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긴급한 일정" … 25일 한미 '2+2 관세 협상' 일방 취소산업장관·통상본부장 등 韓 경제팀, 美서 진전 못 이뤄구윤철 부총리는 인천공항서 美 출국 대기하다 발길 돌려협상 앞두고 '소고기·쌀 시장 개방 불가' 韓 언론이 보도 日 5500억달러, 韓 1000억달러 … 투자 규모도 日의 5분의1李 대통령, 이재용 회장과 만찬 … 대미 대규모 투자책 없으면 협상 교착 못뚫어
  • ▲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07.22.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07.22. ⓒ뉴시스
    한미 '2+2 관세 협상'이 미국 측의 일방적인 취소로 무산되면서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오는 8월 1일부터 25%의 상호관세가 부과하겠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가운데, 우리 측이 미국 측을 만족시킬만한 '빅 카드'를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가 협상 카드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 관세 협상 타결 소식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중국과 유럽연합(EU)도 관세 협상에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어 우리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과 관세 협상을 끝낸 나라들은 자동차, 농산물, 대규모 투자 등 파격적인 선물 보따리를 내밀었고 관세를 대폭 낮출 수 있었다. 

    이번 관세 협상에서 한국이 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관세를 더 낮추지 못하거나, 적어도 같은 수준에 이르지 못할 경우 집권 초기인 이재명 정부에게 상당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타결을 위해 농산물이나 자동차 등의 과도한 개방 또는 비관세 장벽 철폐가 이뤄질 경우 농민이나 기업들의 강한 역풍이 불가피하다. 

    이를 뚫기 위해서는 삼성 등 우리 대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대폭 늘려 일본처럼 트럼프가 대내적으로 내세울 '화려한 수치'의 투자액을 내놔야 하는데, 기업들로서는 실질적 투자 없이 '공허한 숫자 놀음'을 할 경우 미국측의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게 자명하다. 

    결국 한국 정부로서는 교착 상태인 협상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어느 때보다 난이도 높은 '선물'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24일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5일로 예정된 한미 재무·통상수장 간 '2+2 관세 협상'이 최소됐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미국과 예정되었던 7월 25일 2+2 협상은 미국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의 긴급한 일정으로 인해 개최하지 못하게 됐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베센트 장관의 협상 취소 이유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기재부는 이어 "미국 측은 '미안하다'고 하며 조속한 시일 내에 (2+2 협상을) 개최하자고 제의했고, 한미 양측은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일정을 잡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 측으로부터 '2+2 협상' 일정 취소 통보를 한국 시간으로 24일 오전 9시(미국 현지 시간 오후 8시) 쯤 이메일로 통보받았다고 한다. 구 부총리는 이날 미국으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미국 측의 취소 통보 소식을 보고받은 뒤 그대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산업부는 "김정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현시시간으로 23~25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장관, 덕 버검 국가에너지위원장 등 미 정부 주요인사와의 일정을 예정대로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 재무부와 USTR과의 2+2 협상은 미 측과 최대한 조속한 시일 내에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이 협상 하루 전 일방적으로 취소를 통보한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한국이 미국을 만족할 만한 수준의 파격적인 제안을 하지 않았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은 그동안 농축산물 분야에서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허용과 미국산 쌀 수입 확대 등을, 에너지 분야에서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 참여 등을 요구하면서 수천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까지 압박하고 있다.

    일본은 이번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쌀 등 농산물 시장 개방을 약속했고,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알래스카에 미국과 LNG 합작회사를 설립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일본은 지난 4월 부과된 25%의 상호관세를 15%로 10%포인트 낮췄다. 특히 핵심 산업인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25%의 품목 관세를 15%(기존 관세 2.5% 포함)로 낮추는데 합의했다.

    인도네시아도 미국산 수입품 99% 이상에 관세를 폐지하고 자동차·농산물·의약품에는 각종 규제 적용을 면제하기로 했다. 그 대가로 인도네시아는 미국이 부과한 상호관세를 32%에서 19%로 13%p 낮췄다. 필리핀도 미국과 군사협력을 약속하고 상호관세를 20%에서 19%로 낮췄다. 관세 인하를 위해 미국에 줄 수 있는 모든 선물을 제공한 셈이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에 반해 한국의 투자 규모는 산업·수출 구조가 유사한 일본에 비해 초라한 실정이다. 통상 당국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5일 '2+2 협상'에서 국내 기업들과 1000억달러(137조원) 이상의 현지 투자 계획을 트럼프 행정부에 제안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은 약 660억 달러, 일본은 685억 달러의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비슷한데 투자 규모는 일본의 5분의 1도 안되는 수준이다. 미국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긴급한 일정'을 이유로  '2+2 협상'을 취소한 것도 이런 상황과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이 조성해야 할 대미 투자 기금의 규모에 대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최근 한국과 무역협상에서 대미 투자 기금의 규모로 4000억달러(약 548조원)를 직접 제시했다"고 익명의 한미 무역 협상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일본은 당초 대미 투자 기금의 규모를 4000억달러 선에서 논의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막판 합의 과정에서 5500억달러로 키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통은 블룸버그에 "한미 무역협상도 이와 유사하게 15%의 관세율 도달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자동차도 포함된다"고 전했다.

    이어 "일본이 미국과 무역협상에서 보잉 항공기 및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약속한 것처럼 한국도 주요 산업분야에서 더 많은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금성 투자 외에도 정부가 미국 측에 제안할 다른 분야 카드도 관련 업계의 눈치를 보느라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에는 정부가 이번 관세 협상에서 민감한 품목인 미국산 쌀과 소고기 시장 확대는 쓰지 않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번 협상에서 국가 식량안보와 직결된 농산물 대신 바이오에탄올용 옥수수 등 '연료용 작물 수입 확대' 카드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관세 협상에서 '정밀지도 데이터 제공' 불가 방침 세웠다는 기사도 보도됐다. 

    해당 보도에 대해 산업부가 "협상과 관련된 구체적 내용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 등과 만족할 만한 수준의 무역 협상을 타결한 상황에서 한국이 협상에 임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조동준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관세 협상이 무산된 것은 사실상 무시당한 것이다. 한국 측 제안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재명 정부와)중국과 관계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이재용 회장과 만찬을 하기로 해 결과가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앞서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이나 구광모 LG 회장 등과 만났는데, 이재용 회장과의 회동은 예민한 시기와 맞물려 주목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삼성으로서도 새 정부의 안정과 국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투자를 꺼낼 것으로 보이지만, 반도체 등 경영 상황이 녹록하지는 않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한미 관세 협상은 여야를 떠나 국가 운명을 결정 지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이재명 정부가 관세 협상에서 일본보다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정권 초반에 예상보다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