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상승, 생산비·물류비 자극 …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 확대물가 자극 땐 금리 인상 필요 … 가계부채 부담에 정책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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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며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운신 폭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 유가 급등이 물가 상승 압력을 자극하고 있지만 가계부채 부담과 경기 둔화 우려 때문에 기준금리를 올리기도, 내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사실상 금리 정책 '외통수'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9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한국 시간 기준 이날 오전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모두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WTI는 지난 2022년 7월 이후 처음으로 100달러를 상회했고 브렌트유는 전장 대비 약 10% 급등한 배럴당 102.20달러를 기록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지역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면서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진 영향이다. 전쟁 전 배럴당 70달러 안팎이던 유가는 단기간에 30% 이상 상승했다.

    특히 중동 지역은 전 세계 원유 공급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과 맞닿아 있는 만큼 시장에서는 공급 차질 가능성을 가장 큰 변수로 보고 있다. 이란과 주변국 간 군사적 긴장이 이어질 경우 원유 수송 차질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은 국내 에너지 가격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유업계에서는 최근 유가 상승 흐름이 이어질 경우 국내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에 근접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부 지역 주유소에서는 이미 휘발유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단순히 유류비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 석유는 산업 전반의 기초 원재료이자 물류 비용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생산비와 운송비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식품·외식·서비스 등 소비자물가 전반으로 상승 압력이 확산되는 ‘비용 인상형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는 중동 지역 충돌이 장기화할 경우 국내 물가 상승률이 다시 2% 중후반대로 올라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물가가 급등했던 2022년 인플레이션 국면을 일부 재연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한국 경제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 국제유가 변동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국제유가는 실제 한국은행의 물가 전망 전제치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은 지난 2월 금융통화위원회의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2%로 예상하며 국제유가를 배럴당 64달러 수준으로 전제했다"고 말했다. 이미 현재 유가는 이를 약 40% 웃돌고 있다.

    이어 "현재와 같은 유가 수준이 이어질 경우 물가가 2% 초반에서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유가 상승의 가격 전이 효과까지 고려하면 물가가 3%대로 다시 올라설 가능성도 열어 둘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유가 상승이 통화정책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경우 중앙은행은 통상 기준금리를 인상해 수요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경제는 높은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 불안, 경기 회복 속도 둔화 등 복합적인 제약 요인을 안고 있다.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경우 가계 이자 부담이 더욱 커지고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경기 둔화를 고려해 금리를 낮추기에도 물가 상승 압력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당분간 금리 인하에 나서기도, 인상으로 대응하기도 어려운 ‘통화정책 딜레마’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유가 상승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장기화할 경우 물가와 경기 사이에서 정책 선택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지정학 리스크가 통화정책 변수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