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한은 “지금은 인하 시기 아냐” vs 신성환 “고금리 장기화는 더 큰 부실로 이어질 것”부동산 자극 우려에 ‘동결론’ 강화됐지만 … “고금리 피로 누적, 완화 속도 조정 논의 필요”수출 둔화·건설 침체 동반 압박에 내년 경기 불확실성 커져 … 조기 인하론, 경고음 주목
  • ▲ 신성환 금융통화위원. ⓒ한국은행 제공.
    ▲ 신성환 금융통화위원. ⓒ한국은행 제공.
    한국 경제의 향방을 두고 통화정책 기조가 분기점에 섰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이 “지금은 금리 인하 시기가 아니다”라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한 반면, 신성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홀로 “고금리 장기화는 더 큰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조기 인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책 공조의 균열처럼 보이지만, 구조적 리스크의 숨은 불안 요인을 짚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KDI는 최근 발표한 ‘2025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을 0.9%, 내년은 1.8%로 소폭 상향 조정했다. 반도체 수출 회복과 민간소비 개선에 힘입어 “경기가 완만하게 회복 중”이라고 진단했지만, 수출 둔화와 건설 경기 부진을 하방 요인으로 꼽았다. 한은 역시 “현재 주택시장에는 합리적 기대를 벗어난 ‘진단적 기대’가 자리 잡았다”며 “이 상태에서 금리를 내리면 경기 부양보다 부동산 가격 급등이 먼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주요 기관들이 “조기 인하 시 부작용이 크다”고 입을 모으는 가운데, 신 위원은 금통위 내 유일한 ‘인하 소수의견’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고금리 장기화로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누적되고 있다”며 “정부 재정에 의존한 경기 반등이 아닌, 민간 중심의 회복 전환을 위해서는 통화정책이 보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택시장 안정화 정책으로 수도권 거래가 위축된 만큼, 통화 완화로 완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 위원의 발언은 단순한 금리 완화 주장이 아니라, 고금리의 ‘지속 피로감’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실제로 중소기업 연체율은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1.0%)으로 치솟았고, 가계의 이자 부담은 국내총생산(GDP)의 10%를 넘어섰다. 환율 급등으로 외화대출 상환 부담도 커지면서 실물경제의 균열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고금리로 버티는 국면이 길어질수록, 잠재 성장률은 떨어지고 ‘조용한 부실’이 누적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우려다.

    그는 내년 경기의 가장 큰 리스크로 “수출 둔화와 건설 경기 침체의 동반 압박”을 꼽았다. KDI 역시 내년 수출 증가율을 올해(4.1%)의 절반 수준인 1.3%로 전망했다. 미국의 고율 관세 여파, 미·중 갈등 재점화 가능성, 국내 투자 부진이 겹치며 성장 모멘텀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금리 동결이 장기화되면 민간의 투자 여력마저 꺾이면서 경기 흐름이 다시 후퇴할 위험이 있다는 판단이다.

    물론 신 위원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금리 인하가 시기상조라는 지적은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다. 환율은 1460원을 넘어섰고,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도 여전하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진단적 기대’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면 주택가격은 56% 더 오르지만, GDP와 소비, 투자는 오히려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화정책이 자산시장만 자극하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경제 전문가들은 신 위원의 금리 인하 주장이 성급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가 던진 질문은 묵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신 위원의 제안이 단순한 인하 요구가 아니라, 통화정책의 타이밍과 균형에 대한 문제 제기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부동산 불안과 금융 불안 사이, 성장의 둔화와 잠재력 저하 사이에서 한국의 통화정책은 어느 지점을 향해야 할해야 할 지 논의의 물꼬를 텄다는 것.

    한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통화 정책은) 부동산 자극 우려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며 “고금리로 버티는 기업과 가계의 피로가 임계점에 다다른 만큼, 완화 속도를 조절하는 논의는 충분히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금통위는 이달 말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KDI·한은의 신중론과 신 위원의 인하론이 맞부딪히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 회복의 착시와 부실 리스크의 현실 사이,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를 두고 한국 경제의 향방이 갈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