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미국인 대상 기술 교육 요구 거듭 밝혀미국 현지 인력 확보와 신규 공장·라인 증설 난항중국 투자 실패 경험, 미국 투자에도 그림자美에 섣불리 기술 이전할 경우 中에 주력 산업 내준 상황 되풀이
  • ▲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2025.9.6 [ICE 홈페이지 영상 캡처] ⓒ연합뉴스
    ▲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2025.9.6 [ICE 홈페이지 영상 캡처] ⓒ연합뉴스
    미국 이민당국에 구금된 한국 기업 직원들의 석방 교섭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자 문제 해결 의지를 밝히면서도 우리 기업에 미국인 대상 기술 교육까지 요구해 적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미국에 투자하는 모든 외국 기업에게 이민법을 존중할 것을 요청한다"며 "여러분의 투자는 환영하지만 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훈련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히 비자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을 넘어 외국 기업에 미국인 인력 양성을 요구한 것으로,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기술 이전을 동시에 겨냥한 조치다. 이런 상황은 아무리 동맹이라도 경제적 이익을 앞세운 '미국 우선주의'를 넘어설 수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아울러 우리 기업들아 과거 중국 투자 과정에서 겪었던 상처를 다시 한번 겪는 것이어서 해외 투자 전반에 대해 정부와 기업간의 치밀한 전략 마련이 요구된다. 

    ◇ 수조원 투자해도 불모지서 생태계 구축 '한계' 

    기업들은 공장 건설과 초기 생산 단계에서 고도의 기술과 경험이 요구되기 때문에 현지 인력 만으로는 충당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공장 건설 및 장비 설치 단계에서 한국 협력사 직원들이 미국 현장에 투입되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국내 배터리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장비는 한국과 중국 업체가 글로벌 시장을 양분하고 있어, 설치와 초기 셋업은 해당 장비를 제작한 협력사 인력이 맡을 수밖에 없다. 장비 이해도가 없는 현지 인력이 이를 대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국내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현지에서 숙련 인력을 구하기 어렵고, 채용해도 인건비 부담이 크며 문화적 차이까지 겹쳐 공장이 정상 운영되기까지 통상 3년 가량 걸린다”고 말했다.

    타이어 업계 관계자 역시 "숙련도가 쌓이기도 전에 다른 공장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인근에 아마존 물류센터 같은 대규모 고용처가 들어서면 업무가 단순하다는 이유로 인력이 빠져나가는 사례가 잦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맹률이 높은 점도 교육과 숙련 과정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여기에 높은 인건비 부담까지 겹치면서, 제조업체들이 미국 현지 공장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내 전문 인력이 현지에서 일하기도 까다로운 상황이다. 미국 내 전문직(H-1B)·주재원 비자(L-1) 발급 요건이 까다롭고 심사에도 수개월이 걸린다. 이번에 체포된 한국 근로자들 대부분은 H-1B·H-2B 없이 전자여행허가(ESTA)나 단기 상용(B-1) 비자로 입국한 상태였다. 
  • ▲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훈련시켜야 한다고 밝혔다.ⓒ트럼프 대토령 소셜미디어 갈무리
    ▲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훈련시켜야 한다고 밝혔다.ⓒ트럼프 대토령 소셜미디어 갈무리
    ◇ 대규모 미국 프로젝트 직격탄, 투자 위축 불가피 

    대규모 미국 투자를 진행 중인 기업들은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조지아 공장에서의 배터리 양산 개시를 잠정 연기했으며, 현대차는 임직원의 미국 출장 금지를 지시했다. 삼성전자는 ESTA 프로그램을 통한 출장 기간을 2주로 제한하며 미국 출장 규정을 강화했다.

    류태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정부의 외국인 취업 비자 쿼터제는 대형 프로젝트에서 인력 수급 한계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안으로 합법적 취업 자격을 갖춘 숙련 노동자 부족과 인건비 상승 압력이 불가피하며, 미국 내 대형 프로젝트 전반에서 공정 차질과 원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신·증설을 추진 중인 공장은 최소 22곳이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파예트에 38억7천만 달러를 투자해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후공정 공장 건설을 준비 중이다. SK온은 미국 단독 공장 2곳을 운영하며, 올해 3분기 포드와 합작한 블루오벌SK(BOSK) 켄터키 1공장 가동을 앞두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 오하이오, 테네시에서 생산기지를 운영하며, 미시간 홀랜드 공장에서는 ESS용 LFP 배터리 양산을 시작했다.

    뉴욕포스트, AP통신 등 외신은 이번 미국의 현대차-LG 배터리 공장에서의 단속이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고 보도했다. 삼성, 현대, LG, 기아, SK 등은 미국 내 제조 확장에 수십억 달러를 걸고 있지만, 비자 쿼터 부족, 임금 상승, 정치적 감시 강화 속에서 경영진은 투자 수익성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비자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가이드라인이 조속히 나와야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과거 중국에 다각도 투자했다가 역전당한 트라우마 깊은 K제조업

    국내 제조업계에는 여전히 ‘중국 투자 트라우마’가 깊게 남아 있다.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 시장에 과감히 투자했다가 기술과 시장 점유율을 내준 경험 때문이다. 중국 기업의 한국 인재 영입을 비롯한 기술 탈취 시도로 양국 간 기술 격차는 상당히 좁혀졌다. 

    한국이 세계 1위였던 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이다. 한국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디스플레이, 특히 LCD패널 부문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 BOE·CSOT 등 현지 업체가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급성장하면서 사실상 주도권을 빼앗겼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중국 측이 기술이전을 하지 않으면 공장 승인을 내주지 않겠다'라는 요구를 내걸었다는 후문이 돌기도 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2018년 중국 광저우에 8.5세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공장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수개월 중국 정부의 실무 절차에서 시간이 지연된 바 있어서다. BOE와 CSOT 등 중국 기업들이 한국산 장비를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현대차·기아도 한때 연간 수백만 대를 판매했지만 사드(THAAD) 보복과 로컬 브랜드 약진으로 점유율이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은 과거 중국에 진출했다가 중국으로부터 각종 갑질을 당한 트라우마가 있다"라며 "그 결과 현재 중국의 한국 추월은 전통·첨단 산업 구분 없이 진행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도 추후 자국 내 한국 기업에 대해 미국인 고용 할당제 도입이나 기술 이전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 ▲ 7일(현지시간) 미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앞에서 관계사 직원들이 면담을 기다리고 있다.ⓒ연합뉴스
    ▲ 7일(현지시간) 미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앞에서 관계사 직원들이 면담을 기다리고 있다.ⓒ연합뉴스
    정부와 기업은 비자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근로자 집단 구금 사태와 관련해  지난 8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과의 경제현안 정책 간담회 "비자 쿼터 확보 등 구조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관 산업장관은 “최근 미국의 비자 발급이 보수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사실이며, 기업 투자를 위해 문제점을 분명히 전달했다”며 “트럼프 대통령도 합리적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투자할 때 비자와 고용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세심히 관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