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 국비지원 요청… 구체적 산출 근거 미제시참사 8일 만에 건립 발표… 세월호참사 4년과 대비야당 내부서도 반발… 정치적 도구 활용 가능성도
  • ▲ 브리핑하는 김영록 전남지사 ⓒ연합뉴스
    ▲ 브리핑하는 김영록 전남지사 ⓒ연합뉴스
    '무안공항 참사'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 전라남도가 사고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정치권과 지역사회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고 원인 조사와 항공 안전 대책이 우선인데 전남도지사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마저 본말이 전도된 관 주도의 일방적 추진이라고 비판에 나섰다. 

    10일 지역관가 등에 따르면 최근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무안공항 인근에 460억원을 투입해 약 7만㎡ 규모의 추모공원을 세우겠다고 밝혔고, 이에 비용 산출과 발표 시점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김 지사는 지난 6일 전남도청 브리핑룸에서 "'제주항공 참사'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며 "공원 조성에 필요한 예산은 국비 지원을 건의하고, 일부는 지방비로 충당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일에도 김 지사는 무안공항 분향소를 찾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추모시설 건립 등을 담은 특별법 제정을 요청한 바 있다.

    전남이 추모공원 조성 계획을 밝히자, 우선 해당 비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남도는 특별법이 제정되면 국비 460억원을 투입해 무안공항 인근에 7만㎡ 규모의 추모공원을 조성하고 추모탑과 유가족을 위로하는 숲과 정원, 방문객 센터를 조성할 예정이다. 특별법에는 사고 배상금, 위로 지원금, 손실 보상금 등의 근거가 포함될 예정이며, 심리 상담과 치료를 위한 트라우마센터 설치도 계획하고 있다. 다만 전남도가 사업비로 제시한 460억원의 예산 확보 여부와 활용 적절성, 구체적인 산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발표 시기의 적절성도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김 도지사가 추모공원 건립을 밝힌 것은 참사가 발생한 지 8일만인데, 경기도 안산시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봉안시설을 조성하기로 결정한 시기가 사고가 난 지 4년가량 이후라는 것과 크게 차이 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같은 문제에 야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은 9일 '전남도 발표 460억원 추모공원 조성보다 참사 원인 등 진상 규명과 전남도 내 공항 안전 강화대책 수립이 최우선돼야'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전남도의 무안공항 추모 공원 조성 추진계획은 본말이 뒤바뀐 관 주도의 일방적 추진계획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남도당은 "이를 기리는 추모 공간은 필요하지만 제대로 된 참사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충분한 피해자 배상과 지원 등 시급한 문제를 해결한 뒤에 추진하는 것이 순서"라며 "실질적 위로와 재발 방지 대책보다는 거대한 시설물과 구체적 계획 없는 예산이 추정된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희생자나 지역사회의 공감대 없이 관 주도로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고 이 경우 추모공원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야당조차 추모공원의 적절성과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던 것이다. 다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추모공원 조성이 이재명 대표가 직접 김 지사에게 검토해 달라는 중앙당 차원의 합의된 사업이란 게 뒤늦게 알려지면서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 ▲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착륙 중이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항행 안전시설에 부딪히면서 탑승자 대부분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지난달 29일 오후 사고현장에서 소방 당국이 수습작업을 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착륙 중이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항행 안전시설에 부딪히면서 탑승자 대부분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지난달 29일 오후 사고현장에서 소방 당국이 수습작업을 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다수의 온라인 네티즌도 추모공원 조성에 대해 사업 시급성과 우선순위 면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들은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이 우선돼야 하는 것이고, 그 후에 추모공원보다는 추모비를 세움이 어떠한가 싶다", "460억원이 적은금액은 아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집행하면 좋을 듯 하다", "진상규명과 책임자를 처벌하라. 국민 세금이 쌈짓돈이냐", "그 비용 안에서 공항을 보수하고 더 안전하게 하는 데 집중하시는 게 전 국민들한테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것이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특별법 제정이 정치적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우려 요소로 꼽힌다. 애초에 무안공항은 '정치 공항' 논란이 이어져 왔던 곳이다. 지난 1999년 IMF 외환위기로 항공수요가 불확실하던 시기에도 거점 국제공항이란 명목으로 졸속 추진됐다. 이에 당시 실세 정치인의 지역구라는 이유로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번졌다.

    이번 추모공원 건립도 희생자 추모를 넘어 무안공항 활성화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문제점으로 꼽힌다. 여기에 대형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추모공원 건립에 대한 실효성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것도 부정적인 요소다. 시간이 지날수록 방문객 감소와 관리 부족으로 사실상 방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참사가 발생하면 이후에 진상 규명과 책임을 묻고 향후 안전대책을 수립하는 게 우선"이라며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당사자가 추모공원부터 설립한다고 한다면 비판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이 될 수 있다. 이는 진정으로 피해자를 위한 길도 아니고 공정한 행정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