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日 상호관세 25%→15%·5500억달러 투자트럼프, 미일 무역합의 직접 수정 정황 나타나EU, 15% 상호관세 합의 근접·中도 마무리 수순美 "긴급 일정 생겨" 25일 '2+2 협상' 돌연 취소韓, '트럼프 선물' 갈팡질팡 하다 관세 폭탄 맞을수도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연합뉴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시한이 임박한 가운데, 일본이 미국과 무역협상을 타결하면서 한국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한국과 동일한 25%의 관세를 부과받았던 일본이 15%로 협상을 마무리한데 이어 유럽연합(EU)도 15%의 상호관세 합의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역시 미국과의 무역협상이 마무리 수순이다.

    이에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경제팀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25%의 고율관세를 적어도 15% 수준까지 끌어내리지 못할 경우 수출 경쟁력에서 상대적 불이익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24일 나오고 있다. 관세 인하 반대급부로 미국에 안겨줄 선물을 두고 갈팡질팡 하면서 협상의 '골든 타임'을 놓칠 경우 관세 폭탄을 그대로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 한미 간 협상도 돌연 취소되면서 협상 일정 전반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미국과 예정돼 있던 25일 '2+2 협상'이 미국 베센트 재무장관의 긴급한 일정으로 인해 개최하지 못하게 됐다"며 "미국 측은 조속한 시일 내에 개최하자고 제의했고 한미 양측은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일정을 잡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2+2 통상협의를 의해 이날 미국 출국 예정이었던 구윤철 부총리의 출국도 취소됐다.

    이번 협상 연기는 단순한 일정 조율을 넘어, 한국 측의 협상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일본이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선제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낸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어서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에 이어 EU, 중국과 잇따라 관세 협상을 진전시키는 가운데, 미국이 이들 국가와 먼저 협상을 타결한다면 이는 한국보다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사실상 협상 순서에서 밀리는 것 자체가 전략적 주도권을 내주는 셈이어서 정부의 통상 전략 전반에 대한 정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코리아 패싱'으로 가는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며 "이번 뿐만 아니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의 방한이 내부 사정을 이유로 무산됐고 중국과 일본 주재 대사는 임명됐음에도 주한 미국대사는 공석이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이미 한미 간에 일정이 합의돼 있었기 때문에 한미 2+2 통상 협의 연기는 외교적 결례"라며 "사실상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 일정 문제가 아닌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이어 "일본의 경우 4000억달러 투자를 준비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5500억달러로 상향한 것처럼 한국 역시 몇 가지 쟁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미국의 통상 협상의 우선순위에서 일본, EU, 중국의 다음 레벨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데 현재 정보가 제한적인 상황으로 속단하긴 어렵다"고 했다.

    앞서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통해 기존 25%였던 상호관세율을 15%로 10%포인트(P) 낮추는 무역합의를 이뤄냈다. 다음달 1일 관세발효를 앞두고 8차례 대면 협상 끝에 관세 인하에 성공했다. 이번 합의로 일본은 자국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한 미국의 무역 압박을 일정 부분 완화할 수 있게 됐다.

    일본은 이번 관세 합의 조건으로 5500억달러(756조원) 규모 미국 투자를 약속했다. 백악관은 23일(현지시간) '미·일간 전례 전략적 무역·투자협정 체결'이란 자료를 통해 "5500억달러는 가장 큰 규모의 외국 투자 약속으로 미국 내 수십만 개 일자리를 창출하고 제조업을 확대하며 미국 번영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이번 대규모 투자자금의 사용처로 △신규 조선소 건설 및 기존 시설 현대화를 포함한 상업 및 국방 선박 건조 △제약 및 의료 제품 생산 △핵심광물 채굴·가공·정제 △설계부터 제조까지 반도체 제조 및 연구 역량 재건 △액화천연가스(LNG)·첨단연료·전력망 현대화를 포함한 에너지 인프라·생산 등을 거론했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에서도 "5500억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대미 투자 제안이 가장 컸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과 무역 합의를 타결한 것 역시 결국은 막대한 투자액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미일 협상을 정치적 지지층과 미국 유권자들에게 외교적 성과로 내세우는데 치중하는 측면도 있지만, 실제로 금액규모나 조건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치적 전리품으로 활용하기 충분해 보인다"며 "이번 미일 협상은 한국과 EU 등의 무역협상을 염두에 둔 행보로 보이나, 한국으로선 일본에 상응하는 투자계획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 현대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현대자동차
    ▲ 현대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현대자동차
    또 이번 협정을 통해 일본은 옥수수와 대두, 비료, 바이오에탄올, 지속가능 항공유(SAF) 등 미국 제품 80억달러(약 11조원) 규모를 구매하고 미국산 쌀 수입을 75% 늘리는 등 미국산 수입 할당량을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 역시 바이오에탄올용 옥수수 등 '연료용 작물 수입 확대' 카드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량 소비와 무관한데다 에너지 수급 안정성과도 맞물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진교 GSnJ 인스티튜트 원장은 "미국이 요구하는 농산물 양보를 피할 수 없다면 상대적으로 국내 농업에 영향이 적은 바이오에탄올용 옥수수 수입을 고려하는 방식이 나을 수도 있다"며 "다만 관련 산업 기반이 우리나라에 갖춰져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쌀의 경우 일본과 한국의 상황이 다르다. 한국은 미국 등 5개국에서 매년 40만8000톤(t)의 쌀을 저율관세할당(TRQ) 형식으로 의무적으로 수입한다. 이를 넘는 물량에는 513%의 관세를 부과한다. 이 TRQ 물량은 국가별 쿼터로 묶여져 있어 현재 미국산 쌀 TRQ 물량을 늘리려면 다른 나라의 동의를 일일이 받아야 해 사실상 국가별 쿼터 조정이 쉽지 않은 구조다. 반면 일본은 최소시장접근물량(MMA) 형식으로 연간 77만t 쌀을 무관세로 수입하고 있는데 국가별 쿼터가 없다. 

    서진교 원장은 "일본은 이번에 미국에 명확한 국별 쿼터를 새로 설정해준 것이나 MMA 물량 내에서만 미국산 수입량을 늘린 것으로 전체 쌀 수입량이 늘어난 것이 아니다"며 "상당히 쌀 협상을 전략적으로 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은 협정에 따라 연간 수십억달러를 추가로 편성해 미국의 군사 무기를 구매할 계획이다. 또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에 대한 새로운 공급 계약을 검토하는 등 미국 에너지 수출도 확대한다.

    일본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라는 대가를 치른 만큼, 그간 한국에 대해서도 미국이 지속적으로 참여를 압박해 왔다는 점에서 향후 이에 대한 요구가 구체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알래스카 LNG 투자 건은 사업 타산성 등의 측면에서 정부 내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며 "무리한 양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과 EU가 EU산 수입품에 15%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 합의에 근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달 1일부터 EU 상호관세를 30%로 인상하겠다는 위협을 피하기 위해 이같은 상호관세에 동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협상도 마무리 수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일 시행될 상호관세와 관련해 모든 교역국들 15~50%에 속하는 관세가 부과될 계획이라고 언급하면서 중국과의 무역협상에 대해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미일 무역 협상에 직접 개입해 일본의 대미 투자규모를 더 큰 규모로 늘리도록 요구한 정황도 드러났다. 댄 스커비노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에 트럼프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일본 관세 협상 총괄인 이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과 대화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 속 트럼프 대통령 책상 위에는 '일본, 미국에 투자하다'는 제목의 문서가 놓여 있고 4000억달러로 적힌 숫자가 지워지고 대신 5000억달러라는 손글씨가 적힌 것이 식별된다. 일본이 당초 제안한 투자 규모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수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사진 속 문서에는 이익 공유 비율이 90%가 아닌 50%로 명시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과의 무역 합의를 발표하며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를 투자하고, 이익의 90%는 미국이 가져갈 것"이라고 밝힌 것과 다른 수치가 적혀 있는 것으로, 이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고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문서에는 10% 관세와 별도로 자동차, 의약품, 반도체에 15%라는 문구가 있고 의약품과 반도체 위에도 20%로 보이는 숫자가 손글씨로 적혀 있다. 이같은 정황으로 볼 때 미일간 무역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양국의 장관급 협의 내용을 보고받은 뒤 일본 측에 추가 양보를 압박한 결과로 보인다.

    허윤 교수는 "미국이 일본과 한국을 상대로 경쟁적으로 투자를 이끌어내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유사한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한미간 대칭적인 양보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내에서 많이 주고 적게 받은 '졸속 협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이익의 균형을 확보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