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거부권에 "직 걸고 반대" … 이복현 '월권 논란'정치권·재계·학계 "검사 버릇 못 버리고 두목질" 일제히 비판정치 입문 노린 무리수? … 여권서 "직 내려놓고 물러나라"
  •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이종현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이종현 기자
    "주제를 모르고 금융권 절대군주 노릇을 하고 있는데, 직을 걸고 반대하겠다고 했으니 이참에 직을 내려두고 그대로 물러나면 된다."

    정치권과 금융권 등 각계각층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에 대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이 원장이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의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 가능성에 "직을 걸고 반대하겠다"고 선언하면서다.

    ◇재의요구권, 대통령 고유권한인데 … "직 걸고 반대" 논란

    비판의 가장 큰 이유는 금감원의 본질적 업무를 고려할 때 상법 개정 논쟁에 뛰어들 만한 위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원장이 수장으로 있는 금감원은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 업무를 담당할 뿐, 상법을 다루는 소관부처가 아니다. 그동안 민간 금융회사 CEO(최고경영자)에 대한 사퇴 압박부터 임기 관여 등 이 원장의 행보를 두고 '무소불위'라는 비판이 거셌다.

    이처럼 '금융권 대통령'으로 군림하던 이 원장의 상법 개정안 거부권 반대 선언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재의요구권'에도 훈수를 두는 모습으로 비쳤다. 업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과도한 월권 행위'라는 논란이 잇따르는 이유다.

    정치권과 재계에선 이 원장의 발언을 두고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전형이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오는 6월5일 임기 만료를 3개월 여 앞두고 정치입문을 노린 무리수라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민주당에 자리를 약속받지 않고서야 나올 수 있는 발언인지 의문이 든다"며 "직을 걸고 반대할 게 아니라 직을 내려놓고 그대로 물러나면 된다"고 날을 세웠다. 

    게다가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이 원장의 이해도에 대한 업계의 의구심도 크다. 이 원장은 민주당 개정안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단서는 달았지만, 재계가 반대하는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野 개정안, 기업경영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는데 … "李 이해도 의심"

    상법 개정 민주당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재계는 대주주의 권리 침해, 줄소송 등을 가능케 해 기업을 투기자본의 공격에 상시 노출시키는 '악법'이라고 한숨짓고 있다. 학계에선 전형적인 '공산주의식' 발상이란 비판마저 일고 있다.

    그럼에도 이 원장은 "주주 가치 제고 노력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의사 결정을 한다는 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등 재의요구권에는 강경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겸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80년대에 '매판자본'을 떠들어댔던 민주당 세력이 공산주의 발상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독소 조항을 잔뜩 포함한 악법"이라며 "기업과 경제 발전은커녕 도리어 해외자본, 투기자본에 기업을 넘겨주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경영이 흔들리면 기업의 해외 유출이 가속화 되고, 국내에는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기업들은 상법 개정안의 본질적 위험성을 이 원장이 인지하고 있는지를 의심한다. 경영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투자심리, 신사업 진출 등을 위축시킬 수 있는 법안인 데다, 이 원장이 추진하는 핵심 과제와도 충돌한다는 것이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원장이 그토록 강조했던 '상생금융'은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상생금융' 압박에 기업이 소상공인을 위한 금리 감면 정책을 따른다고 할 때, 극단적인 예로 주주들이 '배임'이라며 충분히 소송을 걸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 한계 … '정치입문' 노린 무리수 지적도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이 원장이 정부·여당의 '원 보이스(한목소리)'를 무너뜨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금융계 현실에 둔감할 수밖에 없는 검사 출신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도 거론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의원총회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국무위원도 아닌 금감원장이 소관 법률도 아닌 것에 대해 그렇게 발언한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검사 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던 그 습관"이라고 꼬집었다.

    상법 개정 논란을 계기로 업계에선 그동안 규제 일변도로 일관한 이 원장의 감독행정과 오락가락 행보도 회자된다. 금융권의 혼란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다.

    그는 지난해 가계대출 관리와 관련, 수차례 입장을 번복했다. 이 과정에서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실수요자와 은행에 모두 영향을 미친 사례는 대표적이다.

    이 원장은 은행권의 대출 억제를 주문했다가 금리가 인상되자 은행권을 비난하는 데 열을 올렸다. 은행권이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 원장의 비난을 들은 은행이 울며겨자먹기로 대출 제한 등 자체 규제를 강화하자 이번엔 실수요자들의 대출이 어려워지는 등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이 원장은 가계대출 시장에 혼선을 빚은 데 대해 "죄송하다"며 공식 사과했다.

    이 원장이 추진한 각종 검사 및 점검도 무리였다는 말이 많다. 2019년 라임 펀드 특혜 환매 의혹이 대표적이다.

    금감원은 2023년 8월 보도자료를 통해 라임운용의 대규모 환매 중단 직전 '특혜성 환매'가 있었고 '민주당의 다선 의원'이 연루됐다고 지목했다. 하지만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지난해 해당 의원에 대한 환매가 특혜성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우회전 깜빡이 켠 채 좌회전만" … 시장 자율성 침해 논란

    최근 들어 강도가 높아지는 이 원장의 제왕적 행태도 구설에 올랐다. 이 원장은 지난달 말 보험회사 CEO를 한 자리에 불러 "무관용 원칙" 엄포를 놨다. 업계에선 "임기가 3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절대군주로서 건재함을 과시하는 데 여념이 없다"는 뒷말까지 나왔다.

    비슷한 시기 발표한 경영인정기보험에 관한 점검 결과에 대해서도 불만이 작지 않다. 금감원이 보험업계에 상품 판매 금지 등을 한 것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이 원장의 행보를 "금융권 계엄"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우파 정부에서 금감원장을 맡은 이 원장이 시장 가치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원장은 임기 내내 우회전 깜빡이를 킨 채 좌회전만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