 계획을 변경하는 것을 현재 단계에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는데 한 달 만에 말을 뒤집으며 '외환 방파제' 역할을 하는 외평기금을 2년째 끌어다 쓰게 된 것이다.

    또 의존도가 높은 대중(對中) 수출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도 높아지고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계부채 문제도 원화 약세의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달부터 가계대출 증가세가 다소 둔화됐으나 아직 심각한 수준인 만큼 금융안정을 위한 조치가 시급한 상황이다. 

    대내외 악재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강달러발 쓰나미가 휩쓸고 갈 우려가 높은데도 안전 방파제를 더 높이는 커녕 외환기금으로 펑크난 세수를 메우는 등 오히려 방파제를 허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치권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고환율, 내수 침체 등 풍전등화 위기엔데도 반시장적, 현금 퍼주기식 정책만 남발하고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송영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환율의 상승 또는 하락이 반복되는 변동성이 심화되거나, 장기간 강(强)달러 기조가 지속될 경우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근과 같은 고환율 시기에는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수입기업의 수입 비용 상승 압력을 낮춰 원화 가치 하락이 기업의 교역 활동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달러 국면이 장기화할수록 우리나라의 내수가 위축될 거란 점은 가장 큰 문제다.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그만큼 수입 물가가 올라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기업들이 원자재와 부품 가격 상승에 대응해 생산비용 절감에 집중하면서 투자를 줄일 공산이 크다.

    과거에는 고환율이 수출에 유리하다고 봤지만 수입한 중간재를 이용해 최종 제품을 만들어 파는 수출 구조상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고환율이 유리하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원화 약세가 국내 기업들의 영업이익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하면서도 대기업의 경우 원화 값이 10% 떨어질 때 영업이익률은 오히려 0.29%포인트(p)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환율에 취약한 우리로선 선제적인 사업 구조 개편과 정책 전환으로 '강달러' 대응에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지적이 경제 안팎에서 제기된다. 고환율이 고착화되면 외환 유출 등 경제 펀더멘탈을 크게 약화시킬뿐 아니라 저소비-저금리-저성장 기조 속 구조적인 장기침체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선임급 연구원은 현 경제 상황에 대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 일본 연립 여당의 과반 확보 실패 등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서 한국경제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지만 불확실성을 제거하기는커녕 리스크만 계속 늘리는 상황"이라며 "강달러 쓰나미를 외면하면 제2의 외환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