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10분 컷·농협 2시간 완판 … 고령층·지방은 가입 기회조차 부족5대 은행 5년간 점포 700곳 폐쇄 … 지방 거주자들 접근성 하락 2차분 출시 앞두고 '오프라인 쿼터제' 등 필요하다는 지적
  • ▲ 노인들 모습 ⓒ 연합뉴스
    ▲ 노인들 모습 ⓒ 연합뉴스
    "은행에 나가려면 시내까지 한참을 가야 해요. 가까운 농협에 갔더니 지역농협이라 펀드는 안 판다네요. 할아버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시내 은행에 같이 가봤더니 이미 다 팔렸다네요."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에 거주하는 80대 A씨는 최근 출시된 '국민성장펀드' 가입에 실패했다며 하소연을 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한 모바일 가입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A씨에게 오프라인 창구 방문은 유일한 선택지였다. 

    A씨는 "유일하게 갖고 있는 계좌가 농협인데, 동네에는 지역농협밖에 없어 차가 없으면 살 수조차 없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둔포면 농협 본점에 문의한 결과 "펀드 가입을 위해서는 온양점까지 나가야 하며, 온양점 역시 22일 당일 오전에 이미 완판돼 늦게 오신 분들은 가입이 어려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방에 가장 영업점이 많다는 NH농협은행마저 시 내에는 4곳에 불과했고, A씨의 자택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은 대중교통으로 1시간 30분이나 떨어져 있었다. 거동이 불편하고 정보력이 떨어지는 지방 노인들에게 국민성장펀드는 사실상 접근 자체가 쉽지 않은 구조였던 셈이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에 배정된 국민참여성장펀드 모바일 물량은 개시 10분 만에 동이 났고, 오프라인 물량 역시 우리은행(6000억원)을 제외하면 당일 오전에 모두 완판됐다. 지방 영업점이 가장 많은 NH농협은행 역시 온·오프라인 물량이 단 2시간 만에 완판됐다. 판매 물량이 오전 중으로 조기 마감되면서 금융당국과 판매사들은 '흥행 대성공'이라며 축포를 쏘아 올렸지만, 모바일 기기 활용에 취약하고 은행 접근성이 떨어지는 고령층과 장애인 등 금융 소외계층은 가입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수도권의 경우 곳곳에 시중은행 지점이 포진해 있어 '오픈런'이 가능했지만, 지방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시중은행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점포를 대거 축소하면서 물리적인 금융 접근성이 크게 악화했기 때문이다. 실제 5대 시중은행의 전국 영업점은 최근 1년 새 100여 개, 5년 새 700여 곳이나 자취를 감췄고 지금도 매달 통폐합이 진행 중이다. 

    실제로 A씨가 거주 중인 둔포면에는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등 대형 시중은행의 영업점이 한 곳도 없었다. 36만명의 인구를 보유한 아산시는 충청남도의 8개 시 중 두번 째로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중소도시에서조차 창구 접근이 어려웠던 만큼, 인프라가 더 열악한 소규모 지자체의 상황은 더욱 열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방 소도시와 읍·면 단위 고령층의 금융 방어선 역할을 해온 새마을금고, 신협, 수협 등 상호금융권이 이번 정책 펀드 판매를 하지 못한 점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들은 지역 구석구석에 점포를 두고 있어 어르신들의 접근성이 뛰어나지만, 현행 자본시장법상 투자중개업 인가가 없어 펀드 판매 자격 자체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야심 차게 선보인 국민성장펀드가 조기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금융 양극화'와 '접근성 차별'이라는 씁쓸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국민 모두를 위한 정책 펀드였지만 실제 가입 기회는 균등하지 않았다. 정보력과 금융 접근성에 따라 청약 가능 여부가 갈리면서 사실상 출발선부터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비대면 가입자와 대중교통에 의존해야 하는 고령층을 동일한 '선착순 출발선'에 세운 정책 설계의 한계는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하반기 중 국민성장펀드 2차분 출시를 준비 중"이라고 밝힌 가운데, 정부의 사후 대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2차 판매 때는 소외계층을 위한 정교한 핀셋 보완책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하루 총량 제한, 오프라인 전용 물량 할당, 사전 예약제 도입 등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실효성 있는 장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