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보조금·고객·인재까지 인텔에 집중韓, 지역균형 명분 아래 호남 투자 압박전력·용수·인력 빠진 팹은 경쟁력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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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뉴데일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에 300조~500조원을 투자한다는 말은 어디서 먼저 나왔을까. 두 회사의 공시도, 이사회의 결정도 아니었다. 정치권과 관가였다. 기업이 전력과 용수, 인력과 수익성을 계산하기도 전에 후보지와 투자 규모, 발표 시점까지 흘러나왔다. 돈은 기업과 주주가 대는데 공은 정치가 먼저 가져가려는 모양새다.태평양 건너 미국의 풍경은 다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애플이 미국에서 칩을 설계·생산하기 위해 인텔과 협력하기로 했다고 직접 밝혔다. 미국 정부는 약 90억달러의 연방 지원금을 활용해 인텔 지분 10%를 확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엔비디아와 테슬라의 인텔 협력까지 자신의 성과로 내세웠다.인재도 끌어모았다. 인텔은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사장을 파운드리 부문 수석부사장으로 영입해 첨단 패키징과 후공정 기술을 맡겼다. 보조금을 투입하고 고객을 연결한 데 이어 경쟁국의 핵심 인재까지 데려왔다. 인텔을 미국 반도체 제조업 부활의 구심점으로 세우겠다는 전략이다.이처럼 미국 정부는 기업에 무엇을 해주려는지가 분명하다. 세계 시장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돈과 고객, 인재를 붙인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반도체기업에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호남 투자설은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구상과 맞물려 급속히 커졌다. 당초 전력과 용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후공정 시설이 거론됐지만, 어느새 전공정 팹과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아우르는 수백조원대 사업으로 확대됐다. 기업이 공식 계획을 내놓기도 전에 정치가 밑그림부터 그린 셈이다.지역균형발전의 필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산업 기반을 넓히는 일은 정부의 책무다. 그러나 반도체 팹(공장)은 공공기관 청사처럼 지도 위 빈칸에 옮겨 놓을 수 있는 시설이 아니다.최첨단 팹 1기를 짓는 데만 60조원 안팎이 들 수 있다. 한 번 입지를 정하면 수십년 동안 전력과 용수, 물류비와 인건비를 감당해야 한다. 초고압 송전망과 하루 수십만t(톤)의 공업용수, 숙련 인력과 소재·부품·장비 생태계가 함께 갖춰져야 비로소 공장이 돌아간다. 입지를 잘못 고른 대가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수율과 원가로 치른다.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조차 계획 수립부터 첫 팹 가동까지 8년 가까이 걸릴 전망이다. 기술 전환이 빠른 반도체 시장에서는 1년의 지연도 고객과 시장을 잃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지역부터 정한 뒤 전력과 용수, 인력은 나중에 붙이겠다는 ‘선입지·후인프라’ 방식이 위험한 이유다.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미국의 현지 생산 요구와 중국 사업 규제를 동시에 감당하고 있다. 대만과 미국 경쟁사는 자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달린다. 여기에 국내 정치가 입지 비용까지 얹는다면 한국 기업은 기술과 수율보다 정권의 의중을 먼저 살펴야 하는 처지가 된다.수백조원짜리 팹은 정치권의 치적을 위해 세우는 기념물이 아니다. 투자 판단이 빗나갔을 때 손실을 떠안는 쪽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과 주주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업 대신 지도 위에 입지를 찍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고른 최적지에 전력과 용수, 세제 지원과 인허가를 제때 뒷받침하는 것이다.미국은 쇠락한 인텔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며 기업의 등을 민다. 한국은 세계 시장을 달리는 기업의 팔을 잡아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려 한다. 반도체 강국을 지키려면 기업의 팔을 비틀 것이 아니라 달리지 못하게 붙잡은 발목부터 풀어줘야 한다.





