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노동안전 종합대책' 발표 … 李, 산재방지 지시 후속방안산재 건설사에 '영업정지' 더 쉽게… 건설사 등록말소 규정 마련 기관장 해임 법적 근거 및 장관 '긴급 작업중지 명령제'도 신설경영계 "재해 예방 효과 의문 … 검증 안 된 엄벌주의 탈피해야"
  • ▲ 안성 고속도로 건설현장 붕괴사고 ⓒ연합뉴스
    ▲ 안성 고속도로 건설현장 붕괴사고 ⓒ연합뉴스
    정부가 산업 재해로 연간 3명 이상 사망 사고가 발생한 법인·공공기관에 대해 영업이익의 5% 이내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영업손실인 경우엔 최저 30억원의 과징금을 물린다. 과거 3년 동안 산업 재해로 두 번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는데도 영업정지 사유가 다시 발생한 건설사에 대해서는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충분히 예방 가능한 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겠다"며 이같은 내용이 담긴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적인 사망 사고를 내는 기업에 대해 경제적 제재를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린지 약 한달 반 만에 나온 범정부 대책이다.

    우선 정부는 연간 3명 이상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과징금은 사업장 등 현장 단위가 아니라 법인에 대해 부과한다. 사망자 수와 발생 횟수 등을 고려한 구체적인 과징금 규모는 신설될 '과징금 심사위원회'에서 마련할 예정이다. 거둔 과징금은 산업재해 예방보상보험기금에 편입해 산재 예방에 사용할 계획이다.

    노동부 장관이 산재가 발생한 건설사에 대해 '영업 정지'를 요청할 수 있는 조건도 완화한다. 지금까지는 '동시 2명 이상 사망'인지만 향후 '연간 다수 사망' 요건을 추가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다수'가 의미하는 구체적인 숫자는 추후 논의를 거쳐 확정할 방침이다. 일반 건설사 외 전기, 정보통신, 소방시설공사 건설사 역시 영업정지를 요청할 수 있게 된다. 현행 2~5개월인 영업정지 기간도 더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가 건설사 면허 취소를 취소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최근 3년간 영업정지 처분을 2회 받은 후 다시 영업정지 요청 사유가 발생한 건설사에 대해 등록 말소할 수 있도록 규정이 생기는 것이다. 정부는 건설사뿐 아니라, 정부 인·허가가 필요한 음식·숙박업 등 33개 법률에 대해서도 유사한 조치를 부과하기 위해 검토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기관장 해임 요청을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도 마련된다. 또 공공기관장이나 임직원 성과급을 결정짓는 경영평가에서의 산재 예방 분야 평가 배점을 현 0.5점에서 2.5점으로 상향할 방침이다.

    이 외에도 정부는 제재로서 △공공입찰 참가 제한 △금융권 여신 심사와 대출 약정에 중대재해 리스크 반영 △중대재해 발생 현황 수시공시 의무화 △외국인 산재 사망 사고 발생 사업주 3년간 고용 제한 등을 추진한다. 다만 앞서 제재 방안으로 거론됐던 산업안전보건법 '과태료' 일괄 상향은 이중처벌 등 논란을 고려해 이번 대책에서는 제외했다.

    정부는 근로감독관 3000여명 증원하는 등 산업 재해 예방에도 힘을 싣는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노동부 장관의 '긴급 작업중지 명령' 제도를 신설하고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요건도 지금보다 완화하기로 했다. 정당한 작업중지권 행사에도 이를 빌미로 징계하는 사업주에게는 형사 처벌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아울러 산업안전감독관(근로감독관)을 2028년까지 3000여명 증원한다. 또 중앙정부에만 부여된 근로감독 권한을 지자체에도 주고, 올해 2만4000곳으로 예정된 고위험 사업장 감독 물량을 2028년에는 7만곳까지 늘리겠단 구상이다. 노동부·경찰·검찰의 전담 수사 인력도 더 채운다.

    건설 발주자에게는 적정 공사비 산정 의무를 부여하고 국가 공사 적격심사 때 적용되는 낙찰 하한률을 지금보다 2%포인트(p) 상향하기로 했다. 건설 공사 기간 연장이 필요한 사유에 '폭염 등 기상재해'를 추가해 충분한 공사 기간을 부여하기로도 했다. 10억원 미만(50억원 미만 건설 현장)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는 추락·끼임·부딪힘 등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 설치 비용의 90%까지 지원토록 한다.

    한편, 정부는 이번 대책 추진을 위한 법 개정안을 조속히 마련해 당정 협의 후 연내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2조722억원에 달하는 내년 노동안전 예산이 차질 없이 반영되도록 기재부·국회와 긴밀하게 협의할 방침이다.

    한국노총은 이번 대책에 대해 "중대재해 근절 의지를 담은 점은 고무적이지만, 전체 산재 사망의 80% 이상이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주노동자 대책은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한노총은 특히 10인 미만 사업장 지원이 기존 일회성·단발성에 그쳤다며 산재율이 높은 5~50인 미만 사업장에 집중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했다. 또 영업정지 등 제재가 하청노동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임금·고용 보장 장치 마련을 요구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부는 사회적 논란이 되는 중대재해 발생 시마다 근본적 예방 대책없이 사후처벌 강화에만 집중한 대책방향을 내놓았다"면서 "이번 대책은 기업경영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나아가 기업의 존폐를 결정짓는 전방위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총은 이어 "대책 내용이 법제화될 경우 개별기업은 물론 연관 기업 및 협력업체의 경영에까지 미치는 파급력이 크고, 이는 국가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며 "산재예방 효과성이 검증되지 않은 처벌중심 정책을 탈피해야 한다"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