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초강경 관세에 대기업 신규 공장 줄줄이 美로제조업 엑소더스에 국내 양질의 일자리는 사라져이재명, 이런 상황서 더 독해진 '상법 개정안' 재추진집중투표 활성화·감사위원 분리 선출까지 포함통상환경 급변에 기업 해외 현지 투자 늘어나공장·인력·기술 해외 빠져나가는 공동화 가속 우려
  •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210억달러 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210억달러 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적자 해결과 미국의 제조업 활성화를 명분 삼아 관세를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면서 국내 제조업 생산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조 바이든 정부 때부터 보조금 인센티브를 고리로 글로벌 대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유인하는 정책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까지 맞물리면서 기업들을 빠르게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생산 시설을 옮기려는 국내 제조업체들이 늘어나면서 한국 내 제조업 공동화로 인한 산업 경쟁력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상당수 대기업들이 신규 공장 시설을 미국에 짓기 시작하면서 양질의 국내 일자리가 '사막화'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이재명 전 대표가 종전보다 훨씬 강경한 반기업적 상법 개정안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기업들의 '탈(脫) 대한민국' 현상을 외려 부채질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2일 정치권과 관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들이 어려운 국내 경영 환경에 트럼프 관세 폭탄까지 더해지자 해외 생산기지 건설에 눈을 돌리면서 국내 산업 공동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욱이 이 전 대표가 강경 상법 개정안을 재추진 방침을 밝히자 재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돌아온 뒤 재의결에 실패해 폐기된 바 있다. 

    이 전 대표는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이사도 선임될 수 있도록 집중투표제를 활성화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도 단계적으로 확대해 경영 감시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기존 상법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았던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까지 꺼내든 것이다. 

    이와 관련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상법 개정이 이뤄지면 일상적 영업활동까지 전부 소송 대상이 되고, 배임죄 같은 부분이 적용될 수 있는데 그러다보면 우리 기업 활동이 어려워지고, 의사결정이 지연될 수 있다"며 "특히 외국계 투기자본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예측이 어려운 규제로 기업들이 국내 경영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현지 생산 흐름도 확대되는 추세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준공했다. HMGMA는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HMMA), 기아 조지아공장(KaGA)에 이은 미국 내 세번째 생산거점으로 전체 부지면적만 여의도의 약 4배에 달하는 1176만㎡에 이른다. 

    이번 준공으로 현대차그룹은 기존 공장에 더해 100만대를 미국에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향후 연간 생산량을 30만대에서 50만대로 확대해 120만대 생산 체계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미국시장에서 약 170만대를 판매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70% 가량인 120만대를 미국 현지 생산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에 대응해 미국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일부터 수입 자동차에 25% 관세를 발효했고 핵심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는 내달 3일 이전 발효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HMGMA 준공 이후에도 2028년까지 210억달러 규모의 대미 추가 투자를 감행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철강·알루미늄에 25% 품목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철강업계도 현지화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현대제철이 미국 루이지애나에 58억달러를 투입해 연 270만톤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한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4년간 집행할 21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의 일환이다. 포스코도 해당 프로젝트에 지분 투자 형식으로 참여한다. 

    국내 양대 철강사는 발빠르게 미국 현지 투자 확대로 대응하고 있는 반면 국내서는 몸집 줄이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제철은 최근 포항 2공장 가동을 축소하고 희망퇴직을 받았고 창사 이래 처음으로 이달 인천공장 철근생산 설비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포스코도 지난해포항제철소 1제강공장에 이어 1선재공장을 폐쇄했다. 

    자동차와 함께 수출 양대산맥인 반도체도 대미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주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고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장을 건설을 추진 중이다.  

    기업들이 미국의 관세 철퇴에 수익성 방어를 위해 현지 생산을 불가피하게 선택하고 있지만 공장, 인력, 기술까지 해외로 빠져나가 국내 제조업 공동화를 심화시킬 것이란 지적도 잇따른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노동시장이 주 52시간 등으로 경직돼 있고 상법개정안, 중대재해법 등으로 기업하기 좋지 않은 환경으로 가고 있다는 점도 문제"라며 "노동개혁, 기업 친화적 환경 조성 등 향후 방향성이 명확함에도 정치·정무적 관점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실행이 되지 않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어 "결국 기업들이 지정학적 고려와 함께 글로벌 이윤 추구 관점에서 현지 완결형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한국으로서는 상당히 힘든 미래가 펼쳐질 수 있다"며 "정부가 구조개혁과 함께 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지 않으면 산업 공동화 추세는 계속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실제 국내 제조 대기업이 국내 설비투자에 소극적으로 돌아서면서 설비투자 증가율도 대폭 하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산업은행이 종업원 50명 이상인 국내 기업 4000곳을 조사한 결과 올해 국내 회사의 설비투자액은 233조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제조 대기업은 전년 대비 설비투자 증가율이 지난해 8.1%에서 올해 0.9%로 급감할 것으로 전망됐다. 대기업 설비투자는 전체 제조업의 83.8%에 달한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한국 경제는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외국인 투자 감소, 산업 규제 리스크에 직면해 있고 기업들도 강력한 노조, 높은 세율, 규제 등으로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다"면서 "한국이 미국 수준의 투자환경을 조성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해야 하며 정부, 학계, 산업계가 국가경쟁력을 되살릴 구조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